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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Feb 25. 2022

엄마의 만두는, '그럴만두'!

인생 만두는 이어진다. 쭈~~~ 욱.

설 명절도 한참을 지나 땅과 하늘의 기운이 봄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2월 중순 무렵이 되면, 엄마의 몸은 왠지 마음보다 더 바빠져 스물네 시간을 쉬지도 않고 달리는 시곗바늘처럼 분주하게 돌아가는 듯이 보일 때가 많았다. 워낙에도 그 성정이 부지런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지만, 설을 지나 봄으로 향하는 길목에 설라치면, 그 부지런의 정도가 극에 달하고는 했다. 우선은 겨우내 묵었던 이불빨래들을 하는 것으로 남들보다 한 달 정도는 족히 빠른 엄마의 이른 봄이 시작되곤 했는데, 결코 가볍지 않은 솜이불과 요들을 번쩍 들어서 홑청을 뜯어내고, 긴긴 겨울밤, 네 식구의 한파 걱정을 덜어줬던 기특한 밍크담요(실은 나일론이었지만)를 붉은 대야에 넣어 밟는 것으로 말이다.


며칠은 걸릴 것 같은 막대한 양의 이불빨래들을 개시하는 날이면 엄마의 얼굴 표정은 그 어떤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처럼 근엄한 표정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근엄한 표정은 어쩌면 '근엄함'을 가장한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에 젖어 한껏 무거워진 엉킨 이불빨래들이 자신의 삶과 어찌 그리 닮아 있는지, 세제를 풀어 미끄덩해진 그 빨래들을 발로 밟으며 엄마는 혹, 속울음을 울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야들아~~ 오늘 저녁에는 만두 해 묵을까?"


봄을 맞는 그녀만의 성스런 의식인 '이불빨래'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었다. 긴긴 시간 동안 무거운 빨래들을 혼자서 해낸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씩씩하고도 큰 엄마의 목소리에 다~ 늦은 낮잠에 졸고 있던 강아지 복실이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월~월! 짖기도 할 만큼, 그건 한 계절을 느끈히 잘 보냈다는 어떤 승자의 포효 같기도 했다. 그리고 시어진 김장김치의 끝물을 이제 만두로 종료하겠다는 엄마만의 또 다른 계절 이동 의식이었기도 했고.


"엄마, 내는 만두 싫다. 지겹다. 라면 묵을끼다"


만두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만두 선언이 있는 날이면 차라리 라면을 먹고 말겠다는 철없는 투정하곤 했다. 시어 빠진 김치와 숙주나물, 그리고 드문드문 박혀있는 돼지고기와 부추, 게다가 물컹한 식감의 두부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만두를 무슨 통과의례를 치르듯이 봄을 앞둔 초입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과, 무지막지하게 큰손인 엄마의 성품으로 봐서 한 번 빚은 만두는 족히 열흘을 내리 먹을 수 있을만한 양이라는 데 대한 불만을 이렇게라도 토로할 수박에.



내 키만 한 독 서너 개에 가득했던 김장김치가 거의 동이 나기 시작하면 , 파 묻었던 독도 꺼내 씻어둬야 하는데, 군내가 가득한 그 독들을 땅에서 꺼내는 그 순간부터 나와 동생의 이마엔 깊디깊은 내 자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엄마, 와 김칫독에서 똥내(냄새)가 나는데?"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직설적이다. 에두르는 법이 없다.


"야가, 야가, 음식을 앞에 두고 똥내가 뭐고, 이런 거는 군내라 카는기다! 얼마나 구수하노"


아무리 엄마지만 군내를 구수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하던 찰나, 엄마의 팔엔 모터라도 달린 듯 마지막 독 아래에 숨어있던 김치들을 커다란 대야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겨우 한, 두 포기 남아 았을 줄 알았던 김장김치는 꺼내도 꺼내도 나오는 화수분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대야에 산더미처럼 쌓인 김장김치의 군내가 마당을 그득하게 채우면 이제 곧 '만두 대첩'의 시작을 알리는 엄마의 칼질 소리가 두둥두둥 개선장군의 북소리처럼 경쾌한 변주를 시작한다.



김치는 국물을 없앤 다음 최대한 쫑쫑 썰고, 불린 당면과 부추, 살짝 데친 숙주도 김치의 크기와 비슷하게 쫑쫑 썰어 놓는다. 거대한 면포에다가 시장에서 사 온 두부 열 모쯤을 넣고 꽉꽉 눌러짜 물기를 제거한다. 시장 육수 간에서 다져온 돼지고기도 핏물을 제거해 준비해둔다. 김치를 꺼내왔던 대야보다 두배는 더 큰 다라이에 이 모든 재료들을 넣은 다음 맛소금과 후추, 약간의 참기름을 넣어 간을 맞춘다.

열거해 놓고 보니 세상 간단한 레시피인데, 엄마의 만두는  먹어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었다. 워낙 타고난 음식 솜씨를 자랑하는 엄마이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칼국수와 만두는 모든 이들이 엄지를 척하고 올려주었고, 가끔 청소년기를 우리 집에서 하숙하며 보낸 사촌 오빠들은 엄마의 만두가 그립다며 따로 찾아오기도 했었으니까. 엄마의 비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비법이 숨어 있었길래 만두가 싫다며 투정을 부리던 나조차 가끔 그 만두에서 배어 나오던 실한 육즙이 그리워서 옛 기억을 떠올려가며 만두를 빚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거칠고 두툼한 손으로 빚어낸 엄마의 만두는 엄마의 성품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이 보였다. 일단 크기에서 다른 모든 만두들을 압도한다. 이북식 만두가 크다지만, 우리 엄마의 만두에 비길바가 아니었다. 이라도 터질 것 같이 속을 넘치게 채운 만두의 배는, 속절없이 세월을 품은 엄마의 배처럼 부품 했고, 꽤 큰 접시에 담아도 양끝이 접시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했었으니까. 일단 만두 빚기에는 온 가족이 동참을 해야만 한다. 그 엄청난 양을 아무리 손이 빠른 엄마라도 혼자 해내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두를 빚는다는 기별이 전해지면 엄마의 음식 솜씨에 버금가는 엽렵한 손끝을 지닌 이모들도 총출동을 하곤 했었는데, 자신의 방식대로 그저 예쁘게 만두를 빚는 엄마 바로 아래 큰 이모는 늘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어야만 했었다.


"아따, 그놈의 만두는 너무 작아가 누구 코에 갖다 부칠라 카노! 만두는 무조건 크게 만들어야 되는기라,

한 개만 무도(먹어도) 배가 불둑, 하고 올라와야 되는 기라"



실로 그랬다, 엄마의 만두는 하나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불렀다. 멸치로 육수를 낸 국물에 대파만 넣어서 감칠맛을 더한 다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만두를 삶아서 각자의 접시에 덜어먹는다. 대부분 만둣국으로 먹는 가정이 많겠지만, 우리 집은  삶아서 양념장에 찍어 먹는 걸 선호했는데, 크기가 너무도 어마한지라, 찍어 먹는다기 보다는 만두 배를 가른 다음 양념장을 속에 부어 먹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인 오빠는 그렇다 치고, 아직 위장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나와 동생은 그야말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왔지만, 특히 만두를 빚은 바로 당일엔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꾸역꾸역 두, 세 개쯤을 약간의 눈물을 흘려가며 먹기도 했다.


"엄마, 우리도 만두 좀 작게 만들믄 안 되나? 와 이래 만두가 크노? 진짜 커도 너무 커다 아이가!"


"이기 뭐가 크노? 고마 잔소리하지 말고 무라!"


그 큰 만두를, 만두를 빚어낸 당신의 손을 닮은 그 두툼하고도 풍성한 만두를, 숨도 쉬지 않고 꾸역꾸역 먹던 엄마의 표정에 진한 외로움의 형태가 숨어 있었음을 각성한 건, 세월이 아주 한참 지난 어느 이었다. 아마 돌아가시기 몇 해 전으로 기억된다. 예의 이모들이 몰려와 만두 빚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물었었다.


"엄마, 엄마 만두는 왜 유달리 이렇게 큰데? 쫌 예쁘고 조그맣게 빚으면 먹기도 좋잖아!"


"아이고, 혜워나 니는 그것도 몰랐나? 참말로! 너거 아부지가 이래 큰 만두를 좋아했다 아이가, 너거 엄마는 이 만두를 만들면서 빨리 가버린 남편을 떠올리는 기라. 원망도 하고, 가끔은 그립다고 투정하기도 하고. 그라이 고마 암말 말고 큰 만두 무라!"


묵묵히 만두를 빚는 엄마를 대신해 막내 이모가 해준 대답이었다. 만두를 빚던 엄마의 자그마해진 어깨가 흔들렸다. 엄마는 좀처럼 울음을 울지 않고, 그 흔한 눈물조차 자식들 앞에서 보이는 법이 없었기에 흔들리는 어깨에서 나는 엄마의 오래 농축된 눈물을 읽어내야 했었다.


'그런 거였구나. 만두와 칼국수를 젤로 좋아했던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큰 만두를 선호했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연례행사처럼 만두를 빚고, 수시로 칼국수를 밀었던 거구나'


어릴 때는 엄마의 외로움, 한, 고난 등을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간혹 '효녀 코스프레'를 하느라 이해하는 척을 하긴 했었지만 그 지난한 시간들을 내 것으로 가져와 낱낱이 삶에 녹여내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모든 진리는 왜 그것들이 끝을 고한 다음에야 와닿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가난한 겨울이 지나가는 그 정점에서 무사히  한 번의 새봄을 맞았다는 안도의 순간, 엄마는 어린 삼 남매만 남겨두고 떠나가버린 '평생의 사랑'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군내 나는 김치 속을 넣어 만두를 빚으며 슬픔과 회한도 함께 넣어 버무렸을 것이다. 그렇게 꾹꾹, 또 한 번의 기다림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다가오는 새봄의 환희를 기약하려 했을지도. 세월이 데려온 상흔을 만두 안에 담아 묻어버렸을지도. 정말 그러했을지도.

엄마의 레시피 그대로 빚은 만두

아이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한창 체력적으로 힘들 때, 엄마 레시피로 만두를 만들어 먹인 적이 있었다. 방송을 마치고 돌아와 힘든 와중에도 온갖 정성을 다해 빚은 만두를 간식으로 며칠 먹였더니, 아이의 입에선 질려서 못 먹겠다는 말이 기어코 나오고야 말았다.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하지만 엄마의 어깨너머로 배운 만두는 꽤 그럴싸한 맛이었고, 예전엔 미처 가늠하지 못했던 엄마의 외로움과 고난, 그리고 한까지 되새겨가며 꾹꾹 빚어냈기에, 내게는 둘도 없는 인생 만두가 됐었다. 그때 손수 빚은 그 만두는.



창밖은 이미 겨울의 흔적을 지우며 봄볕으로 채워지고 있다. 남은 한기 가운데 언뜻언뜻 빛나는 햇살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만두를 빚기 좋을 때라는 시간의 유혹. 김치냉장고 덕에 군내는 예전보다야 훨씬 덜 하겠지만 묵은 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돼지고기 다짐육을 맛있게 볶아 놓은 다음, 만두피를 사러 나가는 것으로 엄마의 새봄맞이 의식을 이어가려 한다. 엄마의 만두 안에 함께 어우러지던 수많은 시간의 흔적들이 내게 와 마침내 아로새겨진 역사가 되었기에. 나는 그녀와 강한 연대의 탯줄로 묶이고 이어지는 엄마의 딸이기에.


※커버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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