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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Jan 20. 2021

묵은 것의 기막힌 향연, 김치찌개

이럴 땐, 이런 음식/김장김치가 시어질 무렵

허기진 나를 만나는 날엔 돼지고기 김치찌개


그런 날이 있다. 먹는 것에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내게도 허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런 날. 이런 날에 나는 늘~ 문밖에서 울고 있는 어린날의 아이 하나를 만난다. 며칠을 굶은 듯, 깡마르고 작은 몸집과 퀭한 눈을 가져서 '눈 빠꼼이' 라 불리곤 했던 한 아이를.


지그시 응시하다 보면, 금방 마음이 아려오는 모습의 그 아이는 바로 열 살 무렵의 나인 거 같다. 눈물이 습하게 고여 흐릿한 눈을 비벼 다시 떠보니 , 아이는 마치 배고픔을 잊고 싶은 듯 연신 마른침을 삼킨다.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달려 나가는 거 외엔 아이를 달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날엔 다른 메뉴를 고를 수가 없다. 돼지고기를 한 근쯤 넉넉히 사들고 들어와 김치찌개를 끓여야 다. 너무도 가련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지우는 하나의 눈물겨운 루틴이다.


김장김치가 딱 알맞게 시어질 때면


지금쯤이면 담갔던 김장김치들이 서서히 맛이 들거나 시어지기 시작한다. 요즘에야 최고의 발명품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익기 정도를 조절해가며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야 어디 그럴 수가 있었나. 땅속 깊이 묻어둔 독에서 발효되기 시작한 김장김치가 딱 알맞게 익어서 갓 담갔을 때와는 다른 맛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때였다.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가는 이즈음 추위에 꺼내먹는

김장김치의 맛은 세상 그 어느 맛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발효음식의 최고봉이 아닐까 한다.


어느 때든 김치찌개는 딱히 다른 반찬거리가 없을 때,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메뉴이긴 하지만 김치찌개의 맛을 극대화시키려면 이즈음 시어진 김장김치로 끓이는 김치찌개 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음이다. 김치만 맛있으면 된다. 특히 코 끝에 시큼한 맛을 직배송해주는 잘 익은 김장김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신기한 음식, 엄마의 김치찌개


그 옛날, 엄마가 만들어 주던 김치찌개는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을 내는 신기한 음식이었다. 엄마가 일을 하러 가기 전 부지런히 한 냄비를 끓여 놓고 간 김치찌개가 웬일인지 저녁 무렵 먹을 때 더 맛있어지는 신공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세끼의 반찬을 각각 다르게 차릴 수 없었던 시절, 겨울날의 김치찌개는 대단한 먹을거리였음이 분명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어진 김장김치 외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딱히 무엇이 들어가지도 않았던 거 같다.


엄마의 김치찌개 레시피


만능육수 베이스, 쌀뜨물을 받아놓는 걸로 시작한다. 여기에 실한 멸치 몇 마리 띄워 넣고 육수를 끓인다. 이렇게 낸 육수에 시어진 김장김치를 대충 크게 썰어 넣어 만들게 되는 데, 요즘처럼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는다거나 하는 호사는 당시 우리에겐  허락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김장김치를 담글 때 속에다 온갖 육수를 넣어서 버무리기 때문에, 굳이 고기를 넣지 않아도 끓일수록 뭉근하게 풍성해지는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모자란 듯, 부실한 맛의 누수를 탐지해주는 건 바로 '오래 끓임'이었다.


연탄불에 올려진 커다랗고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의 김치찌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더해지고 살아난다. 고기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나마 새벽에 골목길을 도는 두부장사 아저씨한테 사둔 두부라도 넉넉하게 잘라 넣어  부족한 맛을 채워주고는 했다.


엄마가 아침에 끓여놓고 간 김치찌개는 우리 삼 남매의 세끼나 혹은 어떤 때는 네 끼까지 책임져줄 수 있는 신묘한 먹거리였다. 저녁 무렵이면 국물이 자작해져 다시 육수를 좀 더 부어야 했지, 자작해진 국물에 밥을 비벼서 구운 김에 싸 먹으면 다시 다른 음식으로 탈바꿈을 하곤 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음식들 중 가장 단순한 재료로 그 이상의 맛을 펼쳐내는 것으론, 이 김치찌개를 따라갈 만한 게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귀했던 돼지고기 대신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를 가끔 해주시곤 했는데, 이 맛 또한 가끔씩 그리울 만큼 맛있었다. 이후 살림이 좀 나아지면서 참치캔, 햄, 꽁치 등과 콜라보한 김치찌개 또한 기가 막힌 맛이었고. 묵은 김장김치(단, 제대로 된)만 있다면, 그 어떤 부재료와 함께 끓여내도 평균 이상의 맛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니 잘 익은 김치야말로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식재료인가.


김치찌개, 가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찌개! 하면 떠오르는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는 그나마 대학 무렵이나 돼서야 무시로 먹을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엄마가 잔치집에 다녀오면서 얻어온 삶은 돼지고기로 일차적으로 두루치기를 해 먹고, 남은 뒤 고기로 아주 가끔씩 고기 맛이 나는 김치찌개를 해 주셨는데, 이런 경우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기에 기억 속에 그다지 저장돼 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이란 현재에서 어떻게 사용하거나 가공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너무 선명해 과거의 순간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옮겨오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고기 한 점 들어 있지 않은 빈한한 김치찌개가 어느 날 온갖 재료를 넣은 부자스런 김치찌개로 바꿔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 간절한 마음으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 그렇게 그 시절 우리 식구의 하루하루는 한겨울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처럼 얼어붙어  있었기에, 고양이 눈썹만 한 햇살이라도 밥상에 깃들기를 바라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리라.


'가난의 순혈주의를 반대한다. 가난의 대물림에 격렬하게 항거한다.' 오직 생각안에서만 떠도는 말들일뿐.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은 김치찌개를 몇 끼째 먹게 되면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난에 그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허기진 눈의 내가 먹던 그 옛날의 김치찌개는, 내 가난한 시간을 오롯이 떠안아 몸 깊숙이 새겨 넣은  문신 같은 음식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추억이라고 다 무지개빛은 아님이다.


그래서일까? 육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된 요즘도 김치찌개만큼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갈망하던 그 김치찌개, 김치 국물에 기름기가 적당히 스며들어 국물 위에 층을 이루던 그 김치찌개. 몇 번 먹지 못했기에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한 김치찌개.


김치보다 더 많은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찌개국물에 밥을 비벼본다. 기름기가 많아서인지 국물이 밥알에 잘 배어져 윤기를 돌게 하는 게 한눈에 보인다.  시절 엄마가 끓여낸 멀겋던 김치찌개나, 지금 내가 끓여 밥상에 올린 이 기름진 김치찌개나 논란의 여지없이 서민의 음식 이건만, 이제 고기가 듬뿍 든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으니 나도 조금은  가난하게 된 것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도 김치찌개를 먹으며 문밖에 서성이는, 허기진  아이를 차마 보내지는 못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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