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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Nov 30. 2020

2012년, 그해의 김장

엄마를 잃고,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그해엔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해 2012년 12월 어느 날,  눈이 무척이나 귀한 이 도시에도 폭설이 내렸었다. 많이 온 곳엔 아이들 무릎까지 차오를 만큼 엄청난 양이 쌓여,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바로 그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이더니 동화 속의 그림처럼 정경 자체가 순간에 갇힌 채, 얼어버린 느낌을 주던 그런 날이었다.


분지의 특성상 이렇게 폭설이 내려버리면 교통은 마비되고,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으니, 도시의 기능 자체가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지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그날 나는, 무슨 영문인지 김장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모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오후 방송을 하던 때라 그제부터 부지런히 밤잠도 설쳐가며 서두른 덕분에 방송을 마치고 돌아와 몇 시간의 수고만 더하면 한 해의 김장을 갈무리할 수 있는 완벽한 세팅이었기에, 내심 흐뭇해하던 바로 그날이기도 했다.



방송이라는 메커니즘 특성상 이런 날은 더욱 바쁜 법이다. 악천후로 인한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야 하니, 기존에 써 놓았던 모든 원고는 백지상태로 돌아가고 새로운 오프닝부터 시작해 모든 원고를 고쳐 써야 만 한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눈 쌓인 거리를 걸어서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다.


평소 걸음이면 7분에도 주파할 수 있지만 내 무릎 바로 아래까지 쌓인 눈을 헤쳐가며 중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두어 번 찧어가며 그렇게 30분이 걸려 겨우 지하철을 잡아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던 그날,


눈 내리는 날이면 거지가 빨래를 한다고 하더니, 기온은 다행히 많이 내려가지 않아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서 응달을 제외하고는 질퍽질퍽한 상태가 됐고, 자잘한 사고소식을 몇 건 전하며 오후 방송을 갈무리했던 날이었다. 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아이의 2학기 성적이 나오는 날이기도 했구나


아이는 외할머니의 유언을 이루고 싶었어요


폭설이 내렸고, 김장을 어떻게든 무사히 해서 겨우내 든든한 맘으로 살아가야 했고, 최선을 다한 아이가 만족할만한, 아니 원하는 바로 그 성적을 받아야만 했던 2012년 겨울의 하루였다.


그해 2012년 6월 바람대로 춥지도 덥지도 않았던 날, 엄마는 하늘로 돌아가셨다. 아이가 병원으로 마지막 문병을 갔을 때, 엄마는 죽음을 예감했던 것인지 아이의 손을 잡고는 유언처럼 한 마디를 하셨는데, 아이에겐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방향지시등이 됐었는지.. 훗날 대학을 입학하고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 한송이, 공부 열심히 해. 외할머니는 우리 한송이가 잘할 거라고 믿어"


어쩌면 여느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얘기였지만 아이는 힘없는 할머니의 손에서, 이미 초점을 잃어가는 눈빛에서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는 혼자 다짐했단다. 꼭 열심히 해서 할머니가 응원하고 바랐던 그런 손녀딸이 될 거라고.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 거리는 다소 혼잡하고 어지러웠지만, 눈이 가져다준 따스함 덕에 연말이라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서둘러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 가슴도 녹아내리는 눈처럼 조금씩 질퍽거리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살면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폭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이의 대학입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한 해의 성적이 나오는 날이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열다섯 포기의 김장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아! 원하는 성적이 나오면 함께 보러 가기로 한 임형주 크리스마스 콘서트 덕분이었는지.. 엄마를 보낸 후, 새로운 계절을 두 번째로 맞은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녹기 시작한 눈에 젖은 발이 시려오더니, 가슴 한편을 쨍한 겨울바람 한 조각이 바늘처럼 찌르며 기어코 눈물을 쏟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엄마의 손맛을 대물림 받았죠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는 인근에 소문이 날 정도로 대단했었다. 손맛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나는 엄마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별것 넣지 않은 음식인데도, 같은 재료를 사용한 다른 사람들의 음식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차별된 맛을 자랑했다. 비결은 정성이었다. 어떤 음식이든 허투루 하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마치 다정한 연인을 대하듯 음식을 하시니, 이게 맛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김장만 해도 그렇다. 젓갈 특유의 묵직한 맛을 중요시하는 경상도 지방의 김장에는 여러 종류의 젓갈이 들어가는 데,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이 집 저 집에서 얻어온 다양한 젓갈에다 본인의  육수 비법을 더해 엄청난 김치 맛을 내고는 하셨다.


겨우내 독에서 꺼내 밥상에 올려지는 김치는, 매일매일 어쩌면 그렇게 다른 맛을 내면서도 한결같이 맛이 있었던지.. 어린 시절의 나는 모든 집의 김치가 다 그렇게 맛있는 줄로만 알았지만 철이 들고서야 그 김치의 맛이 '원 앤 온리' 였음을 깨달았으니.


결혼한 첫해에 엄마의 지휘 아래 이 김장비법을 전수받았었다. 갓 결혼한 딸이었지만 엄마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아 어떤 음식이든  맛을 보기만 하면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였기에, 엄마는 내게 "이제 김장만 담글 줄 알면 더 이상 가르쳐 줄 것도 없다' 시며 모든 비법을 쏟아내 놓으셨던 거다.


친구들은 친정에서, 시댁에서 김장을 해서 실어 나른다고 하는데, 일복이 많은 나는 결혼한 첫해부터 이제 내 손으로 김장까지 만들어 먹어야 하는구나,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별 수 없는 엄마의 딸인지라 이상하게도 김장을 담그는 내내 그렇게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미리 만들어 둔 양념에 들어갈 속 재료들을 썰고, 절인 배추를 비벼 넣는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랑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핀잔도 들어가면서 투닥거렸던 그 시간이 왠지 너무 따스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말수가 적고, 매 순간 살갑게 정을 나누는 모녀는 아니었던지라 결혼을 하고, 엄마와 함께 앉아 김장을 하고 있는 내가 왠지 스스로 대견하고 고마웠던 거 같기도 하다.



김장을 하며 모녀간의 끈끈한 유대를 쌓았어요


김장을 담그는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엄마의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한탄, 고통과 질곡의 역사, 혹은 과부라는 꼬리표를 단 채 세상을 향해 지난하게 저항해온 나날들 같은, 평소에는 꺼내지 않았고 금기시 해왔던 얘기들을 봇물 터진 것처럼 하시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시집간 딸이 이제 자신과 같은 여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김장을 하는 내내 참 많이도 웃었고, 가슴이 뻐근해올 정도로 벅찬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김장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내 식구들이 먹을 김장은 내 손으로 직접 담아 먹고 있다.


실한 북어를 골라 갖가지 재료와 함께 푹~ 우려낸 육수를 베이스로 하고, 특히 생멸치젓갈을 많이 써 처음에는 살짝 비린 듯 하지만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내는 김장김치는 먹어본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으니, 엄마의 손맛은 딸에게 내림으로 전해 진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가 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굉장히 정신없이 살았었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한 학기가 주어져 있었기에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그날 폭설이 내리지 않았다면, 그날 아이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아니었다면, 그날 임형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지 않았다면, 그리고 하필 그날, 밤을 새우며 김장을 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 든 아이가 질퍽한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서서 환호성을 지르며 "엄마! 할머니가 도우셔서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어." 하는데, 환청인지 무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게 아닌가.


"내 새끼 참 잘했네. 우리 손녀 참 잘했네." 칭찬에 인색했던 엄마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콘서트 내내 아이와 나를 달뜨게 만들더니 기쁨과 환호성 가운데 슬픔이 솟아나는 기이한 순간을 맛보게도 했었다.



2012년의 김장은 확실히 뭔가 달랐답니다


 눈이 인색한 내 고향에 흰 눈이 원 없이 내린 날이었다. 아이는 최고의 성적을 받아 한껏 고무돼 있었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이었고, 따스한 기운이 온 세상을 감싼 하루였다. 아이와 나란히 팔짱을 끼고 돌아와 서둘러 김장할 채비를 하는데, 없던 기운마저 생기는 것처럼 다시 살아나는 내가 신기했다.


아무리 절임배추를 사서 한다고는 해도 혼자서 하는 김장, 그것도 일하는 엄마의 김장은 힘들 수밖에 없는데 이날의 김장은 웬일인지 새로운 동력을 단 기차처럼 신나게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딸~ 엄마 없어도 참 잘하네. 엄마가 가르쳐 준 거보다 더 잘하네." 끝도 없이 들려오는 엄마의 칭찬 울컥, 교복을 벗고 앉아서 도우겠다며 고무장갑을 끼는 딸이 참 예뻐서 또 한 번 울컥, 집안은 매콤한 양념 냄새로 가득해지고 딸과 마주 앉은 내 맘도, 결혼한 첫해 엄마와 함께 했던 김장을 떠올리며 어떤 회한과 느꺼움으로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2012년 담근 김장,굴김치

많은 감정이 함께 버무려진 때문인지 2012년, 그해의 김장 맛은 그 어느 해보다 더 맛이 깊었다. 지척에 사는 동생네에 김장 나눔을 했더니 "언니야, 어쩌면 이렇게 엄마 손맛이랑 똑같냐' 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는데, 그걸 달래느라 "엄마 손맛은 왜 나만 닮았을까?"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었다. 굴을 넣은 김치는 빨리 먹어야 제맛이고 자잘한 갈치를 썰어 넣은 김치는 늦게 먹을수록 맛이 우러난다 당부하던 '김치명인' 엄마의 비밀 레시피는, 여태 내가 담는 김장, 바로 그 '신의 한 수'로 자리하고 있다.


■ 엄마에게서 딸에게, 또 다시 그 딸에게로 역사는 전해져요


엄마로부터 딸에게로 내림되는 손맛에는 어떤 숭고한 비결이 녹아 있는 걸까? 제대로 앉아서 배운 적도 없지만 고스란히 내게로 와 엄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의 맛. 어쩌면 엄마는 그렇게 딸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함께 농익고 발효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잃고 나서야 겨우 엄마 자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딸이 안쓰러워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러니 좀 힘들더라도, 귀찮더라도 엄마의 혼이 숨 쉬는 음식 만들기를 멈출 수 없음이다. 언젠가 아이가 일가를 이룬 후에, 2012년 겨울, 우리 둘이 함께 앉아 두런두런 김장을 담던 그 날을 기억해준다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엄마와 딸의 연대기는 렇게 세대를 넘어 이어지며, 삶을 한 뼘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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