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따뜻한 주문, 동지팥죽
이럴 땐 이런 음식/ 한 해의 끝에서 다른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 그거 알아요? 동지엔 달력을 나눴답니다.
이맘때쯤이면 집안에 수북이 쌓이곤 하던 달력이 올해는 어쩐지 빈한하다. 장기화된 코로나 때문인 지는 몰라도 달력을 인쇄하는 숫자가 예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동지 무렵이 한 해의 끝이다 보니 달력을 전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맞는 마음을 다지는 게 일상다반사였는데 왠지 많이 아쉽기도 하고, 한편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렇다.
방송일을 하다 보면 24절기에 어쩔 수 없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시절이 아무리 달라졌다고는 해도, 24절기마다 얽힌 유래며 풍습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런두런 누군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매우 식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신묘한 매력이 라디오에는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아주 오랜만에 현역 시절 썼던 원고를 살펴보니 하선동력(夏扇冬曆) 이란 단어가 동짓날 문장들 속에서 유독 빛나고 있다. 예전 우리의 세속력으로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이라 보았기에 왕실에서 신하들에게 동지엔 새해 달력을, 그리고 단오에는 부채를 나눠주는 풍습을 일컬음이다.
'아! 나, 꽤 열심히 뭔가를 공부하며 원고를 쓴 것인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동지'라는 한 단어, 마치 얼음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이 단어의 차갑고 견고한 외피를 깨고, 오래전, 혹독한 추위에도 잠시 볕이 들었던 그 겨울의 '동지'로 돌아가 보려 한다.
■ 동지 팥죽은 왜 쑤는 거예요 엄마, 아직 이렇게 슬픈데
일 년 중 가장 긴 밤을 가진 동지는, 내 기억 속에선 항상 일 년 중 제일 추운 날로 각인이 돼 있다. 동지를 막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고 그리고 며칠 후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말술이었던 아버지는 의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술을 마시는 것으로 위로 삼으며, 오직 술의 기운을 빌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고 계셨던 거 같다.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고 그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이렇게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이미 너무 시꺼멓게 변한 그의 얼굴색이 병의 위중함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나는 겨우 4학년이었고, 여전히 수줍음이 과해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도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런저런 충격으로 현격히 시력은 떨어져 안경을 끼는 아이가 돼 있었다. 이 시절에 안경을 쓴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결격사유 하나를 몸에 달고 다닌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점점 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벌어 놓은 것도 없이 덜렁 아이 셋만 남겨 놓고 가버린 남편을 원망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을까?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한 내 어머니는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점점 더 자기 세계에 고립돼 가는 큰 딸을 세심히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계를 하고, 밑천이 들지 않는 장사를 시작하는가 하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떼어다 팔기도 했다. 남편을 잃고 생업전선으로 몰린 내 어머니의 어깨는 어쩐 일인지 조금씩 더 단단하고 넓어져 갔다. 마치 어떤 세상 풍파라도 다 막아내겠다는 굳은 다짐을 겹겹이 두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돌볼 수 없고, 마주 볼 수도 없는 날들이 무심히 흘러 어느덧 아버지 첫 기일을 앞둔 동지가 찾아왔다. 아주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해의 동지는 조금 유별났던 것 같다. 동지 바로 전날 어마어마한 양의 팥을 물에 담가 두는 걸로 팥죽 쑬 준비를 해 놓고는 엄마는 총총이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러면서 틈틈이 집에서 방앗간으로 뛰어다니며 새알심을 빚을 찹쌀을 갈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이 날은 특별히 팥을 얹은 시루떡도 준비할 거라며 엄마는 왠지 신이 난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는 데, 동지가 뭔 대수라고!
■ 양은 대접에 담긴 동지팥죽 나눔, 그것은 고마움
밤새 새알심을 빚느라 엄마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신 거 같았다. 아직 어린 자식들의 손을 빌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혼자서 그 많은 새알심을 빚고 잠시 새우잠을 청하신 듯했다. 채 치우지 못한 밥상 위의 찹쌀가루에서는 시큰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아침부터 집집마다 팥죽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골목을 가득하게 채웠다. 엄마는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라 그렇게 잠을 못 잤는데도 불구하고, 서둘러 팥죽 끓일 준비를 하면서 그 와중에 도시락까지 싸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토라져 있던 나는 갓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뾰족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엄마, 아부지 기일도 다 됐는데, 이래 꼭 팥죽끼리야 되나?"
"..."
"엄마는 아부지보다 묵는 기 더 중요하나?"
"그기, 아이고"
"아이 기는 뭐가 아인데?"
한 번 날이 서기 시작한 나의 언어는 거침이 없었다. 널따랗고 단단한 등을 가진 엄마가 잠시 휘청였다.
"혜원아, 그기 아이고, 고마 아부지 생각도 나고, 아부지 기일에는 뭐 따로 하기 그래가, 동지도 됐고 했으이 동네 사람들 팥죽 하고 시루떡 좀 해가 나눠줄라꼬, 그라고 팥죽을 무야 아부지처럼 안 아푸지..."
흐려지는 말끝을 따라 엄마의 어깨가 잠시 들썩였고, 나는 울보라는 별명에 걸맞게 대성통곡, 목 놓아 울고 말았다. 마루 한쪽에는 대형 은행에서 나눠준 한 장씩 뜯겨 나가는 달력이 걸려 있었고, 12월 22일, 커다랗고 검게 새겨져 있던 숫자엔 그날의 감정과 그 시간이 고스란히 박제돼 버린 듯했다.
엄마는 있는 대접, 없는 대접 다 끄집어 내 한 솥 끓여낸 동지팥죽을 차례대로 정성스럽게 퍼담으셨다. 그리고는 접시엔 팥시루떡까지 한 조각씩 올려서 '오봉'이라 불렀던 판에다 나란히 놓아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배달을 시키시는 거였다.
갓 끓여낸 팥죽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시루떡의 냄새가 그렇게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일단 놀랐고, 팥죽 한 그릇에 담긴 오만가지의 감정과 의미에 눈도 마음도 많이 묵직해져 갔던 걸 기억한다.
■ 고수레, 적극 실천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우리 엄마가 악귀를 쫓는 풍습으로 시작한 동지팥죽을 왜 그렇게 해마다 열심히 끓이셨는지, 또 왜 그렇게 먹어도 남을 만큼 끓였는지 여전히 그 깊은 속내를 다~알 수는 없다. 다만 그해의 팥죽엔 고마움과 감사를 나누려는 마음과 가족의 무사안녕을 염원하는 맘이 컸던 거 같기는 하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동지 팥죽을 쑤게 되면 장독이나 헛간 같은 데 한 그릇씩 떠다 놓고 '고수레'를 외침으로 신께 고함과 동시에, 대문과 벽에 뿌리는 행위를 하고는 했다. 붉은색을 두려워한다는 악귀를 쫓고, 한 겨울 추위로 먹이를 구하지 못할 들짐승들을 위한 배려가, 거기에는 담겨 있음이다.
내가 아는 엄마라면 이런 걸 딱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거다. 그저 한 끼 음식이라도 못 먹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이 팥죽 한 그릇에 담긴 염원대로 누구나 다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고 맞았으면.. 그냥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언제나 당신이 베풀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무한히 베푸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그 어떤 신앙과 믿음의 영역도 관여할 수 없는 부분 아니었을까? 언젠가 마루 기둥 끄트머리에 슬쩍, 팥죽을 바르고 있는 엄마를 보고 혼자 웃었던 적도 있었으니.
■ 올해는 팥죽을 꼭 먹어야겠다
쓰다 보니 유태인들의 유월절 유래도 새삼 흥미롭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민중들을 이끌고 나올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붉은 피가 발라져 있는 집들은, 재앙을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이른바 ' pass over!', 붉은 기운이 어두움과 악을 상징하는 것들을 물리친다는 속설은 세상 어디에서나 유효함인가? 아무튼 엄마가 정성스럽게 끓여 이웃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한 그날의 팥죽에 담긴 마음에 더해, 올해는 몹시도 기운찬 주문을 한 번 담아보기로 한다.
코로나로 얼룩진 2020년을 살아내면서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지쳤고, 속속들이 피폐해졌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성은 희미해졌으며 블루하고 글루미 한 기운만이 남아, 내일을 살 동력조차 자꾸 사그라들어감을 느낀다. 우리에겐 이 어둠을 물러가게 할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해졌다.
당장 백신도, 치료약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가운데도 더 나누려는 마음으로 풍요로웠던 기적의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소구 했으면 좋겠다. 하여 주저앉으려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면 더욱 좋겠고.
동지 팥죽에 담긴 소담한 기원으로, 이 지루하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희미한 불빛이라도 비치기를 희망한다. 그저 팥죽 한 그릇이 아니라 불쑥 찾아온 불행을 반드시 씻어낼 수 있는 용기의 주문이어야 한다.
올해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각자의 신에 가닿기를 기도하며 '고수레'를 힘껏 외쳐보자.
그렇게 뜨끈한 팥죽 한 그릇씩 나누며, 속절도 없이 양산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비워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