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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r 24. 2021

심해에서 건져 올린 황홀한 맛, 갈치조림

이럴 땐 이런 음식/귀한 손님 오실 때

아주 오랜만에 전통시장 구경을 나선 길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집콕 생활은 가끔 견디기 힘든 우울을 투척하곤 해서 나름의 처방법으로 택한 외출이라고나 할까. 마침 날도 많이 풀렸으니 비슬산 자락에 잠시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른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도 함께 세웠다. 무엇을 꼭 사지 않더라도 그저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곤 하는, 순간의 기쁨. 그 기쁨을 곧 맛보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일까. 몸은 산의 오르막을 숨 가쁘게 내딛으면서도 마음은 전에 없이 살랑거리며 먼저 시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강 이남에 있는 전통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내 고향의 '서문시장' 은 볼거리도 참 많지만 먹을거리도 풍부해서 요즘 타 지역 사람들의 '미식 여행'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예전, 그러니까 내가 회사에 다닐 무렵, 전라도의 한 지역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 지역 토박이인 택시기사님이 고향이 대구라는 내 말에 "아이고 대구에 뭐 먹을 게 있어요." 이러셔서 살짝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미식의 고장인 전라도에서 그런 얘길 들었으니 당연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나름 잘 먹고 잘 사는 데 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무튼 음식의 지역감정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아주 오랜만에 들른 이 서문시장에서 또 하나,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을 만난 기쁨이 더 컸기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 것뿐이다.


어슬렁어슬렁 시장 길을 걷다, 납작 만두나 누른 국수 같은 각광받는 먹거리들보다 더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갈치를 묶어 파는 노점상이었다. 노점상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몇십 년씩 한자리에서 동일한 물건을 파는 우리네 어머님들이 많으시다 보니 대형 어물전이 상가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여기서 갈치를 사는 분들이 제법 많은 걸로 안다. 아! 물론 우리 엄마도 그중의 한 분이었다.


엄마는 추석이나 설 같은 큰 명절 그리고 집에 귀한 손님이 온다는 기별을 받으시면 꼭 이 서문시장에서 갈치를 사시곤 했다. 다른 시장도 많은 데 왜 서문시장이냐고 묻는 내 말에 "야이야, 그래도 서문시장에 와서 사야 굵고 실한 갈치를 살 수 있는 거라. 어디 동네 시장에 이런 갈치가 있더나?"반문하시곤 했다.


분지라는 특성 때문에 워낙 이 도시엔 식재료들이 풍부하질 못했다. 지금이야 물류의 이동이 워낙 빨라서 식재료 운운하기도 우스운 일이 됐지만 예전엔 그랬다. 특히 내륙, 그것도 분지다 보니 다른 어떤 것들보다 '생선' 이 귀했던 거 같다. 우시장이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돈만 있다면 육고기를 사 먹는 일이 어렵진 않았는데, 오히려 '생선' 은 자주 상에 올리기가 힘든 식재료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갈치는 그야말로 몸값이 비싼 귀한 생선이었다. 생선의 비린 맛을 특히 좋아하시던 우리 엄마도 꽁치나 고등어는 가끔 사 오셨지만 이 '갈치' 만큼은 일 년이 다 가도 식탁에 올리는 올리는 법이 없었는데 일 년에 딱 하루나 이틀, 이 갈치가 우리 집 둥근 밥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있었다. 바로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이었다.



외갓집은 시골 중에서도 깡촌에 자리한 곳에 있었다. 보통 외갓집을 가려면 우리가 사는 곳에서 버스를 두 시간 가까이 타고 가서 내린 다음 거의 한 시간을 또 걸어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엄마이기에 어쩌면 비릿하고도 색다른 맛을 지닌 생선을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 시골에서 자그마한 몸집의 외할머니가 쌀이며 과일, 말린 채소 같은 것들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집으로 오시는 날이면 우리 집에선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잔치라고 해서 무슨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잔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내게 잔치란 평소 먹지 못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외할머니의 입맛은 우리 엄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생선을 좋아하셨고, 엄마는 그런 본인의 엄마를 위해 귀하디 귀한'갈치'를 반찬으로 내놓으시곤 했다.


할머니가 대문을 들어서시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골목길에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혜원아 어물전 가 가지고 갈치 받아 오너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도 갈치를 먹는다는 걸 자랑삼아 알리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선 갈치를 구이로 잘 먹지 않았다. 구이로 내놓으면 갈치 한 마리로 한 끼도 겨우 먹겠지만 이걸 조림으로 해 놓으면 두 끼는 너끈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가 구이보다는 조림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석쇠에 구운 갈치 맛을 본 이후로는 엄마의 이 말에 의문을 품기는 했었다. 그래도 갈치의 향이 고스란히 밴 조림 속의 무맛은 그 어떤 것과도 여전히 비교할 수 없는 맛이긴 하다.

 


엄마의 갈치조림 레시피


갈치는 몸통이 두꺼운 것으로 골라야 조림에 제격, 숭덩숭덩 잘라온 갈치는 잘 씻어 물기를 빼둔다. 제철 무를 두껍게 썰어두고, 대파도 어슷썰기 해둔다. 때에 따라서는 버섯을 넣기도 했지만 없으면 그냥 이 두 가지의 부재료만 있으면 된다. 조림엔 양념이 가장 중요한 데, 엄마의 경우 고춧가루보다는 고추장과 된장을 베이스로 해, 끓여놓으면 색이 진하게 되는 갈치조림을 선호하셨다. 그리고 된장을 써 비린 내를 최대한 잡은 조림이어서 밥반찬으로도 제격인 그런 조림 말이다. 고추장과 된장, 여기에 고춧가루와 양조간장 조금, 설탕과 후춧가루, 청주, 마늘과 생강 다진 것을 넣고 저어 30분 정도 숙성시켜 둔다. 그래야 양념들이 골고루 잘 섞여서 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커다란 냄비에 무를 충분히 깔고 매끈하고 은빛으로 빛나는 갈치를 올린 다음 대파를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양념을 골고루 다시 도포한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비법 육수를 부어 주는 데, 엄마는 모든 조림에 다른 이들처럼 그냥 맹물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생선이라도 깊은 맛을 낼 수 없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이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음식을 만드는데 정도란 게 애초에 있을 리 만무하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좀 더 본인의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개발해 나간 엄마의 정성에 매번 감복했으니 나는 그저 딸로서 엄마의 길을 따라가면 되지 않겠나.



엄마의 갈치조림은 조림이라기보다는 탕과 조림 사이에 있는 것처럼 국물이 많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국물을 넉넉히 해야만 없는 살림에 두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어서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시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외할머니가 오신 날 둥근 소반에 둘러앉아 갈치조림을 먹던 때의 장면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


가장 큰 중간 토막을 외할머니께 드리면 할머니는 그걸 또 "아~~~ 들(아들이 아니고 아이들) 주라" 시며 우리에게 기꺼이 양보하시곤 해서 밥상이 소란스러웠던 기억, 혼자된 딸이 안쓰러워서 쌈짓돈을 꺼내 밥상 위에 올려 두시면 엄마는 그게 또 미안하고 무안해서 괜히 갈치조림의 무가 맛있다며 내 밥 위에 올려주던 풍경, 입이 참 짧았던 동생이 조림 국물이 비려서 싫다고 떼쓰던 모습, 그런 동생을 마치 아버지처럼 꾸지람하던 오빠의 근엄한 얼굴. 왜 모든 것이 이렇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인지 나는 도통 알 수 없다. 누구는 특별한 내 기억력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잊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아서라고도 한다.


그래,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숱한 기억들 덕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의 추억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음식'으로 더 많이 남아 어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음식에 담긴 이야기는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며 서사를 더해가는 것이기도 하고, 특유의 향과 만듦새 때문에 시각과 후각정보로 장기기억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하나 꺼내 놓을 때마다 혹여라도 기억의 왜곡이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엄마에게  검증받으며 웃을 날이 오지 않겠나 싶어 미쁜 마음으로 자체 검수를 하곤 한다.


오랜만에 들른 서문시장의 갈치 노점에서 아주 실해 보이는 갈치 세 마리를 샀다. 그 옛날 국물이 흥건하던 엄마의 갈치조림보다는 조금 더 조림에 가깝게 할 요량이지만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우리 엄마의 딸인지라 어느새 육수를 더 붓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깊은 바다의 황홀한 은빛 물결이 밥상으로 달려와 미각의 돌기들을 차례대로 세울 시간을 두근두근 기다리며 우선 무부터 두툼하게 썰어야겠다. 한 마리는 따로 냉동해뒀다가 봄이 더욱 진해진 어느 날, 냉이를 얹은 색다른 조림으로 만들어 먹고...... 생각만으로도 어느새 내 어깨는 불규칙한 리듬을 타고 칫 두둠칫, 춤을 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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