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여자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새벽을 깨우는 여자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새벽이 오면,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책을 펼치는 손길이 있습니다. 그 손길 뒤에는 낭독하는 목소리가, 그리고 그 목소리 뒤에는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고립과 단절을 의미했지만, 때로는 그 고요함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과 더 가까워질 기회를 얻었고, 새벽이라는 특별한 시간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5시, 아직 세상이 깨어나기 전 "굿모닝" 인사와 함께 시작되는 20분의 낭독 시간. 처음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시작한 독서였지만, 소리를 내어 읽는 순간 집중력이 달라졌습니다. 목소리에 실어 보내는 글자들은 더 이상 종이 위의 잉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는 '공유된 경험'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입니다. 고대 구전 문화에서부터 현대의 팟캐스트까지, 사람들은 언제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공동체를 형성해 왔습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위기에서 피어난 희망의 문학
때로는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새벽 낭독을 통해 만난 특별한 책입니다. 서간체 형식의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지만, 낭독으로는 감정 표현이 어려워 영화를 먼저 접했습니다.
영국 해협의 건지 섬은 지금은 유럽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군에 점령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과 희망을 찾아가는 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독일군 몰래 돼지구이 파티를 열었다가 들킨 주민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문화 모임'이라고 둘러댄 것이 계기가 되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문학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허구의 모임이 실제 독서 모임으로 발전하면서 소박한 삶 속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문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강압과 통제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문학을 통해 자유와 저항의 공간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에 대한 반증이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만으로는 접할 수 없는 풍부한 문학적 경험이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앤 브론테, 오스카 와일드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등장하며 이야기에 깊이를 더합니다.
이 작품에서 문학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생존의 도구가 됩니다. 독서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처럼, 등장인물들은 책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키는 공간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나답게 즐겁게 살기 위해 새벽 낭독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한 문장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나답게', '즐겁게'라는 단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자기 돌봄(care of the self)'의 실천입니다.
일상의 작은 의식을 통해 자신만의 주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건지 섬의 주민들이 전쟁의 어둠 속에서 문학이라는 빛을 발견했듯이, 우리의 새벽 낭독자들도 팬데믹이라는 어둠 속에서 책과 목소리로 빛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인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거창한 이론이나 난해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타인과 연결되는 작은 실천들. 새벽을 깨우는 여자들의 낭독 소리처럼,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한 조각의 인문학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