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이야기 한 조각의 인문학

<위트>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게 해 주는 영화

by 꼬야책방

죽음 앞에서 찾은 진실 - 영화 '위트'가 건네는 메시지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겁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까? 그때 내 곁에 누가 있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무섭고 조금은 떨립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입니다.


간호사라는 직업 특성상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죽음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통증 클리닉에서 근무했는데, 주로 암으로 인한 통증 환자가 많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나의 감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불쑥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업무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감정이입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려 노력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죽음 앞에 서 있는 환자들을 돌봄에도 불구하고, 늘 반복되는 일상과 간호사의 삶 속에 가끔은 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회진 때면 병상에 환자 이름이 바뀌어 있었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휑한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날의 기억

그날도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회진 때였습니다. "항암 치료만 받고 남은 시간 가족들과 여행이나 할걸, 왜 수술을 해가지고 퇴원도 못하고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고 있는지..." 혼잣말을 하는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당황해서 그냥 손만 잡아 드리고 왔습니다.


월요일 회진 때 그분의 병상이 비어 있어 물어보니 일요일 아침 하늘나라로 갔다는 담당 간호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던지 최선이었다고 위로해 드리지 못한 게 좀 걸렸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잊고 있었는데, 그분의 가족들이 찾아와 그때 손잡아 주어 고맙다며 선물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 순간 내게 초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위트'와의 만남

오늘 함께 하고 싶은 영화는 '위트'입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몰두해 온 영문학 교수 비비안 베어링이 난소암을 진단받고 임상 연구에 참여하면서 겪게 되는 치료 과정을 그린 영화로,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독백을 통해 보여줍니다.


암 진단 후 주인공은 죽음에 대해 태연하고 위트 있게 대처하려 했지만, 질병이 점점 진행될수록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평소 냉철하고 학문 이외에는 모든 것들을 멀리했던 주인공은, 간호사 수지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죽음을 위트로 승화시킵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지성으로만 채웠던 삶에 대한 회상도, 현대 의학 체계를 조롱하는 위트도 점점 힘을 잃어갑니다. 결국 그녀는 고통과 두려움에 눈물을 보이며 그나마 인간적인 간호사 수지와 소통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또 다른 잔인한 선택을 종용합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

비비안은 심장이 멎었을 때 심폐소생 처치를 원하냐는 수지의 물음에 연명 치료를 거부합니다. 나중에 그녀가 사망한 걸 뒤늦게 안 의사가 무리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그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처치는 보는 동안 화가 났습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이 영화는 현실적으로 병원에서 환자가 겪는 임상적 상황,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간호사로서의 초심을 잃어가는 듯한 시점에 이 영화를 보면서 비비안 베어링의 입장이 되어 봅니다. 이 영화를 통해 평소 환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죽음에 대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아한 죽음을 위한 시간

치료 과정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간은 누구에게나 우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숭고한 시간의 가치와 필요성을 혹시 알아봐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의료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치료 프로토콜과 의학적 절차에 매몰되어 정작 환자 개인의 존재와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 고독감을 놓치기 쉽습니다. 비비안이 학문적 성취로만 가득 찬 삶을 살아왔듯이, 우리도 업무의 효율성과 전문성에만 집중하다 보면 환자의 진짜 마음을 읽어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비비안이 간호사 수지에게 느끼는 따뜻함은 단순히 의료 행위를 넘어선 인간적 교감의 힘을 보여줍니다. 수지는 그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손을 잡아주고, 진심 어린 관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영화는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쉼표의 의미

한 생명의 삶 다음엔 죽음이 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쉼표가 우리를 의연하게 하는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쉼표는 위트가 아니라 진실입니다. 누구나 삶의 태도로 위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쉼표를 찍는 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적이고 냉철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유머와 위트로 현실을 견뎌내려 해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방어막이 무너지고 진실한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는 뜻일 겁니다.


의료진으로서 우리가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쉼표'의 시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치료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환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진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영화를 환자를 돌보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환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 이면에 놓여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화는 현대 의학의 한계와 맹점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비비안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그녀를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그녀의 고통과 두려움에는 무관심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의료 현실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환자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이야기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잊고, 질병과 증상으로만 분류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희망도 전합니다. 간호사 수지처럼 환자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인간적인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의료진이 있다면, 죽음의 여정도 덜 외롭고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초심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는 간호사가 되자고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의료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취약하고 두려운 순간에 함께 서는 것이며, 때로는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숭고한 역할을 맡은 우리가 매일의 바쁜 업무 속에서 그 의미를 잊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위트'라는 영화는 그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환자를 대할 때 정말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지, 의학적 처치 너머에 있는 인간적 필요를 파악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 앞에 선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검사나 더 강한 약물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 두려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앞으로 환자들을 대할 때 더욱 세심하게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언젠가는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더욱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하고 싶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 문장 앞에 어떤 쉼표를 찍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의료진으로서 우리는 환자들이 그 쉼표를 평안하고 존엄하게 찍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초심이자, '위트'라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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