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곳이 없어 글을 썼습니다.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by 꼬야책방

나는 그녀를 미워했다. 정확히는 질투하고 있었다.

같은 날 입사했지만 그녀는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키도 크고, 학벌도 좋고, 예뻤다. 무엇보다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회의실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녀를 보면서, 작아지는 나를 느꼈다.


그녀의 직감은 때로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고,

그런 순간마다 나는 내 평범함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승진도 항상 그녀가 먼저였다. 어느새 그녀는 내 상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상사로 모시며 매일 내 부족함을 확인해야 했다.

그런 날들이 쌓여가며, 나는 점점 그녀에 대한 미묘한 감정들을 키워왔다. 부러움과 질투, 때로는 원망까지.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그녀는 누구나 알아보는 스타였다.

환자들도, 의사들도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다. 신규 간호사들은 그녀를 롤모델로 여겼고, 선배들조차 그녀에게는 한 발 물러서는 기색이 역연했다. 그런 그녀 옆에 서 있으면, 나는 마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날, 그녀가 내게 고백했다. 부럽다고.

"나는 이제 혼자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당당함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무섭다고 했다. 무남독녀인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다. 지난 10년간 부모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가며 버텨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승진을 질투할 때, 그녀는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당당함을 부러워할 때, 그녀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힘든 부서 발령을 자원했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의논할 수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네가 부러워. 그게 진짜 행복 아니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진 평범한 일상, 시끄러운 아이들과 때로는 성가신 남편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 - 외모, 학벌, 능력 - 이 결국 그녀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퇴근 후 빈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갑자기 쓸쓸해 보였다. 연휴 때면 병원에 나와 일하는 그녀를 보며 '일중독'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갈 곳 없는 그녀에게 병원이 유일한 피난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3년 전 성추행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속된 말로 '까발리고' 갔다는 것이다. 관련 의사는 사직권고를 받고 떠났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당시 그 사건의 담당 수간호사였던 그녀는 피해자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는 그 일로 몇 달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피해 간호사와 개인적으로 만나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어머니의 부재로 심신이 지쳐있던 그녀를 매일 불러대는 높으신 분들. 마녀사냥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어깨가 점점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우리가 얼마나 냉혹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새삼 느꼈다.

"엄마 때문에, 엄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아무도 없어."

그녀가 흘린 눈물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동안 질투와 경쟁심으로만 바라봤던 그녀가, 그저 연약한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퇴사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책임 있는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등 떠밀려 내린 결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떠난다는 것이다.

병원은 여전히 돌아간다. 그녀가 없어도 환자들은 계속 들어오고,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회의는 열린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녀의 자리에 앉은 새로운 수간호사를 보며, 나는 괜히 마음이 착잡해진다.

동료들은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한다. "원래 너무 완벽주의적이었어." "부담을 혼자 떠안으려고만 했지." "소통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 그런 말들이 공허하게 들린다. 결국 그녀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왜 완벽하기를 요구했을까.

사실 그녀가 떠나는 것이 조금은 후련하기도 하다. 더 이상 비교당하지 않아도 되고, 내 부족함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동시에 허망하기도 하다. 그녀와의 경쟁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그녀가 있었기에 내가 더 노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위치 때문에 더 이상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사석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그때는 그녀를 질투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안다.

함께 밤근무를 서며 환자를 돌봤던 날들, 응급상황에서 호흡을 맞췄던 순간들, 때로는 실수를 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추억들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했던 동료로 남았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니 또 눈물이 난다. 내 20대의 청춘이 생각나서일까. 그녀와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이제는 추억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그녀를 욕하고 싶었다. 질투와 열등감으로 얼룩진 내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욕보다는 측은지심이 더 든다.


성공해 보이는 사람도,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모두 인간이다. 각자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녀의 당당함 뒤에 숨어있던 외로움을, 그녀의 성공 뒤에 가려져 있던 희생을, 이제야 본다.

간호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함께 나눠 진 동료로서, 때로는 라이벌로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이 힘든 현실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왔고, 그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고생 많았어. 덕분에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어.“

그녀가 떠난 후, 나는 내 평범한 일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시끄러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남편의 사소한 잔소리를,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저녁 시간을. 그리고 가끔은 그녀를 생각하며,

어딘가에서 그녀가 진정한 행복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병원이라는 세계를 떠나 더 넓은 곳에서, 그녀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길.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길.

그리고 언젠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예전보다 더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잘 가요,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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