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때, 갑자기 13kg이 빠진 이유는 갑상선암 때문이었고,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던 해에 생긴 부정출혈은 자궁근종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치질까지 악화되니 걷기만 해도 헐떡이는 심각한 빈혈 환자가 되었다. '나 정말 이대로 괜찮나'가 아닌 '나도 참 가지가지한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게 몸은 몸대로, 마음은 또 마음대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어느 순간 술을 마셔야 간신히 3시간을 자는 예민 분자가 되어 있었다.
금요일 늦은 퇴근 즈음 팀장이 나만 회의실로 불렀다. '쎄하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면담이라는 미명 하에 악담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두 귀를 막아버린 팀장에게 난 입을 닫았다.(애덤 스미스님 죄송해요.) 면담 후, 혼자 회의실에 멍하니 앉아 청승을 부리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짝꿍이 나를 괴롭힌 사건 이후 근 30년 만에 엉엉 울며 고자질했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고, 이러다 내가 날 죽일 것 같다고 엉엉 울었다.
그렇게 나는 내 커리어를 패대기쳤다.
무턱대고 쉬기
내가 나에게 내린 처방전이다.
지금까지 나의 목표와 욕심은 모두 회사 안에 있었다. 그걸 버렸으니, 이제 남은 건 쉬는 것뿐이다.
주중에! 무려! 햇빛을 보며 강아지와 산책하고, 무려! 주중에! 부모님과 언니를 만나고, 언니에게 약 50권의 책을 기증받아 읽고(아직 몇 권 못 읽었다), 넷플릭스를 하루 종일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강연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고, 자고 싶을 때 잤다.
6개월이 지나니 처방전의 효력이 느껴졌다.
'이제 시작해 볼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억 속 시간을 리뷰하기로 했다.
퇴근 후 샤워할 때면 '오늘의 이불 차기' 프롤로그인 머릿속 외침을 시작했다.
'그때 그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참는 게 맞는 걸까? 그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독백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학창 시절엔 그렇게 와 닿지 않더니 이젠 매일 주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진정한 배움이란 이런 것인가.)
생각해보면 머릿속으로 일기를 썼던 것이다. 글로 옮긴 건 아니었지만,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써 내려가야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이제 머릿속에서만 아우성치던 말을 글로 옮기려 한다.
기억 속 시간을 리뷰하는 것.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책 <책 한번 써봅시다>(작가 장강명)
"글의 힘은 참으로 오묘하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변신한다. 그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간다. 에세이 작가는 단어와 자기 마음을 함께 빚는다. .. 에세이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