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강 의인화하기/먼지
나는 먼지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고, 그들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하는 존재. 태어남과 소멸의 경계에서 늘 긴장과 두려움을 멈추지 못하며 움직이는 나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나의 하루는 이부자리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밤새 몸을 뒤척일 때, 이불속에서 작은 바람이 인다. 그 바람 틈으로 풀썩거리며 내가 태어난다. 인간의 피부에서 떨어진 각질, 이불과 옷에서 떨어진 섬유, 바람을 타고 들어온 미세한 입자, 알게 모르게 떨어지는 작은 파편에서 생겨나는 나. 우리가 쉼 없이 만들어 내는 이 작은 존재들을 사람들은 ‘먼지’라고 부른다.
나는 공기 속에서 떠다니는 동안 숨을 곳을 찾는다. 머무르지 않고 흩날리는 게 나의 본질이라 어디든 안착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순택 씨 집안의 구석진 곳으로 숨어든다. 전등갓 위, 소파와 창문 틈새, 손이 닿지 않는 장롱 위의 외딴섬, 커튼 주름 깊숙한 골짜기, 그리고 책장에 꽂힌 책들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아, 순택 씨 아들 방에 세워진 전신거울에도 촘촘히 자리를 잡는다. 한 폭의 그림처럼 거울 위에 착 둘러붙어서 옷을 입고 이리저리 폼 잡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은 인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숨터이자 은신처다. 나는 인간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인간은 용케도 나의 은신처를 찾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총동원한다. 청소기는 거대한 폭풍처럼 나를 빨아들이고, 젖은 걸레는 숨통을 조이는 무기가 되며, 공기청정기는 나를 추방하기 위해 만든 작은 지옥문이다. 좁은 틈에 숨어 있는 나를 인간들은 기어코 찾아내어 “여기도 있었네”라고 탄식을 내뱉는다. 긴 막대, 마른걸레, 먼지떨이, 때로는 햇빛까지도 도구가 된다. 햇살이 거실 안으로 찬란하게 스며들면, 깔끔쟁이 순택 씨는 햇빛을 돋보기 삼아 나를 낚아챈다. 거실 바닥에 내려앉기라도 하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노란 테이프를 둥글게 말아 나를 찍어 누른다. 순택 씨가 나를 못 살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어 달 전에 다리를 다쳐 걷지를 못하다 보니 유독 나한테 관심이 많다. 온종일 거실에 앉아서 틈만 나면 나와 전쟁을 벌인다. 마치 나와 사생결단하는 것이 유일한 일인 양.
순택 씨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은 달갑지 않은 나와 수시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과 나는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이 숨 쉬고, 먹고, 움직이는 순간마다 나는 태어나고, 내가 존재하는 한 그들은 청소라는 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인간은 나를 악으로 규정하지만, 나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그들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나는 인간의 그림자이며 잔해이고, 그들이 남긴 미세한 우주다. 너무 가볍고 보잘것 없어서 천대받는 나, 하지만 늘 어디에나 존재하는 나, 결국 나는 인간들이 남긴 사랑과 슬픔의 잔해이니, 나를 다 비워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정윤 샘 피드백
‘먼지’라는 작고 사소한 존재를 화자로 설정하여 인간의 삶을 관조하는 독특한 시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매일 닦아내는 먼지를 ‘인간의 분신’이자 ‘미세한 우주’로 표현함으로써,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기로 바라보게 한 작품입니다. 또한 감각적이고 세밀한 묘사가 뛰어납니다.
‘전등갓 위, 커튼 주름 깊숙한 골짜기’와 같이 공간적으로 시각화한 표현은 생동감을 줍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관조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문장의 ‘인간들이여 인정하라’ 라는 선언적 표현은 갑작스럽고 위압적으로 느껴집니다. 먼지의 ‘가볍고 연약한’ 속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결국 나는 당신들이 남긴 사랑과 슬픔의 잔해이니, 나를 다 비워낼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식의 여운으로 마무리하면 훨씬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순택 씨’라는 구체적인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와 먼지 사이의 특별한 에피소드보다는 ‘청소하는 인간’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습니다. 순택 씨가 외로움에 몸을 뒤척일 때 발생하는 먼지라든지, 그의 노쇠함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존재로서의 먼지 등 내밀한 연결 고리가 한 문장이라도 추가된다면 서사적 재미가 더 커질 것같습니다.
능수버들 답글
오! 작가님 피드백 대단하십니다. 샘이 지적하신 부분 보완해서 수정해 보겠습니다.
(초록색 부분 수정한 것이랍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달포 전쯤에 만나게 된, 81세 할머니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케어하는 분인데 어찌나 먼지와 사투를 벌이시는지, 그녀의 모습을 과제물로 써보고 싶어서 불현듯이 쓴 글입니다.
부족한 글을 훌륭하게 피드백을 해 주신 정윤 작가님(샘) 고맙습니다.
이래저래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니랍니다.
무엇이든 글을 쓸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