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단풍구경
2강) 사진보고 자세히 쓰기
지난주에 다녀온 단풍 구경 사진을 꺼내 보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싸늘해질 때 오랜 친구와의 추억을 되짚어 보고 나면 따뜻한 바람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 아래 소나무, 자작나무, 감나무까지 저마다 잎이 제법 떨어진 가지를 뽐내며 산을 채우고 있다. 문경새재 올라가는 길 가장자리에는 자작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들고 줄지어 서서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미로공원이 있다. 미로공원 오른쪽으로는 나무 울타리를 세워 둔 산책길이 펼쳐져 있다. 산책길 왼쪽으로는 낮은 관목이 줄지어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관목 옆쪽으로는 잎이 다 떨어져 버린 이름 모를 나무들과 전나무들이 산책하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흰 구름은 파란 하늘을 더 푸르게 만들어 준다. 하늘에 맞닿아 있는 나무들의 가지가 겨울옷처럼 포근해 보인다. 멀리서 보니 나뭇가지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계획하지는 않았을 텐데 산 아래쪽 나무의 나뭇잎은 주황색, 그 위에는 초록색, 가장 위쪽은 앙상한 갈색 가지를 흔드는 나무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산책로에는 플라타너스가 줄지어서 산책로 가로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산책길은 잘 다져진 평지 흙길이라 가족단위나 단체 관광객들도 무리를 지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어간다.
친구와 징검다리를 건너 미로공원을 둘러보고 공원 오른쪽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많이 춥냐는 나의 질문에 아침 일찍 멀리 강원도에서 온 사람이라며 친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M의 느닷없는 유머가 오늘도 나를 웃게 만든다. 흰색 경량패딩을 입고 온 나와 달리 친구는 폭신한 회색 겨울패딩을 입고 노란 목도리까지 둘렀다. 편안한 검은색 체육복 바지에 검은 운동화를 신고 언제나처럼 나보다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른쪽 위에서 햇살이 비친다. M의 왼쪽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모자까지 눌러썼지만 그림자는 길지 않다. 내 그림자는 어땠을까. 둘러보니 온통 풍경 맛집이라 내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주변을 보느라 정작 내 모습을 볼 시간은 길지 않았다. 혼자 온 것도 아닌데 친구랑 사진 한 방 찍어야겠다. 남는 건 사진뿐이고 우리는 마지막 가을을 즐기러 왔다. M의 생일 겸 가을 나들이날이다. 문경새재 표지석 앞에서 우리는 모자와 마스크를 내리고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어본다.
2년 전 이 맘 때 왔었는데 고즈넉한 가을 풍경은 여전히 근사했다. 날은 좀 더 따뜻해졌고 우리가 즐겨 찾는 식당은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는지 12시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든든하게 삼겹고추장구이와 신선한 쌈채소로 배를 채우고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끝까지 올라가 보자.
해 지기 전에 가야지 운전하기 편하잖아. 대구까지 2시간은 걸릴 텐데.
그럼 알람 맞춰놓고 가자. 밤운전이 힘들긴 하지.
2년 전에 왔을 때 보다 우리는 할 얘기가 더 많았다. 내년엔 어떤 업무를 하게 될까, 어느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겨울엔 어디로 떠나 볼까. 수능 본 고등학생에게 희망 대학교를 먼저 물어봐도 될까. 다음에 만나면 그동안의 이야기로 새로운 수다가 계속될 것이다. 실컷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옛 주막터에 다다랐다.
문을 들어서니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가을이라 갈색 풀이 훨씬 더 많았다. 이곳에서 한양 가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었다 갔겠지. 방 있어요? 여기 국밥 한 그릇이요. 한양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사극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인을 대동하고 먼 길을 떠나는 갓을 쓴 양반들, 장사를 하러 봇짐을 메고 먼 길을 걸어온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혹시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산길에 호랑이라도 만나면 가마를 버리고 도망가기 바쁠 테니까. 그리고 아무리 계급사회지만 산길에 가마를 타는 것은 사람 된 도리가 아니다.
조금 있으려니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경광등을 달고 도착한 소방관들은 들것을 꺼내어 지쳐 보이는 등산객을 눕히고 차 안으로 데려갔다. 산에서 아프면 큰일인데 다행히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구급차가 빨리 왔네. 평지라서 차가 올라오니 다행이다. 산길이면 헬기 띠워야 하는데.
전에 아는 사람이 친구랑 한라산 갔다가 친구가 다리를 다쳤거든. 그때는 산길이라 구급차가 못 올라와서 큰일 날 뻔했데.
그럼 어떻게 내려온 거야?
곤돌라처럼 산 정상까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는 쓰레기 분류배출 관리 시설을 이용했데. 그 안에 앉아서 내려온 거야. 무섭고 냅새는 났겠지만 한라산에서 조난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2 관문에 도착했다. 지난번에는 1 관문 중턱까지 왔는데 2년 동안 운동한 보람이 있다. 하지만 무릎이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빠른 발검음에 맞추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친구야, 이제 천천히 가도 되겠다.
요즘 걷기 할 때 무릎 보호대 많이 하더라 그러면 너도 무릎이 덜 아플 거야.
다음번에는 3 관문까지 가 보자
그 때는 우리 아침 일찍 보는 거야?
아니, 문경새재 셔틀버스를 이용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