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문치 글 | 마이클 마첸코 그림 | 김태희 옮김 | 1998
이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네요.)
어떤 의도로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는지 궁금합니다만, 뭐 짐작은 갑니다.
저는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을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였는데 이제야 읽었네요.
왜 그 책에 여자들이 열광(?)했는지 읽고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두서너 권 봤습니다. 끝까지 읽은 것도 있고 그냥 쓰윽 훑어만 본 책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종이 봉지 공주>가 참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꼭 '공주'여야 했는지는 마음에 안 듭니다. ㅎㅎ
여자로 산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형편이 좀 나은 나라도 있고 조금, 혹은 가혹하게 더 심한 나라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나라, 꼭 내 얘기인 듯한 '김지영'에 애틋한 맘이 쓰이는 건 당연한 걸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여자로 산다는 게 요즘 참 많이 쓸쓸합니다.
나이가 딱 그런 나이네요. 우리나라 평균 수명으로 볼 때 인생의 반을 넘어가고 있는 나이거든요.
앞으로 더 쓸쓸해지지나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왜 좀 더 나이가 어릴 때, 좀 더 팔팔하고 뭔가 호기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에 종이 봉지 공주처럼 로럴드 왕자를 '뻥' 차 버리지 않았는지 후회가 됩니다.
뭐 소용없는 일이지요. 지나간 일은 말입니다. ^^;;
뭔가 내세울 게 없어서만은 아닙니다.
제가 공주가 아니라서... 뭐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것도 아닙니다.
경제력! 그걸까요? 그것도 한몫하겠지요.
흑수저인 까닭에... 그걸 대물림 해야 한다는 슬픈 현실..
그게 제 쓸쓸함에 50프로쯤 차지할까요?
그럼 나머지는 무얼까요?
쓸쓸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자의 쓸쓸함에 대해서요.
남자도 많이 쓸쓸하다는 걸 압니다.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은 어쩌면 쓸쓸함은 사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남자가 아니니 그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일단 저는 여자만 생각합니다. 여자는, 정말 사회적 약자가 맞습니다.
그렇게 부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한 여자들의 삶에 대해, 쓸쓸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너무나 깊은 수렁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 봉지 공주'처럼 다 타버린 옷을 종이 봉지로 대신할 만큼 재기 발랄하지 못한 탓일까요? 나이를 너무 먹은 걸까요?
여자를 깊이 이해하고 깊이깊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 노력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만 여자 안에 갇히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딸로 살아야 하고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안에만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로널드 왕자와 결혼하고 말았지만 언제까지나 그의 잔소리를 들으며 후회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현실은 받아들이지만 저의 이상은 인간에 대한 애정, 연민을 키우는 것입니다.
종이 봉지 공주에게 온 시련이 앞으로 언제든 또 닥칠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 선택의 시간, 시련의 시간이 오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내가 갈 길에 대해 결정할 수 있길 바라니까요.
공주가 당당하게 종이 봉지를 걸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