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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ul 07. 2024

환자들만이 사는 세상.

에세이

 한 달 전부터 매일매일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한때 소장하고 아끼던 물건들. 예를 들면 책갈피, 볼펜, 메모지, 작은 그릇, 인형, 액세서리 등등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중 가격이 나가는 물건들은 당근마켓에 올립니다. 사진을 찍고, 가격을 정하고, 설명란에 내가 이 물건을 파는 이유를 씁니다.

물건의 성능이나 기능보다는 변명거리만 적습니다.


-얼마 안 쓴 물건입니다.

-거의 새 상품이에요.

-정말 싸게 팝니다.

-좋은 기획 놓치지 마세요.


하소연하듯 홍보를 합니다. 그러면 얼마 후 ' 당근!'이라는 알람소리와 함께 관심 있어하는 구매자들의 메시지가 옵니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구매자와 약속을 하고 만날 장소를 정합니다. 약속한 장소에 나가 구매자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거래를 시작합니다. 구매자는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그러면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긴장을 합니다. 얼굴이 벌게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구매자의 눈치를 봅니다. 고민하던 구매자는 결심한 듯 '계좌번호 알려 주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활짝 웃으며 계좌번호를 또박또박 알려주고 돈을 받습니다. 마치 혹하나를 땐 것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구매자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은 마치 엄청난 계약을 성사시킨 것처럼 날아갈 듯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후기란에 내 물건을 구매해 줘서 고맙다며 구매자를 칭찬합니다. 내 물건을 사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말이죠.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삶이 잠시나마 행복합니다. 그렇게 저의 관심과 사랑을 받던 나의 물건들,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던 소외된 나의 물건들은 더 행복한 세상으로 떠나보내줍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내 방에는 낡고 오래된 책만이 남았습니다. 책도 보내려 하니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려 합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떠나보낸 물건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집니다.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들은 나의 웃음을 기억하겠죠? 그들이 내 방에 들어오 날, 좋아하던 나의 미소를 기억하겠죠? 쓰리고 쓰린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언제부터인가 삶이 무덤덤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살아가는 방법을, 살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이제야 터득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또 읽고, 쓰고, 생각하고

또, 또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이것만 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일도, 인간관계도, 내가 허락하는 만큼만 마음이 가는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슬프면 울고, 웃기면 웃고 그리고 그 나머진 읽고, 쓰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비겁한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비겁하게 에둘러 글로 쓴다고 말이죠.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비겁하기 때문이죠. 비겁하기에 글을 씁니다. 도망치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죠. 물론 제 생각입니다. 나에게 도망갈 곳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나는 잘 몰랐습니다. 내 주변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아픈 환자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아프고

내가 제일 외롭고

내가 제일 우울한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놀란 나는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검은 어둠 속에서, 마치 땅속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듯, 하나둘씩 아픈 얼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세상에는 아픈  환자의 얼굴들로 가득했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엄마는 칠십 초반의 어쩌면 조금 이른 나이에 요양병원에 들어가셨습니다. 옆에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 나이가 80대에서 90대입니다. 그중 우리 엄마가 가장 어립니다.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서는 내가 제일 영하다고 말이죠.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은 엄마는 요양병원 생활이 적응되니 점점 좋아지셨습니다. 흐릿했던 정신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이 지날 때쯤, 엄마는 그제야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흘릴 수 없는 눈물을 참느라 목이 아파왔습니다.  엄마는 꼭 나아서 다음 달에 퇴원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엄마의 희망을 꺾습니다.


"엄마는 환자야! 퇴원은 안 돼"라고 말이죠.  나의 비겁함으로 말이죠.


병원 침실에 누워 천장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본인의 인생의 마무리를 이곳에서 해야 한다고 슬퍼할까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어야 하나라고 자책할까요?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정신이 없었을 때 죽었어야 했다고 말씁하십니다.  그 말로 엄마가 지금 얼마나 외롭고 슬플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곧바로 나의 비겁함이 투사됩니다. 내가 버린 한때 애장 하던 물건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돈을 받고 팔려버린 그들 생각에, 죄책감에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내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늙은 노인이 보입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징그럽게 싸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떠실까요? 해방감을 느끼셨을까요? 아니면 평생의 동반자가 먼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미안함을 느끼셨을까요?

엄마와 동생과 나는 주문하듯 말해왔습니다. 엄마가 더 오래 사셔야 한다고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버지가 홀로 남으면 더 큰일이라고요. 아버지는 밥도 못하시고, 세탁기도 못 돌리시고, 음식도 못하시고, 청소도 못하십니다. 그냥 돈만 벌어오면 엄마가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우리는 엄마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왔습니다.



나는 벌을 받은 걸까요? 악행을 하면 불행으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결국 엄마가 먼저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건강하십니다. 나의 비겁함때문에 멋지게 한방 먹은 것 같습니다.  보란 듯 아버지는 혼자서 밥도 하시고, 세탁기도 돌리시고, 음식도 하시고, 청소도 하십니다. 아버지가 혼자 사시는 집에 가면 오히려 향기가 납니다. 이렇게 하실 수 있는데 왜 수 십 년을 못 하셨을까요? 아니 안 하셨을까요?  어쩌면 아버지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 삶을 아내가 없는 삶을 이겨내려 하시는 거 같습니다. 안 그러면 너무 쓸쓸하고, 우울해서 견디기 힘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내는 대만의 유명배우 '비비안 수'를 닮았습니다. 말하는 것이 직업인 아내는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한날 얼굴 한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왼쪽 눈과 왼쪽 입꼬리가 아래로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뇌출혈이 의심되어 응급에 갔습니다. 의사 파업 중이라 응급실은 썰렁했고 환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나의 아내만 아픈 사람 같았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왜! 나의 가족만 아픈 거지?"라고 말이죠. 잠시 후 아내 병명이 나왔습니다. '구안와사' 들어본 적은 있지만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은 점점 내 마음처럼 삐뚤어져 갔습니다. 나도 옆으로 쓰러지듯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반려묘인 보리가 바닥에 토를 해놨습니다.

유일하게 힘차게 뛰던 보리도 힘없이 누워있습니다. 밥과 물도 거부한 채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옹이가 생각났습니다. 나의 비겁함에 또다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환자가 사는 세상'으로 빠져버린 거 같았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물건들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분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비겁함을 죽인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내 비겁함으로 그 대가를 가족들이 받는 것이라면  모두 거둬들이기로 했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나는 무한한 것을 깨달은 느낌이었습니다. 미움도, 두려움도, 좌절도 다시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거 같았습니다.


얼마 전 운전 중에 나의 실수로 인해 상대방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창문을 내리고 나를 보며 욕을 하는 듯한 입모양을 보냈습니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그를 보며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며 미소 짓습니다. 반대편의 차량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눈부셨습니다. 마치 그가 환하게 웃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 아침, 바쁜거 없이 마음이 급한 나는 내 손이 미쳐 빠져나오기 전에 차문을 닫았습니다. 손가락은 차문에 끼었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나도 병원에 갔습니다. 


손가락을 다친 후,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계획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작은 사고가 오히려 나에게 휴식을 주는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에 놓치고 지냈던 햇살과 바람, 나무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가락이 불편해서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걱정하면서도 웃으며 “너답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하며 웃었고,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다친 것은 분명 아프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하루 동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여유와 소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에 감긴 붕대를 보며 나는 미소 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도 환자네!“



나는 환자가 사는 세상의 일부가 된 거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의 비겁함이 조금이라도 용서가 될까 해서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장마철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지만 언젠가는 비는 꼭 올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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