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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책방 Jun 20. 2024

나의 왼쪽에게 사죄하는 글

어른 동화

나는 나의 왼쪽에게 사죄한다.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고, 나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다. 

다시 한번 나의 왼쪽에게 무릎 꿇고 정중히 사죄한다.




나는 운동선수다.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 야구선수이다. 그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왼손 투수이다. 내가 던지는 공은 뱀처럼 날아가 포수의 글러브에 꽂힌다. 그 어떤 타자도 내 공을 칠 수 없다.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경기 날이었다. 내가 던지는 공하나에 우리 팀의 승패가 달려있었다. 나는 최고의 왼손투수이기에 자신 있었다. 나는 나의 왼팔을 믿고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엇! 그런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마치 왼팔은 내 팔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사라졌다. 팔을 힘껏 내던졌지만, 공은 타자 앞에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볼이다. 이럴 수는 없다. 너무 긴장해서일까?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다시 한번 공을 던졌다. 공은 또다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타자 앞에 흐믈흐믈 거리며 날아갔다. 타자는 맥없이 날아오는 공을 쳐내 홈런을 만들었다. 결국 마지막 공 하나로 우리 팀은 경기에서 졌다. 나는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날부터였다. 나의 왼팔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왼팔뿐만이 아니었다. 왼발 또한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똑바로 걸으려 해도 자꾸 오른쪽으로만 쏠리게 걸었다. 게다가 왼쪽 눈의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왼쪽 코로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는 반만 기능하는 인간이 되었다. 아니 오른쪽만 기능하는 반쪽 인간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왼손잡이다. 당연히 왼발잡이고 왼쪽눈이 더 잘 보이고, 왼쪽 귀가 더 잘 들린다. 그리고 왼쪽 콧구멍이  냄새를 더 잘 맡는다. 음식도 왼쪽으로만 씹어 왼쪽 얼굴 근육이 더 발달되어 있다. 이건 단점일 수 도 있는데, 얼굴이 왼쪽이 더 발달된 비대칭형이다. 또한 사상도 좌파다. 나는 우파들을 무시하고 깔보았다. 우파가 지배하는 세상은 망할 거라 주장했다. 이렇게  나는 대다수가 오른쪽인 세상에서 왼쪽만이 가지는 우월감으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왼쪽이 더 발달된 것은 아니다. 왼쪽을 더 선호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다. 그러니 왼쪽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왼쪽을 더 많이 훈련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발달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왼쪽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왼쪽이 사라진 반쪽이 인간이 되었다. 아니, 왼쪽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이지 몰라 병원에 가보았다. 신경과에서는 의학적으로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오히려 잘 발달된 왼쪽 때문에 오른쪽이 약해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문제라는 건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말했다.


" 강박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한 전환장애일 수도 있겠네요. 그것보다 먼저 왼쪽에게 사과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 무슨 회개 망측한 말이란 말인가. 사과를 하라니? 그것도 내 몸의 왼쪽에게 말이다. 이런 돌팔이에게 더 이상 들을 말이 없었다. 나는 의사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병원을 나오면서도 왼쪽으로 돌 수가 없어 오른쪽으로 몇 번이나 뱅뱅 돌고 나서야 병원 문밖을 나올 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했다. 사과? 사과를 하면 정말 왼쪽이 돌아올까?

나는 왼쪽에게 말했다.


"왼쪽아 미안하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할게. 내 사과를 받아줘"




왼쪽이 말을 듣지 않자 내 삶도 완전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왼팔로 공을 던질 수 없었고, 왼발에도 힘이 없어 걸을 때마다 비틀거려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내 증상은 이렇다.


-왼손으로 밥을 먹을 수 없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면 음식의 대부분을 땅에 흘리고 만다. 또 왼쪽으로 씹을 수 없어 오른쪽으로 대충 씹고 음식을 넘기니 소화불량에 걸린다.


- 방향을 왼쪽으로 돌 수가 없다. 왼쪽으로 돌 수가 없으니 왼쪽으로 가기 위해선 오른쪽으로 몇 번이나 뱅뱅 돌고 나서야  원하는 곳에 갈 수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운전할 때이다.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핸들을 왼쪽으로 돌릴 수가 없어 몇 번이나 사고가 날뻔했다. 


-왼쪽 뇌의 기능에도 문제가 생겼다. 왼쪽뇌는 말하고 읽고 쓰는 언어적 능력과 계산 능력을 맡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말을 제대로 할 수 도 없고, 간단한 계산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나는 반쪽만이 살아있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세상의 반쪽은, 아니 왼쪽은 사라졌다.    




 나는 적응해야 했다. 왼쪽을 사용할 수 없으니 오른쪽을 사용해야 했다. 나는 오른팔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오른팔로 공을 던지자 공은 타자들 몸에 맞거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나의 오른팔은 내 왼팔만큼 훌륭했지 못했다.  그동안 왼팔로만 훈련하고 왼팔에게만 마사지를 하고, 혹시나 왼팔이 다칠까 봐 조심조심 다루었다. 마치 오른팔은 그동안의 서러움을 한풀이하듯, 오른팔이 던지는 공은 모두 타자들이 맞추기 쉽게 날아갔다. 나의 오른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왼발을 항상 먼저 씻었고. 왼발이 땅에 닿아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오른발을 밑에 깔고 왼발을 그 위에 놓아 다리를 꼬았다. 그러면 오른발은 항상 답답해했고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했다.  덕분에 왼발은 허공을 휘두르며 리듬을 타며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역시 오른발도 그동안의 서러움을 복수하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 오른발은 땅에 닿으려 하지 않았다. 발에 더러운 무엇인가가 묻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오른발은 들고 맥 빠진 왼발로만 콩콩 뛰어 걸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오른발을 들고, 오른 팔로 중심을 잡으며 오른쪽으로 도는 모습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거울에 비추는 내 모습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마치 반쪽이만이 찌그러진 빈 깡통 같았다. 왼쪽눈과 왼쪽 입은 아래로 쳐져있었고, 왼쪽 팔과 왼쪽 발은 수줍과 오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그리웠다. 당당하고 늠름했던 왼쪽이 그리웠다. 


" 그래 나에겐 오른쪽이 남았어. 좌절하지 말자!"


나는 오른쪽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왼쪽이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오른쪽 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오른쪽이 말했다.


"너는 지금까지 왼쪽만 좋아하고, 왼쪽만 사용하면서 살아왔어. 그동안 우리  오른쪽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니?"


나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랐다. 나는 단지 편하고 잘 사용할 수 있는 왼쪽을 사용한 것뿐인데 오른쪽이 서운해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오른쪽에게 미안했다. 나는 오른쪽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오른쪽에게 말했다.


" 미안해!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나는 오른쪽에게도 사과했다. 오른쪽을 자주 쓰다듬어주고, 씻겨주고, 마사지해 주고, 훈련시켜 주고, 사랑을 주었다. 그렇게 하니 오른쪽이 서서히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내가 오른팔로 공을 던지면 아주 빠른 속도로 포수의 글러브에 꽂혔다.  타자들은 왼팔로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오른 팔로 던지는 내 공을 치지 못했다.  걸을 때도 오른발이 힘 있게 땅을 내디뎌 주어 왼발이 제 기능을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른쪽이 왼쪽을 대신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왼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기운이 솟구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팔짝팔짝 뛰었다. 또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왼쪽이 갑자기 힘을 주어 사고가 날뻔한 적도 있다. 오른팔로 공을 던지면 갑자기 왼팔도 움직여 공을 양손으로 던지는 우스깡스러운 꼴이 되기도 했다.  오른발이 먼저 나가려 할 때 또 갑자가 왼발도 나가려 해 넘어지기도 했다. 나의 왼쪽과 오른쪽은 서로 먼저 움직이려 했다. 내 모습은 마치 길거리의 홍보용 풍선처럼 양팔과 양발이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꼴이 되었다.


나는 갑자기 움직이는 왼쪽에게 물었다.


"왼쪽아 반가워. 그런데 네가 갑자가 움직이려 해서 오른쪽이 혼란스러워해."

왼쪽은 대답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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