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유리창에 스며든 저녁놀에 차 안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붉은 물감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듯, 차 안은 순식간에 선홍빛 세상으로 변했다. 핸들을 돌릴 때마다 방향을 바꾸며 쏟아지는 햇살은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뛰놀던 때의 설렘과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눈부신 빛에 잠시 저항하다 결국 선글라스를 썼다.
검은 렌즈가 세상의 색을 걸러내자 하늘이 창백해졌다. 그 위로 무거운 구름이 먹물처럼 번졌다. 마치 누군가가 하늘이라는 캔버스에 음울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내 마음속 어둠의 반영을 보는 듯했다. 서서히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도로 위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반딧불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마치 무언가 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 같았다. 그 소리에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핸들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 빗방울이 하나둘 앞 유리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와이퍼의 규칙적인 움직임이 마치 시계추처럼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리듬에 맞춰 내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전화를 받자마자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짜증, 분노, 체념이 뒤섞여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왜? 또 왜!"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엄마가 지하철 계단에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 최근 엄마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며 동네 병원을 전전하던 엄마의 모습. 결국 대학 병원에 예약을 잡아두었던 일까지.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더 강하게 말렸어야 했나? 아니면 직접 모셔다드려야 했나? 자책감과 후회 그리고 엄마의 고집에 대한 원망이 교차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했던 내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처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흘려들었고,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
"왜 자꾸 일을 만드는 거야, 엄마. 왜?" 분노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간 감정의 복잡성을 깨달았다. 걱정과 사랑, 짜증과 분노가 충돌했다. 엄마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그 과도한 희생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나에 대한 자책감까지.
운전대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엄마 집 앞에 차를 세우자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밀려왔다. 긴 운전의 스트레스가 뒤늦게 몰려와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나도 모르게 핸들에 이마를 기댔다. 차 안을 가득 채우는 긴 한숨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눌렀다. 내 나이만큼 부모님도 늙어간다는 냉혹한 현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젊고 활기찼던 부모님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의 그들은 이미 노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가슴을 옥죄었다.
현실을 외면하려 할 때마다 죄책감이 마음을 할퀴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깊은 한숨과 함께 시동을 껐다. 차에서 내리며 문을 거칠게 닫는 소리가 고요한 주차장을 울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발걸음마다 '쿵쿵'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현관 앞에서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문을 열자 휑한 적막과 함께 익숙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노인의 체취, 오래된 가구의 묵은 냄새,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나를 감쌌다. 문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가운 금속 감이 현실을 일깨웠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 선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린 시적 엄마가 있는 공간엔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마늘, 양파, 간장 냄새가 뒤섞인 뭔가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 같은 냄새. 그 향기는 마치 엄마의 사랑과 가족의 온기를 담은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음식 냄새와 환자의 냄새가 뒤섞인 냄새가 뒤섞여 구역질을 느끼게 했다.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지만 사라진 색체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공간을 채웠다. 거실 가운데 여동생 현정이 앉아 있고 엄마와 아버지는 죄지은 사람인 양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 셋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면과 공간을 가득 채운 냄새에 짜증과 분노가 무뎌지고 대신 무력감과 슬픔이 자리 잡았다.
"왜들 그러고 있어" 내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세 사람은 긴장한 듯,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커피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선은 커피잔 속의 불투명한 액체에 고정해 두었다. 그 갈색 액체 속에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안 봐도 뻔한 가족들의 얼굴을 쳐다보기 두려웠다. 커피 향이 코끝을 스쳤지만, 그 익숙한 향조차 이 무거운 공기를 뚫지 못했다. 입안에 맴도는 쓴맛이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환자가 된 뒤로 여동생과 나는 병원 진료 일정에 맞추어 각자의 스케줄을 조절하고 보험 약관을 뒤져가며 적용 범위를 확인하였다. 우리의 일상은 병원 방문과 약 복용 시간표로 가득 찼다. 엄마는 혹시나 해서 들어둔 암보험을 정말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돈 걱정은 덜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엄마, 돈 걱정하지 마! 현정이하고 내가 잘 버는데."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억지로 눌러 담았다.
그렇게 말하며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주름진 얼굴에 힘없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엄마의 얼굴에 이렇게 많은 주름이 생겼을까? 언제부터 엄마의 눈빛이 이렇게 희미해졌을까?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침묵하는 아버지를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가슴속에서 짜증과 슬픔이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휘청거렸다. 그 순간, 열 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날이었다. 친구들과 놀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변명했지만, 아버지의 손이 내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 새끼가 감히 거짓말을 해!"아버지의 고함과 함께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부모님은 나를 두들겨 팼다. 아버지는 욕설을 섞어가며 따귀를 때렸고, 엄마는 말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자문했다. 왜 맞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중년이 된 지금도 그 폭력의 기억은 내 영혼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곤 했다. 술과 일, 타인에 대한 분노로 그 기억을 덮으려 했지만, 지금 병든 엄마와 침묵하는 아버지 앞에서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등학생 때 집은 지옥이었고, 독서실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새벽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버지의 술 냄새와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두려웠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났을 때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나는 자유로웠다. 때로는 죄책감이 찾아왔지만, 그 감정마저도 멀리 던져버렸다. 명절에 집에 가는 것은 의무였고, 전화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갔다. 나는 새로운 삶,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교활했다. 더 큰 인생의 궤도를 그려 나를 그 거미줄 같은 선 위에 붙들어 맸다.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부모가 늙어가면서 우리는 나는 다시 가까워졌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아버지의 눈과 어머니의 미소가 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그들의 중력은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그동안 쌓아온 벽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진한 피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커피잔을 든 손이 떨렸다. 병든 엄마와 침묵하는 아버지를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용서할 수 없는 과거와 외면할 수 없는 현재 사이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순간부터 우리 가족의 삶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엄마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무능력한 남편 곁에서 홀로 가정을 일구고 사업까지 성공시켰다. 거친 손과 깊은 주름은 그녀의 고된 삶을 증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억세게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늦은 밤까지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웃으면서, 그녀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지독한 병과 싸우고 있다. 한때 강인했던 그녀가 이제는 한 움큼의 바람에도 쓰러질 듯 하다. 인생의 잔인한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고, 먹고사는 고통을 겪어보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버지, 빚쟁이들의 독촉, 자식들의 끊임없는 요구. 그 모든 것을 홀로 견뎌내야 했던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엄마도 누군가에게 응어리를 풀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였을까? 왜 하필 나였을까? 어린 시절 받았던 매질과 욕설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왜 나를 낳았냐고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나는 유일한 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라서 다행이었을까?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다면,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면. 이 생각에 이르자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우리의 관계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계속 변화했다. 서로 충돌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로를 치유하며 이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격렬하게 다투고, 때로는 따뜻하게 포옹하며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나갔다.
그날, 엄마와 나는 병원에서 10시간 동안 각종 검사를 받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고, 검사를 받을수록 엄마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나는 그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검사를 끝내고 병실에 누워있던 엄마는 이제 집에 가자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엄마는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흔들렸다. 급격한 어지러움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쇠 침대를 붙잡으며 간신히 병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날부터 엄마는 암 환자의 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관계가 모두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단단했던 땅이 갑자기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의사의 진단은 진단명은 '다발성 골수종'이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일종의 혈액암인데 암세포가 온몸을 돌아다니며 내장 기관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엄마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의 심장은 이미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언제 멈추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심장 소리를 언제까지 들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항암치료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그 결과는 어떠할지 알 수 없었다. 담당 의사는 어떠한 섣부른 희망도 우리 모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 우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었다.
병원을 나오는 길, 엄마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무겁고도 깊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우리는 아무 말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차에 오르면서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그 손길에서 나는 두려움과 동시에 강인함을 느꼈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아픈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는 엄마. 엄마는 말없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괜찮다고, 치료받으면 좋아진다고 떠들었으나 엄마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엄마는 그날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서야, 세상을 원망하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는 두려웠다. 도저히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벌써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두려웠다. 그날 밤부터 나는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운명은 돌고 돌아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나란히 흘러가게 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안고 나는 다음 날 아침 회사로 향했다. 여느 날과 같이, 정문이 보이자마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고, 온몸의 신경줄이 어김없이 팽팽하게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내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회사 입구 한쪽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회사 주변에서 살던 길고양이인데 평소에 내가 밥을 주곤 했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가까이 갔다. 이상하게도 녀석은 사람이 다가오는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무의식중에 발로 툭 쳐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녀석은 죽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길고양이의 죽음. 그건 드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궁금했다. 왜 죽었을까? 무엇을 잘못 먹었을까? 적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았을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치 엄마의 병을 처음 알았을 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곧이어 녀석이 낳은 새끼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에 세 마리였는데,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은 어미보다는 새끼들이 걱정스러웠다. 이 순간, 나는 엄마의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을 떠올렸다.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들처럼, 나도 앞으로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무거웠다.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 책임감은 엄마에 대한 것과 묘하게 겹쳤다.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이 작은 생명체들에 대한 책임감. 두 가지 무게가 내 어깨를 누르는 듯했다.
문득 집에 있는 고양이 보리가 생각났다. 저 녀석도 주인을 잘 만났더라면 보리처럼 따뜻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녀석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죄책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죄책감은 엄마에 대한 것과 닮아 있었다. 더 일찍 엄마의 건강을 챙겼더라면, 더 자주 연락했더라면. 이런 후회들이 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눌렀다.
죽은 고양이와 남겨진 새끼들, 그리고 병든 엄마와 나. 이 모든 상황이 겹쳐지며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생명의 연약함과 죽음의 불가피성,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책임. 이 모든 것들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할지 고민했다.
녀석을 처음 만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직 새끼이던 녀석에게 보리가 먹지 않는 간식들을 가져다주곤 했다. 물론 녀석은 나를 경계하며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간식을 내 발밑에 내려놓으면 그제야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다가와 맛을 보기 시작하면 과감하게 먹었다. 체구는 앙증맞게 작아도 겁이 없었다. 아직 어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 자란 고양이들은 오히려 겁이 많았다. 먹이를 보고도 다가올 꿈도 꾸지 않는다. 내가 자리를 피해 주면 그제야 다가와 먹기 시작한다. 가끔 나는 생각하곤 했다. 저 약하고 작은 동물들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호의적이지 않은 인간 세상 속에서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전날도 나는 길고양이 가족에게 먹이를 주고 멀리서 그들이 먹는 장면을 지켜보았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가끔 나는 몇 시간이고 그들을 바라보곤 하니까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조차 절대 지루하지 않다. 얼핏 졸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들의 귀는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에겐 사방이 위험이고 적이다. 늘 경계하며 사는 삶이 힘들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본능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내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삽을 들어 녀석의 차가운 사체를 들어 올렸다. 무게가 느껴졌다. 생명이 떠난 몸의 무게. 그 순간, 병원에 누워계신 엄마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회사 옆 공터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매 발걸음이 무거웠다.
잡초가 무성한 한구석에 도착해 잠시 멈춰 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적당해 보였다. 혹시라도 이 공터가 개발된다 해도 파헤쳐질 가능성이 없는 곳. 마치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엄마에 대한 걱정처럼.
삽을 땅에 박았다. 다행히 아직 땅이 단단히 얼지 않아 파기가 수월했다. 그럼에도 삽질마다 내 심장이 쿵쿵 뛰는 것 같았다. 마치 엄마의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과 같았다.
작은 구덩이가 완성되자, 나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 차가운 털을 마지막으로 쓰다듬으며, 구덩이 안으로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엄마의 날씬해진 손을 잡을 때마다 느끼는 그 연약함이 떠올랐다.
흙을 덮기 시작했다. 한 삽, 두 삽. 흙이 쌓여갈수록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새끼 때부터 봐온 녀석이라 그럴까? 내 고양이가 아님에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삽 등으로 흙을 살살 두드리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매장의 과정은 끝났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참을 서서 작은 무덤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두려움? 죽음에 대한 경외? 슬픔? 후회?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되어 내 안에서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발걸음을 돌려 사무실로 올라갔다. 창가에 기대어 서서 고양이를 묻어둔 공터를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보니 그저 평범한 잡초밭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제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후회의 물결이 밀려왔다. '내 잘못인 걸까? 새끼일 때 집으로 데려갔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과 싸우며 나는 필사적으로 자기 위안을 찾았다.
"아니야, 내 잘못은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어. 나는 그중 하나일 뿐이야."
하지만, 이 말도 내 마음을 완전히 달래지는 못했다. 엄마의 병도, 이 고양이의 죽음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모든 것을 잠시라도 잊고 싶어 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커피 향이 사무실에 퍼지며 잠시나마 마음을 달래주었다. 고양이를 제대로 묻어준 것에 대해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러지 않았다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마치 지금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느끼는 것처럼. 그런데 다음 순간, 또 다른 찜찜함이 밀려왔다. 정말 이걸로 끝인가? 이 작은 생명에 대한 나의 의무가 이것으로 모두 끝난 걸까?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나는 이 경험들이 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그리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그 고양이의 죽음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조금씩, 나는 이 경험이 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나가 그 녀석이 남겨둔 새끼 고양이들에게 갔다. 녀석들은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서로 뒤엉켜 놀고 있었다. 아니다. 아마 그 녀석들도 알 것이다. 어미가 죽었을 때 슬펐을 것이다. 낑낑거리며, 나름 애도도 했을 것이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서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통을 잠시 접어두고 일상 에 쉬고 있는 것뿐이다. 새끼 길고양이의 일상에. 나는 녀석들과 내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감정도 인간과 비슷할 거로 생각해. 다만 그 감정을 파헤치지 않을 뿐이지. 인간들은 뇌를 완벽하게 이해고자 했어.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어떤 부위가 있을 거고, 그것을 찾아내면 그 비밀도 쉽게 밝혀질 거라 믿었던 거야.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게 되었어. 만용이었지. 인간만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거 말이야. 너희가 알 수 없듯이 인간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간단한 감정이라 해도 모든 부분이 작용해야 해. 절대 알 수 없어. “
나는 그렇게 녀석들을 위로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다. 나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녀석들도 험한 세상을 길에서 살며 경험하고 느끼다 보면 조금을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나는 죽은 어미에게 했던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좀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힘차게 내일의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며.
몇 달이 지났고, 그새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덩치가 어미와 비슷해지자 한 녀석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한 마리가 되고, 결국 마지막 녀석까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놓아둔 사료는 지나가던 다른 길고양이가 먹어치우곤 했다. 세 마리 어린 고양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떠났다. 아, 그렇지. 녀석들은 애초에 길고양이 들었다. 어미가 떠난 뒤로 그들에겐 집이 없었다. 녀석들의 남기고 간 공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모두가 떠나야 한다고.
*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나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의사의 말은 희망적이었다. 항암치료 결과가 좋았고, 엄마의 몸속을 떠돌던 람다 수치는 기적처럼 정상인과 같아졌다고 했다. 심장내과에서도 더 이상의 악화는 없다며 안도의 말을 전했다.
"이대로만 쭉 가면 됩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나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의학적 수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이토록 클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항암치료의 고통은 엄마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갉아먹은 듯했다.
한때 건강미 넘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볼썽사납게 야위어버린 몸,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검게 변한 얼굴, 그리고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엄마의 눈빛은 더 이상 예전의 그 강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독사처럼 날카롭던 눈매는 이제 병든 병아리처럼 축 처져있었고, 단단하던 체구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엄마, 곧 좋아질 거야."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지만, 내 목소리에서조차 확신을 느낄 수 없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엄마는 점점 더 힘들어했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엄마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어 가슴을 옥죄었다.
그런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묵묵히 엄마의 병간호를 도와주던 아버지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피로감이려니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퇴원은 계속되었고, 그 빈도는 점점 잦아졌다.
"나도 좀 봐주면 안 되나?" 아버지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엄마의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화까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묵묵히 엄마를 돌보면서 자신의 감정은 억누르고 있었다. 관심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답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학적으로는 호전되고 있다지만 현실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엄마,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까지. 가족의 의미, 삶의 질, 그리고 진정한 회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병원 복도를 걸으며, 나는 엄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는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숨이 막혔다.
엄마의 암에 비하면 나를 괴롭히던 불안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내 존재가 그리 중요하냐며 자책했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어느 어두운 구석을 둥둥 떠다니는 먼지같이 느껴졌다.
엄마의 병실 문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1년 전 그 공터에서 고양이를 묻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작은 생명의 죽음이 내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병과 아버지의 반응을 겪으며, 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것인지 깨달았다.
"그래, 언젠가는 지금 이 시간도 끝날 것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다 끝난 그날이 올 것이다. 그럼 나는 편해질 것인가? 나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문득 죽은 고양이 옹이가 생각났다. 옹이가 죽었을 때 보리를 데려와 슬픔을 달랬던 기억. 하지만 인간은, 부모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절실히 느꼈다.
치료실을 오가며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수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라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내 귀를 상처 내듯 긁었다. 날카로운 그 단어는 내 이명과 함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용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우주의 먼지가 우주의 중심을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운명의 굴레는 돌고 돌아 결국 그날이 올 것이다. 내가 용서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이후의 나는 어떨까?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를 감싸 안고 모두를 사랑하게 되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엄마의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엄마의 고통, 아버지의 외로움, 그리고 나의 무력감.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이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고통스럽고, 힘들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순간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깊은숨을 내쉬고,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있는 그곳으로, 나의 현실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아직 용서할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는 생겼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우주의 먼지처럼 작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