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 눈빛은 겨울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죽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 사이를 건넌다. 그 어디에도 발 디딜 땅은 없다. 불안은 내가 앉는 의자 밑에 깔려 있고, 내가 마시는 물 안에 녹아 있고, 내가 잠드는 베개 속에서 숨 쉰다. 내게 주어진 하루는 시간이라기보다 감내의 길이다. 고요히 불타는 심연, 그것이 나의 출근길이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나를 환대하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향해 웃지 않는다. 인사를 건네는 입은 있지만, 그 말들은 표정을 갖지 못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맨살 위에 눈이 쌓이는 것 같다. 싸늘한 공기, 투명한 적대감. 나는 오늘도 회사 안의 가장자리에 선다. 마치 스스로 어딘가에 기대어 서 있는 그림자처럼.
그 회사의 아침은 싸늘하다. 누군가 웃어도 그 웃음은 문밖에 두고 온 물기처럼 메마르다.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전원을 누르는 동안에도, 나는 느낀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눈앞의 컵보다도 차가운 시선. 따뜻한 커피는 금세 식는다. 나를 지나치며 말없이 한숨을 내쉬는 누군가의 어깨가 내 하루의 시작을 끌어내린다. 나는 그 커피를 들고 책상으로 돌아오지만, 입은 마르다. 마치 혀 밑으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말이었다.
"그렇게밖에 못 해요?" "대체 뭐 하셨어요, 하루 종일?"
말은 칼이었다. 말은 뼈보다 깊은 곳을 찔렀다. 하지만 더 잔인한 것은, 그 말이 일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늘 조용히 흘러나왔다. 폭발이 아니라 침투였다.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먼지처럼, 회의록 틈에 삽입된 조롱처럼. 회의 중, 내가 발언하려고 입을 열면 누군가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마치 내 말은 시간낭비라는 듯.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언제나 수정 요청만 돌아온다. 그런데, 수정 지시서는 없다. 그저, "이건 아닌 것 같네요." 그 말 한 마디. 나는 다시 엑셀 창을 연다. 셀의 그물 안에 갇혀 하루를 허우적거린다.
그다음은 침묵이었다.
부서 단톡방에 올라온 회의 일정, 나만 초대받지 못한 회의실.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다는 걸 팀장이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날들. 그들은 말했다. "아, 말 안 했었나? 미안~" 미안하다는 말은 뿌옇게 흐려진 유리처럼 맥없고 얇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공백이 당연했던 것처럼. 어느 날은 나에게 배정된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고, 나는 보고서 파일 이름조차 모른 채 앉아 있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 무능해져갔다. 아니, 무능해지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말 나를 무너뜨린 건,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다.
그 눈빛.
비 오는 날 사무실 창가에 서 있다가, 우산 없이 뛰어오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시선.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매일 젖은 채로 출근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투명하게 흐릿한 얼룩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왜 저기 앉아 있지?’ 말로 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그 침묵 속의 경멸을. 나를 지나칠 때 굳이 얼굴을 돌리거나, 인사를 무시하거나, 웃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내게 닿는 순간 웃음을 멈추는 그 찰나들. 그건 무의식이 아니라 의지였다. 나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의지.
점심시간, 누군가 내 옆에 앉을까 망설이다 그냥 자리를 옮기는 걸 본 적이 있다. 회식 자리에서 내 잔은 늘 비어 있었고,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끊고 다른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내 등 뒤에 얼음물 한 바가지가 끼얹어진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때리진 않았다. 아무도 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부서졌다. 천천히, 조용히, 돌이킬 수 없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엽서를 한 장 꺼냈다. 그 위에 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문장 외에는. 나는 그 문장을 끝내 쓰지 못했다. 대신, 검은 펜으로 온통 칠해버렸다. 마치 내가 사라지고 싶은 욕망처럼. 그 종이 위엔 칠흑 같은 무게가 눌려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그 펜이, 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칼을 나를 향해 겨누지 않았다. 아직.
그래서 나는 쓴다.
이 글은 나의 무기다. 내가 나를 찌르지 않기 위해, 내가 타인을 찌르지 않기 위해. 이 문장은 분노의 견인차이며, 우울의 피난처이며, 불안의 항체다. 나는 내가 받았던 말들과 눈빛을 기억하기 위해, 그것들을 내 언어로 다시 이름 붙이기 위해, 이 에필로그를 쓴다.
이 글은 나를 향한 사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나를 방치해온 나에게. 더는 그 눈빛을 나의 거울로 삼지 않기 위해.
그러니, 이것은 끝이 아니다. 나는 내 안의 살기를 종이에 눕히고, 그 불안을 문장으로 묶고,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매일 무너지더라도, 다시 쓴다. 문장은 피처럼 흘러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쓰고 있다.
불안이 나를 침묵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