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진지하게 생각한다.
나를 지구에 파견한 누군가는 도대체 무슨 기대도, 무슨 설계도 하지 않았던 걸까.
영화 속 외계인은 대개 두 종류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거나, 인류를 멸망시키러 오거나.
레이저를 쏘거나, 최소한 하늘 정도는 날거나.
그런데 나는?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허리 잡고, 출근길에 커피 한 잔 없으면 시스템이 부팅되지 않는 종류의 외계인이다.
지구인들보다도 못한 체력과, 평균 이하의 사회성, 잔고를 보면 가끔 “혹시 나 지구인 맞네” 싶을 정도의 평범함.
한마디로, 나는 그냥 평범한 외계인이다.
애매하게,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정체성이 흔들리는 타입.
어릴 때는 줄곧 이렇게 믿었다.
‘언젠가는 뭔가 깨어날 거야.’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든가, 손바닥에서 에너지파가 나간다든가, 최소한 “집중하면 시계 바늘을 멈출 수 있는” 정도의 깜찍한 능력이라도.
그래서 잠 못 드는 밤, 나는 종종 실험을 했다.
시계 초침을 노려본다.
“멈춰라.”
초침은 아주 성실하게, 1초에 한 번씩 나를 무시했다.
또 어떤 날은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상상했다.
지금 여기서 점프하면, 사실은 나는 살짝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두 계단씩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진짜로 넘어진 적이 있다.
주변의 지구인들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이 행성에서, 초능력보다 더 보기 힘든 건 남의 실수에 아무 말 안 하는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그날 잠깐 깨달았다.
사실, 초능력이 있으면 뭐 할 거냐고 물으면 나도 딱히 답은 없다.
회사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 우주 저편에 던질 수도 없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의 기억만 정확히 지워 버리기에는 양심이 조금 있다.
(솔직히 말하면 능력이 있어도 쓸 엄두는 못 낼 성격이다.)
그럼에도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 사이에 여유 공간을 30cm씩 만들어 줄 수 있다.
모두가 숨을 덜 헐떡이며 서고, 누군가는 “어라? 오늘은 이상하게 널널하네”라고 말한다.
그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잡이를 붙잡은 채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그래, 이 정도가 내 능력치면 괜찮지.’
현실의 나는, 밀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씩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발끝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초능력 대신 발바닥 굳은살이 생겨난 외계인.
인류를 구원하기 전에 일단 내 허리와 족저근막부터 구원해야 하는 몸.
나는 가끔 지구인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들은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오늘 뭐 먹지?” 같은 질문 앞에서 놀랍도록 유연한 판단력을 발휘하고
배달 앱을 열어 수천 가지 메뉴 중에 하나를 결국 고른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 그냥 라면이나 끓일까…” 쪽으로 귀결되는 존재다.
또 그들은 놀랍게도 타인과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날씨 좋죠”라고 말을 붙이고, 그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혹시 명함 있으세요?”라고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나는 그런 장면을 멀찍이서 관찰하며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지구인들의 진짜 초능력은 텔레파시가 아니라 “애매한 잡담 유지 능력”이 아닐까.
나는 그 능력이 없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 앉으면, 머릿속에서는 굉장히 깊은 우주적 질문들이 떠다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아… 네…”
“그렇군요…”
“하하…”
심지어 웃음도 세 글자 이상을 못 넘는다.
외계에서 온 침묵형 생명체.
“왜 너는 슈퍼맨처럼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사실,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라는 말의 다른 버전이다.
남들은 너무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늘 조금씩 모자란 것 같고, 안간힘을 쓰고 나면 겨우 ‘보통’에 턱걸이하는 느낌.
지구인들은 이런 걸 ‘자괴감’이라고 부른다.
외계인 사전으로 번역하면 “지구 중력에 과하게 민감한 상태” 정도다.
작은 실패에도 몸이 확 내려앉는다.
초능력 대신 민감한 자존감 센서만 장착된 셈이다.
어떤 날은 정말로 이렇게 느껴진다.
‘나를 설계한 우주 담당자는 스펙을 입력하다가 중간에 퇴근한 게 아닐까?’
비행 능력도 안 넣고, 초재생 기능도 안 넣고, 사회성 모듈은 설치하다 말고, 대신 “쓸데없이 감수성 예민함” 항목을 최대로 올려 놓은 뒤
“아, 몰라. 이 정도면 살겠지?” 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밤새 뒤척이고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표정을 보다가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엄청난 비극도 아닌데, 그냥 오늘 하루가 ‘조금’ 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쓸모 없어 보이는 평범함이 가끔은 괜찮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예를 들어,
동료가 커피를 사 왔다며 내 자리 모니터 옆에 살짝 올려두고 갔을 때.
아내가 “오늘은 그냥 라면 먹자”라고 말하며 웃었을 때.
길고양이가 내 앞에서 모른 척 발 grooming을 하다가 슬쩍 내 쪽을 한 번 힐끔 봤을 때.
이런 일들을 겪을 때면, 초능력이 없어도 되는 종류의 다정이 이 별에는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이런 장면들을 자꾸 위에서만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지구인들, 오늘도 잘 살고 있군.”
이런 식으로.
하지만 나는 날지 못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오늘도 같은 높이에서 사람들과 줄을 서고
같은 속도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같은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그 평범함 덕분에, 나는 이 별의 피로와 다정을 거의 같은 눈높이에서 느낀다.
초능력 대신, 조금 더 세세하게 보게 된 것들이 있다.
회사 복도에서 힘없이 걸어가는 사람의 어깨,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혼자 컵라면을 먹는 사람의 눈빛,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종점 근처에서 정확히 일어나는 누군가의 습관.
이 모든 것들은 슈퍼맨의 시선으로 보면 이름도 없고, 구조할 필요도 없는 장면들일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외계인의 눈으로 보면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조금씩 마음에 박혀 남는 장면들이다.
사실 나는 안다.
진짜 원하는 건 세계를 구하는 초능력이 아니라
내 삶을 덜 망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덜 실망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을.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힘이 아니라
불안한 날에도 최소한 밥은 챙겨 먹게 하는 힘.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히 빛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말문 막힌 순간에도 “괜찮아요” 한 마디를 겨우 짜내는 힘.
그건 아마, 우주 어디서도 팔지 않는 능력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퇴근길에 연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아주 조금 덜 비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일기의 끝에 나는 이렇게 적어 둔다.
나는 그냥 평범한 외계인이다.
하늘도 못 날고, 레이저도 못 쏘고,
지구인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
오히려 못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도 가끔은,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어설픈 얼굴을 보며
살짝 웃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초능력은 없지만 어쨌든 오늘도 안 죽고 돌아가는 중이잖아.’
이 정도면, 우주 어딘가에서 나를 설계한 담당자가
“어, 생각보다 잘 버티네?” 하고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이 별은, 초능력 없이도 버티는 존재들에게 가끔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준다.
그걸 믿어 보기로 한다.
아주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