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시간으로 어느 봄날, 맑음.
기압과 기분 모두 양호.
오늘의 실험 제목: “자전거 최고 속도에서 외계인은 어디까지 날 수 있는가.”
출장 나온 동네 자전거 대여소 아저씨는 내가 면허도 없으면서 헬멧을 고르는 걸 보고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 외계 행성 기준으로는 저 정도면 예의 있는 응시다. 대개의 행성에서는 저렇게 오래 쳐다보면 곧 공격 의사로 간주되니까. 아무튼 나는 가장 둔탁한 회색 헬멧을 골랐다. 미션용 헬멧은 우주선에 두고 왔으니 어쩔 수 없다. 헬멧은 쓰는 게 맞다. 혹시라도 추락해서 뇌가 새어 나오면, 이 별에서 정식으로 귀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직 그 실험은 하고 싶지 않다.
“처음 타세요?”
아저씨가 물었다.
“아니요. 예전에… 다른 별에서랑, 옛날 동네에서도 좀 탔어요.”
나는 진실을 저렇게 슬쩍 왜곡하는 데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나 싶다가도, 이게 지구에서 ‘사회생활’이란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페달을 한 번 꾹 밟자 자전거가 앞으로 미끄러졌다. 쇠사슬이 딱딱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바람이 무릎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이 별의 중력은 여전히 내 고향별보다 무겁지만, 자전거 위에 있는 동안만은 그 차이가 희미해진다. 나는 괜히 혼잣말을 했다.
“중력 약간 감소. 체감 기준 -15%.”
동네 아이 하나가 그 말을 들었는지 나를 빤히 보더니, 갑자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엄마! ET다!”
나는 순간적으로 ‘잡혔다’고 생각했다. 신분이 들킨 건가, 이 아이는 이미 나의 안테나 흔들리는 걸 본 건가, 별의 좌표를 아는가, 각종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그런데 아이 엄마는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아저씨야. 자전거 타는 아저씨.”
잠깐, 아저씨?
나는 아직 이 행성 기준 나이를 정확히 잘 모른다. 주민등록상으로는 아저씨 맞는 것 같긴 한데, 마음은 여전히 중성의 나이까지만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별에서는 마음의 나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무릎이 덜컥했지만, 자전거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상처받을 틈도 조금 줄어든다.
골목을 몇 개 지나 언덕 입구에 도착했다. 내가 오늘 바라보는 목표는 저 언덕 꼭대기, 그리고 그 위에서의 비행 실험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에서 본 장면의 재연이다. 장바구니 앞바구니에 뭔가를 싣고, 언덕을 내려가다가, 달과 나란히 떠오르는 그 장면. 이 별의 고전 기록물 ‘영화’에서 본, 그 아름답고도 비상식적인 날갯짓.
문제는, 내 앞바구니에는 ET도 꼬마도 없다는 것이다. 대신 오늘 장보기 목록이 있다. 상추 한 봉지, 달걀 한 판, 두부 두 모, 그리고 할인하던 귤 한 봉지. 상추가 ET 자리를 차지한 셈인데, 상추라도 좋다. 어차피 달빛 아래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비슷해진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나는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중간중간 숨을 골랐다. 이 정도 급경사는 고향별에서는 엘리베이터나 순간이동으로 처리했을 지형이라 다리 근육에 항의가 빗발친다. 그러나 내가 왜 이 행성까지 와서 자전거를 타고 헉헉대는지, 가끔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이 별이 나를 매일 밀어낸 만큼 나는 이 별을 조금 더 깊숙이 밟고 싶어지는 것 같다.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도시가 발밑에 펼쳐졌다. 아파트의 직사각형 창문들, 그 속에 들어앉은 작은 우주들, 공원에 흩어진 사람들이 구부정하게 앉아 스몸비처럼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는 모습. 누구나 자기의 별 하나씩 들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주머니 속에 나만의 작은 우주—검은 화면의 스마트폰—를 넣고 다니지만,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날에는 그마저도 타향 같다.
나는 헬멧 끈을 한 번 더 조이고, 앞바구니에 상추와 달걀을 단단히 눌러 담았다. 귤이 한두 개 겁을 먹은 듯 살짝 구르다가 자리를 잡는다.
“좋아, ET 대신 상추. 달 대신 아파트 옥상. 경찰차 대신 동네 순찰차.”
내가 작은 목소리로 브리핑을 마치자, 갑자기 어디선가 삐-이이익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쿡 내려앉았다.
“잠깐, 경찰?”
뒤를 돌아보니 언덕 아래에서 파란 불빛을 번쩍이며 순찰차 한 대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덩치 큰 경찰관 한 명이 조수석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빼고 있었다. 차는 나를 지나쳐 올라가다 말고 잠시 멈췄다.
“자전거는 인도 말고 차도로 다니셔야 돼요!”
그가 확성기로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추격전 시나리오가 돌기 시작했다. “외계인 신분 노출 정부 기관의 체포 실험실 감금 해부 교신 기록 압수 고향별과의 연락 단절.” 눈앞이 잠깐 하얘졌다가, 곧 상추의 연두색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나는 순찰차를 향해 소리쳤다.
“네! 곧 내려갈게요! 오늘은… 그냥, 비행 연습만 하려고요!”
경찰관은 잠시 나를 빤히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창문을 닫았다. 순찰차는 다시 속도를 내서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더니, 어디선가 유턴해서 사라졌다. 쫓기는 미션은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나는 괜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이 별의 경찰은 생각보다 관대하군. 외계인 비행 연습 정도는 눈감아 주는 모양이다.”
바퀴를 언덕 아래 방향으로 돌리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고향별에서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뛰었던 순간이 있었나. 별 간 도약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섭고도 즐겁다.
“3, 2, 1… 중력, 잠깐만 쉬어.”
페달을 힘껏 밟다가 다리를 떼자, 자전거가 스르륵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귀 옆을 횡단하고, 헬멧 끈이 목덜미를 툭툭 때린다. 상추 잎이 바구니에서 파닥거리며 나와 함께 절규 아닌 절규를 지른다. 귤 한 봉지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 봤다.
언덕 중간을 지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무게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틈에, 나는 진심으로 이 별의 하늘 위로 떠오른 것 같았다. 아파트 옥상들 사이로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낮에도 희미하게 보이는 그 달이, 마치 내 고향별의 누군가가 내게 작은 손전등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있냐?’
달이 물었다.
‘응. 자전거 타고 있어.’
내가 대답했다.
‘또 혼자냐?’
‘응. 근데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달은 아무 말 없이 제자리를 지켰다. 말 대신, 햇빛의 낡은 잔광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내려가다 보니 앞에 빨간 신호등이 나타났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를 내며 멈췄다. 신호등의 빨간 불빛이 내 얼굴과 상추잎을 붉게 물들였다.
외계인으로서, 나는 한때 이 빨간빛을 공격 신호라고 오해한 적이 있다. 이 별이 나를 쏘아버리겠다는 건가, 괜히 움츠리며 사거리를 건넌 날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이건 공격이 아니라 요청이다. 잠시만 멈춰 달라는, 같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자,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때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아까 하늘 날았죠?”
돌아보니 아까 그 ET를 외치던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여기저기 흙이 묻은 운동화, 팔짱을 낀 채 나를 의심스럽게 보던 눈빛, 그 모든 게 이 별의 생명체가 가진 특유의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평생 한 번뿐인 마술 같은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좀 더 엉뚱해진다고 해서, 이 별이 더 망가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은 재미있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조금.”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진짜요? ET처럼요?”
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ET는 친구라고 했지? 나도… 이 별에서는 비슷한 거야. 길을 좀 헤매고 있을 뿐.”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아저씨 멋진데?”
나는 그 말에 당황해서, 괜히 안 쓰러진 귤 봉지를 한 번 더 눌렀다. 이 별에서는 어른이란 존재가 가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갑자기 멋있어지거나 웃음거리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걸 요즘 깨닫는 중이다.
아이와 엄마가 먼저 길을 건너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자전거 바퀴가 횡단보도의 흰 선들을 하나씩 밟고 지날 때마다, 마치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는 포탈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집 근처 마트 앞에 도착했을 때, 해가 기울고 있었다. 자전거를 반납대에 세우고 잠금 장치를 걸자, 대여소 아저씨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어때요, 오랜만에 타니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조금… 날아다닌 기분이었어요.”
아저씨가 웃었다.
“요즘도 그런 기분 드나요? 나이 들면 다들 무릎 아프다고만 하던데.”
나이. 이 별에서 나는 어느새 그렇게 불리우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자전거에서 내릴 때, 분명히 느꼈다. 무릎은 조금 아팠지만, 마음 관절은 오히려 부드럽게 풀린 것 같다는 걸.
“아직은요. 아직은 좀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상추 봉지를 품에 안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 고양이가 마중 나왔다. 고양이는 내 신발 냄새를 맡더니, 상추 냄새도 맡더니, 마지막으로 내 바지에 묻은 먼지를 킁킁거렸다.
“오늘은 어디 갔다 왔냐는 표정이네.”
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비밀이야. 자전거 비행 미션.”
고양이는 대답 대신 꼬리를 한 번 쳐 올렸다. 약간 삐딱한 태도지만, 이 별에서는 그게 호의라는 걸 나는 안다. 부엌 창문 너머로 보니 아까 언덕에서 보던 그 달이 조금 더 또렷한 모양으로 떠 있었다.
나는 상추를 씻으며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진짜로 이 별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마지막 밤에도 이렇게 자전거를 탈까. 언덕을 한 번 질주하고, 달과 눈을 맞추고, 어느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우주선에 올라타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저녁 반찬으로 상추쌈을 먹기로 했다. 비행도 좋지만 이 별의 진짜 마술은 밥상 위에서 일어나는 것 같으니까. 상추와 고기와 밥과 된장이 한 입 안에서 작은 은하계처럼 섞이는 순간, 나는 잠깐씩 이 별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하게 된다.
오늘의 결론.
1. 자전거는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비행체이다.
2. 이 별의 경찰은 외계인의 실험에도 의외로 관대하다.
3. 상추도 앞바구니에 넣어 달리면 ET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나는 조금은 날 수 있다.
외계인일기, 자전거 편.
기록 종료.
다음에는… 킥보드 실험일까, 아니면 지하철 안에서의 무중력 실험일까.
이 별은 생각보다 많은 실험거리를 품고 있다. 그게, 요즘 내가 이 행성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엉뚱하고도 유쾌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