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달과의 대화」

달과의 대화

by 쪼교


지구 시간으로 어느 밤이었다. 하늘은 맑고 어둠은 얇게 펼쳐져 있었지만 내 안쪽은 하루 종일 눌어붙은 먼지처럼 답답해서 말을 더 보태기도 싫으면서도 아무에게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자니 더 깊은 데로 가라앉을 것 같아 나는 결국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오래된 먼지 냄새와 아파트 사이를 떠돌다 길을 잃은 밤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오고 나는 난간에 팔을 괴고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숲 위쪽에 둥글게 떠 있는 달이 보였다. 매일 야간 근무를 빠지지 않고 나오는 누군가처럼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이 동네를 지켜보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만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속으로만 하려고 했던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달아 너는 외롭지 않니.”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잠깐 하늘이 더 고요해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숨소리 같은 것이 스며들더니 마치 멀고 오래된 라디오를 아주 약하게 틀어 놓은 것처럼 대답이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그렇지. 그래도 네가 이렇게 부를 때는 조금 덜 그래.”


나는 그 말이 진짜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웃는지 한숨을 쉬는지 애매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되받았다.


“나도 오늘은 좀 덜 그랬으면 좋겠다.”


대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왕복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두어 마디가 공기 중에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베란다에 서 있는 동안 도시의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올라왔다.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는 편의점에서 나는 음악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택배차가 멈췄다가 출발하는 소리, 버스 정류장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 한숨 섞인 발걸음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모두 한 겹으로 겹쳐졌다. 그 모든 소리가 달빛 아래에서 조금씩 희석되는 듯한 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유난히 이런 밤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한 번쯤 올려다보는지도 몰랐다.


나는 난간에 기대 선 채 오늘 하루를 거꾸로 되감아 보았다. 회사에서 오갔던 말들은 대부분 성과와 일정과 보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누구는 웃으면서 힘들다고 말했고 누구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눈을 책상 위로만 떨구었다. 그 안에서 나는 적당히 웃고 적당히 끄덕이고 적당히 맞장구를 쳤는데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고 불을 끄고 나니 그 모든 장면이 마치 내가 없는 자리에서 벌어졌던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귀로는 모든 말을 들었는데도 내 몸은 늘 반 걸음 옆으로 비켜 서 있었던 것 같았다.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떠올린 장면들 속에서 가장 또렷한 것은 이상하게도 숫자로 정리할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던 알바생이 계산대 아래로 떨어진 동전을 주우려다 머리를 철제 선반에 부딪치고는 민망하게 웃던 얼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탄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끌어안듯 움켜쥔 손 모양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보고는 시선을 피하던 중년의 눈빛 같은 것들이었다. 보고서 양식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장면들이었지만 그런 것들만이 내 안에서 오래 남아 나를 이 별에 붙잡아 두는 느낌이었다.


달은 가만히 떠 있었고 도시의 불빛들은 조금씩 개수를 줄여 가고 있었다. 창문마다 하나씩 꺼지는 불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일지 잠깐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퇴근하고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고 누군가는 울음을 숨기려 불을 끄고 누군가는 이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하려고 책상 스탠드만 남겨 두고 방 안 전체의 불을 내릴 것이다. 그 모든 사소하고도 진지한 이유들을 달은 한꺼번에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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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이 행성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보다도 정상이라는 말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모두가 견딜 만한 수준의 피로와 슬픔과 분노를 알맞은 농도로 희석해 하루를 건너뛰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그 농도를 영 잘 맞추지 못한다. 누군가 던진 무심한 말 한 줄이 머릿속에서 며칠 동안 되감기 시작하면 밤마다 잠이 얕아지고 장례식장에서 끝내 꺼내지 못한 말이 몇 년이 지나도 꿈속에서 다시 혀끝에 맴돈다.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장면들이 내 안에서는 중력처럼 작용해 몸과 마음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지구인들은 이것을 우울이라 부르고 불안이라 부르지만 내게 그것은 이 행성의 중력에 지나치게 민감한 몸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래도 어떤 날들은 이질감이 나를 버티게 하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 나는 한 발짝 뒤에서 풍경을 조금 비스듬히 본다. 병원 대기실에서 번호표를 쥐고 앉아 있으면 노인들의 기침 소리 보호자들의 낮은 대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 소리가 작은 파도처럼 섞여 올라온다. 오랜 약품 냄새와 땀 냄새와 비닐봉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차례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통증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누군가는 검사 결과를 걱정하며 눈을 감고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자막만 눈으로 따라간다. 그 사이에 앉아 있으면 나만 반투명한 존재가 된 것 같고 이름도 병명도 없는 적응 실패라는 메모 하나가 가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이 조금 더 깊어지자 아파트 복도 저편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멀게 났다. 그 소리가 이 행성의 하루를 천천히 접는 신호처럼 들렸다. 집 안에서는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몸을 가볍게 비비고는 베란다 바닥에 동그랗게 웅크렸다. 달빛이 고양이 털 끝에 닿아 희미하게 번졌다. 이 행성에서 사랑을 배우는 순서를 적으라면 나는 사람보다 먼저 고양이를 적게 될 것이다. 고양이는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내일 어디로 갈지 모른 채 그저 지금 여기에서 내 신발 냄새와 손 냄새를 맡고 조금 마음을 놓는 존재였다.


나는 고양이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정말 이 별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온다면 마지막 밤에도 이렇게 창문을 열고 달을 보고 있을까. 오늘처럼 답답한 마음을 달에게 슬쩍 건네고 아주 짧게 돌아오는 대답에 기대어 간신히 잠들게 될까. 떠나야 한다는 사실과 당분간은 여기에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 동시에 마음속에 앉아 있었다.


실제로 손으로 일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음 안에서 오늘의 기록을 조용히 정리했다. 달은 멀리서 보면 차갑게만 보이지만 이렇게 한밤의 벽에 기대어 보면 의외로 수다스럽고 생각보다 다정하다. 외계인이 이 행성에서 느끼는 고독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이 별 어디에나 묻어 있는 평균값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것 아주 짧은 대화라도 나누어 보는 일은 이 행성의 중력을 아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어 준다.


창문을 닫기 전에 나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자리 똑같은 모양으로 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약간 더 가까이 온 것처럼 보였다. 아마 착각일 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그 착각 하나면 이 별에서 버텨야 할 시간을 조금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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