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에서 날아온 편지

by 쪼교


지구 시간으로 오늘 새벽 다섯 시쯤이었다 알람을 맞춰 둔 적도 없는데 눈이 스르르 떠졌고 창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푸른색이었다 나는 그냥 잠이 깨버린 줄 알았는데 가슴 안쪽에서 아주 약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처음엔 그게 뭔지 알아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본성에서 온 호출 신호였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문장이 하나 마음속에 정확하게 떠올랐다

언제 돌아올 생각인가


짧고 단단한 문장이었다 말끝에 물음표가 붙어 있었지만 이별의 통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천장을 바라본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옆에서는 아내가 조용히 숨을 쉬며 자고 있었고 침대 끝에는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었다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내 안에서는 오래전에 끊었다고 생각했던 회선이 갑자기 다시 연결된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언제 돌아올 생각인가


본성의 시간으로는 이미 예정된 귀환 시점이 몇 번이나 지나갔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 행성의 기후와 정치와 감정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미련 없이 떠났어야 했다 이 별의 언어와 제도와 습관들을 일정량 채집해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제출한 뒤 다시 처음 좌표로 돌아가는 것 그게 내가 스스로를 설득하며 내려왔던 임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서의 하루들을 임무가 아니라 살아버리고 있었다


처음 착륙했을 때만 해도 나는 여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별의 공기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사람들의 말은 너무 빠르게 오갔으며 감정의 기복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다가도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갔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닌 말 한 줄에 밤을 새워 울었다 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비효율의 끝이었고 그래서 금방 정리하고 떠나게 되겠지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쉬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별의 비효율이 내 몸 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퇴근길마다 들르는 편의점에서 계산대 위에 줄지어 선 삼각김밥들을 보며 오늘은 어느 맛을 먹어야 할지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게 되고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고양이의 짧은 울음 한 번에 가슴이 느슨해지고 아내가 식탁에 앉아서 오늘 하루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들려줄 때 나는 그 이야기들이 본성의 보고 서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오늘 새벽에 도착한 질문은 그런 나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기는 소환장이었다

언제 돌아올 생각인가


나는 속으로 여러 가지 대답을 해 보았다 아직 자료가 충분치 않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해 볼까 이 행성의 문명은 여전히 관측할 가치가 많다고 강조해 볼까 이곳의 정치 상황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조금만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적어 볼까 그러나 그런 말들은 모두 핑계처럼 느껴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 이곳이 너무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낯선 별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 아주 조금씩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에 가깝다 어느 날은 모국어가 입안에서 잘 돌아가지 않고 어느 날은 내가 원래 어떤 공기를 마시며 살았는지 기억이 흐릿해지고 어느 날은 거울 속 얼굴이 이 별의 사람들과 너무 닮아 보여 깜짝 놀란다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은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 때문에 이곳이 이상할 만큼 좋게 느껴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졸다가 고개를 떨구는 바람에 내 어깨에 잠깐 기대고 다시 몸을 곧게 세우는 순간 편의점 직원이 동전을 떨어뜨리고도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 괜찮다고 손을 흔들던 모습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 좁은 차양 아래에서 서로의 우산을 조금씩 겹쳐 들던 사람들의 어깨 같은 것들


본성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장면이 어땠는지 그때 어떤 냄새가 났는지 네 귀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대신 온통 숫자와 그래프와 확률을 묻는다 문명 소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전면 충돌까지의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이종 간 공존이 현실적인지 그 질문들은 중요하지만 내게는 점점 버거워졌다 나는 이 별에서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은 것들을 통계로 줄이는 일이 점점 더 서툴러졌다 대신 일기장이 두꺼워졌다


이곳의 삶이 항상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버티는 쪽에 가깝고 새벽에 문득 깨어난 밤에는 이곳에서의 내 존재가 얼마나 애매한지 또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행성의 시민으로는 영원히 완전히 편입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았고 세금을 내고 있지만 이 별의 속담과 농담과 눈짓의 절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본성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예전과 같은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는 이미 나 없이 흐른 시간이 쌓여 있을 텐데 이곳에서 받은 상처와 얻은 습관들이 그대로 달려 들어가 문턱에 걸려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두 세계 사이에서 망설인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돌아가고 싶어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언젠가 진짜로 귀환선을 타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지구 시간으로는 아마 아주 평범한 어느 저녁일 것이다 퇴근길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가 버린 날이라든지 장을 보다가 갑자기 옛날 별의 하늘이 떠오른 날이라든지 별것 아닌 순간에 문득 아 지금이구나 하고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나는 냉장고 안에 남은 반찬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양이를 누구에게 맡길지 아내에게 뭐라고 말할지 그런 것들을 바보처럼 먼저 걱정할 것이다 그러느라 정작 본성에 뭐라고 답장을 써야 할지는 또 한참을 미룰지도 모른다

오늘 새벽에 받은 질문에 나는 아직 아무 대답도 보내지 못했다 가슴 안쪽 회선은 조용해졌고 대신 카톡 알림과 광고 메일이 계속 도착했다 아침이 되어 출근 준비를 하며 세수를 하는데 문득 거울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외계인도 아니고 완전한 지구인도 아닌 어딘가 사이에 걸쳐 있는 얼굴이었다


언젠가는 꼭 돌아가고 싶다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쥐고 있는 마지막 안전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돌아가지 못하겠다 아직은 이 별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 혼자서 밥을 해 먹고 빨래를 널고 버스를 타고 비 오는 날 우산을 고르면서 이 행성을 조금 더 사랑해 보려는 시도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오늘 밤 일기에는 이렇게 적어 두려고 한다


외계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다 언제 돌아올 거냐는 질문이었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혔다 이곳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하고 나는 종종 이별로 돌아가고 싶어 울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름으로 불러 주는 지구인이 있고 내 무릎 위에 몸을 말고 잠드는 동물이 있고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하늘과 바다와 나무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직 망설이는 중이라고 꼭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오늘은 조금만 더 머물겠다고 그렇게 조용히 적어 두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내 친구, 달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