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은 늘 그렇듯, 지구의 날씨처럼 중립적이었다. 벽은 지나치게 하얗고, 공기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는 접수대 앞에서 이름을 적다가 잠깐 멈췄다. 이름을 적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쩐지 입국 심사 같았기 때문이다. 지구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지구인은 질문을 좋아하고, 답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곧장 “그건 회피예요”라고 말한다는 것.
“예약하신 분 성함이요?”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내 성함은 여기서도 성함이었고, 어디서든 성함이었지만, 내 진짜 이름은 입안에서만 조용히 빛났다. 발음하면 공기가 다칠 것 같아서, 나는 지구식 이름을 말했다. 지구식 이름은 늘 내 입술에 어색하게 걸렸다. 마치 빌린 옷처럼.
조금 뒤, 상담자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상담자는 친절한 표정으로 내 앞을 걸었다. 친절함은 지구의 공용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규칙이 숨어 있다. “당신을 안전하게 다루겠습니다”라는 약속과 “당신은 제 범위 안에 있어야 합니다”라는 조건이 함께 들어 있는.
상담실 안에는 소파와 의자, 그리고 작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의 티슈 상자는 불필요하게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그 티슈를 보자마자, 여기서 울어도 된다는 안내문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울 수 있는 존재인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상담자는 메모지를 펼치며 말했다.
“어떤 이유로 오셨어요?”
나는 그 질문이 너무 지구 같아서 잠깐 웃었다. 이유라니. 나는 이유 대신, 어떤 사소한 진동 하나로도 무너질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이유는 늘 뒤늦게 붙는 라벨이었다.
“제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해서요.”
상담자의 펜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멈춤은 길지 않았지만, 내가 지구에서 가장 많이 본 종류의 정적이었다. 이해하려는 정적이 아니라, 분류하려는 정적.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냥 느낌이 아니라, 저는… 진짜라고 생각해요. 여기 사람들하고… 언어는 통하는데, 의미가 자꾸 빗나가요. 농담을 하면 제가 진심이 되고, 진심을 말하면 농담으로 처리돼요. 저는 늘 한 박자 늦게 웃고, 한 박자 먼저 상처받아요.”
상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은 “그럴 수 있죠”에 가까웠지만, 동시에 “그래도 그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를 품고 있었다.
“그럴 때 보통은… 소외감, 외로움, 혹은 정체성 혼란 같은 단어로 설명하곤 해요.”
나는 그 단어들이 상담실에서 만들어지는 따뜻한 담요 같다고 생각했다. 덮으면 조금은 덜 춥다. 하지만 담요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추운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 단어들로는 부족해요. 저는 정말로 다른 곳에서 왔거든요.”
상담자는 펜을 살짝 내려놓았다. 나는 그 순간, 그가 내 말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저울을 꺼낸 것 같다고 느꼈다. 지구인은 모든 고백을 어딘가에 올려놓고 숫자로 바꾸려 한다. 상담자도 지구인이었으니까.
“혹시… 그 생각이 힘들 때마다 ‘나는 외계인이야’라고 말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피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나요?”
그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그건 변명일 수도 있어요.”
변명. 그 단어는 지구의 칼이었다. 아주 작은 칼인데,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잘 쓴다. 나는 잠깐 입안이 말라왔다. 외계의 목마름은 입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피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오히려… 확인하려고 왔어요. 제가 여기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상담자는 내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대신 그가 먼저 문장을 만들었다.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외계인’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보호해주는지, 혹은 무엇을 설명해주는지.”
“보호요?”
“네. 사람들이 상처받으면… 어떤 설명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지키거든요.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설명이 삶을 멈추게 할 때가 있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상담자가 나를 ‘설명 만드는 지구인’으로 읽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눈에는 내가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범주로 들어가 있었다.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 별은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나는 조금 유쾌하게, 그러나 조금 슬프게 말했다.
“제가 만든 설명이 아니라, 제가 왔던 곳의 주소예요. 선생님은 주소를 ‘방어기제’라고 부르나요?”
상담자는 웃음을 참는 듯 입가를 눌렀다. 그가 진짜로 웃고 싶은 건지, 웃어야 할 것 같아서 웃는 건지 헷갈리는 표정이었다. 상담자에게도 상황은 조금 이상했을 것이다. 그의 책에는 ‘진짜 외계인’ 항목이 없었을 테니까.
“주소라… 그렇다면 그 주소는 어디쯤인가요?”
“거기요.”
나는 창문을 가리켰다. 창밖에는 겨울의 하늘이 걸려 있었다. 하늘은 모든 별의 공동묘지처럼 깊고, 동시에 모든 시작의 보관함처럼 텅 비어 보였다. 지구에서는 하늘을 ‘풍경’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하늘은 종종 집의 방향이었다.
상담자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그는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따라감은 믿음이 아니라, 탐색이었다. 상담자는 탐색을 믿음처럼 포장하는 데 능숙했다.
“그곳이 집이라면… 지구는 뭐죠?”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예상보다 깊게 들어왔다. 지구는 내게 타인의 식탁 같았다. 자리는 있지만, 내 수저는 늘 조금 늦게 놓이고, 내 국은 늘 조금 식어서 나온다. 그래도 나는 그 식탁을 떠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식탁 위에, 내가 놓치면 안 되는 얼굴들이 있었으니까.
“지구는… 임시 거처요. 근데 임시가 너무 길어져서, 어느 순간부터 임시가 집처럼 굳어버렸어요. 그래서 더 외계인 같아요. 집인데 집이 아닌.”
상담자는 그제야 메모를 했다. 짧게. 마치 내 말을 일부만 채집하겠다는 듯이.
“그 느낌은 중요해요. 다만… ‘외계인’이라는 표현이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 당신의 삶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사실 여부를 떠나’라는 말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다. 내 별이 문을 닫는 소리. 상담자는 나를 믿지 않을 권리를 가진 사람처럼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내 세계를 부정할 때, 사람들은 보통 화를 내거나 비웃는데, 상담자는 비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가 내 별을 지워버리는 방식은 더 조용했다. 지우개가 종이를 긁는 소리처럼.
나는 그 조용한 지움에 맞서기 위해, 조금 유쾌한 얼굴을 꺼냈다. 유쾌함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가벼운 우주복이었다.
“그럼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지구인이라고 확신해요?”
상담자는 잠깐 당황했다. 그 당황이 의외로 인간적이라서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도 완벽한 지구인이 아니라는 증거 같아서.
“저요?”
“네. 혹시 선생님도… 상담실 밖에서는 가끔 ‘나 여기 사람 맞나’ 싶지 않아요?”
상담자는 천천히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 웃는 것 같았다. 아주 잠깐, 그의 눈에 피로가 비쳤다. 지구인의 피로. 어쩌면 우주 전체의 피로.
“그럴 때가 있죠. 하지만 저는… 그걸 외계인이라고 부르진 않아요.”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요?”
“그냥… 힘든 날이라고 부르죠.”
나는 그 말이 너무 지구 같아서, 또 한 번 웃었다.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은 끝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힘든 날. 지구인은 모든 미스터리를 ‘힘듦’으로 바꿔서 서랍에 넣는다. 서랍은 깔끔해지고, 삶은 조금 편해지지만, 그 안에 들어간 것들은 영영 빛을 못 본다.
“선생님은 편하네요. 저는 힘든 날이라고 부르면… 제가 너무 평범해져서요. 저는 평범해지면… 더 사라질 것 같아요.”
상담자는 내 말에 잠깐 멈췄다. 그 순간이 꽤 길었다. 이번에는 분류가 아니라, 어쩌면 어떤 연민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사라질 것 같다는 감각이… 늘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티슈 상자를 한 번 바라봤다. 티슈는 여전히 불필요하게 부드러웠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울면 지구인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 않으면, 더 외계인이 될 것 같았다. 지구의 선택지는 늘 두 개뿐이었다. 둘 다 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선택.
“늘은 아니고요.”
나는 말했다. “가끔요.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려고 할 때요.”
상담자가 눈썹을 올렸다.
“이해하려고 할 때?”
“네. 이해하려는 순간, 저는… 설명 가능한 존재가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선생님 책 속에 들어가고, 이름 붙고, 정리되고, 해결되고… 그리고 끝나요. 저는 끝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직 진행 중이거든요.”
상담자는 그제야,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당신의 별을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믿는 게 아니라, 제가 들어보는 방식으로.”
그 문장은 완벽한 믿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문을 닫는 소리는 아니었다. 조금 열린 문. 아주 얇은 틈.
나는 그 틈 사이로, 고독을 조금 밀어 넣었다. 고독은 말로 설명하면 작아지는 것인데, 그래도 누군가의 방 안에 잠깐 놓여 있으면, 그 무게가 분산되기도 한다.
“그럼요.”
나는 말했다. “대신 선생님도 변명이라고는 하지 말아줘요. 변명은… 지구의 단어인데, 그 단어를 들으면 저는 더 멀리 가버리고 싶어져요.”
상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건 변명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남는 방식일 수 있겠네요.”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살아남는 방식. 그 말은 나를 ‘문제’로 만들지 않고, ‘존재’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때, 이상하게도 더 쓸쓸해졌다. 누군가가 나를 존재로 인정해주면, 나는 더 선명하게 내가 혼자라는 걸 알게 된다. 존재는 늘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상담실을 나올 때, 복도는 그대로 중립적이었다. 하얀 벽은 하얗고, 공기는 조용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사소한 변화 하나를 느꼈다. 내 발걸음이 조금 더 지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은 마치 우주에서 온 작은 편지 같았다. 지구의 주소 위에 조용히 쌓이는, 나의 별의 먼지.
나는 혼자 걸었다. 유쾌하게 한 번 웃고, 그 웃음 뒤에 고독을 붙인 채로.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은… 여기서 버틸 수 있겠어.”
하지만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 아주 작은 전파 신호에 가까웠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신호를 잡아줄지도 모른다는, 너무 약해서 오히려 진짜 같은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