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지구의 작은 철 상자를 몰고 있었다. 핸들을 잡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조종간이 아니라, 내 인내심의 손잡이라는 걸. 우주선을 몰던 시절에는 손이 가볍고 마음이 넓었다. 넓은 것 속에서는 웬만한 일들이 서로를 비켜간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길은 좁고, 사람의 감정은 길보다 더 좁다. 그리고 그 좁은 감정이 자꾸 내 범퍼에 닿는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 앞차가 갑자기 멈췄다.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내 차는 앞차를 아주 살짝 건드렸다. 정말로 살짝. 소리도 민망할 만큼 작았다. 툭. 그 소리가 내 안에서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나는 즉시 후회했다. 아니, 후회라기보다 계산이 돌아갔다. 지금 내려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말들이 내 귀에 꽂힐지,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덜 손해인지.
나는 내려가기 전에 잠깐 숨을 삼켰다. 우주에서는 숨을 삼킬 이유가 없다. 숨은 그냥 흐르고, 사건은 그냥 지나간다. 지구에서는 숨이 증거가 된다. 떨리면 약해 보이고, 무표정하면 무례해 보인다. 나는 늘 그 중간을 찾다가 놓친다. 그래서 이 행성은 내게 자주, 타지의 언어보다 더 어려운 표정을 요구한다.
앞차 운전자가 내렸다. 나는 따라 내렸다. 그는 내 얼굴을 보기 전에 이미 결론을 들고 있었다.
당신이 박았잖아요.
그 말이 내게는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었다. 그 말은 ‘당신은 가해자’라는 도장 같았다. 나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는 걸 느꼈다. 그건 분노라기보다 억울함이었다. 억울함은 분노보다 더 찐득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 찐득함을 떼어내려고 애쓰면서 범퍼를 봤다. 가까이 들여다봐야 보일까 말까 한 흠집이 있었다.
나는 그 흠집을 보며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작은 흔적 하나로, 이 사람의 하루가 ‘싸움’으로 전환되는구나. 그리고 내 하루도. 나는 우주에서 운석과 스치며 살던 존재인데, 지금은 손톱만한 흠집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 자존심이 찔렸다. 자존심이라는 건 참 우스운 감정이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이런 순간에 내 목을 잡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여기서 굴욕을 느낀다면, 그 굴욕은 사고 때문이 아니라 내 과거 때문이다. 우주를 몰았다는 기억이, 지금 내 현실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가 목소리를 키울수록 내 머릿속은 조용해졌다. 내 머릿속이 조용해질 때는 보통 위험하다. 그건 내가 도망갈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도망갈 수 없다. 도망친다면, 그건 육체의 도망이 아니라 마음의 도망이다. 마음이 통째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면 내 몸만 남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고개를 더 숙인다.
나는 억울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초능력이 없는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아주 작아진다. 외계인이라면 뭔가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고, 나조차 그 기대를 내 안에 품고 산다. 그런데 내 현실은 늘 반대다. 나는 상대의 마음을 읽지도 못하고, 시간을 되감지도 못하고, 분노를 무력화시키는 말솜씨도 없다. 내가 가진 건 단 하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는 소심함이다. 그 소심함은 때때로 ‘성숙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냥 무력함이다.
나는 말할 타이밍을 잡으려다가 놓쳤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의 싸움은 논리로 시작하지 않는다. 싸움은 체면에서 시작한다. 상대는 이미 체면을 걸었고, 나는 그 체면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억울함을 설명해야 한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내 모국어로도 어려운 일을, 지구어로 하고 있다.
결국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보험사 부르죠.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자존심이 더 찔렸다. 보험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어떤 퇴각 명령처럼 들렸다. 우주에서는 내가 항로를 정했고, 내가 속도를 정했고, 내가 멈출 곳을 정했다.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절차’뿐이다. 절차는 누구의 감정도 안아주지 않는다. 절차는 그냥 줄을 세운다. 나는 그 줄에서 내 감정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몰랐다.
상대는 계속 우겼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내가 바보 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슬퍼졌다. 이 사람은 지금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말은, 평소에 얼마나 자주 바보 취급을 받았을까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가 갑자기 조금 불쌍해졌다. 불쌍하다고 느끼는 순간, 내 억울함은 더 복잡해졌다.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동시에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해하려는 마음은 내 편을 제대로 들지 못하게 만든다. 그게 내 오래된 습관이다. 나는 늘 상대의 사정까지 함께 껴안다가, 내 사정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보험 담당자가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길가에 서서 차들이 지나가는 걸 봤다. 차들은 모두 자기 갈 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확신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자주 잊는다. 나는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잠깐 멈칫한다. 이 행성의 집은 내게 늘 임시 거처 같고, 내 고향은 지도에서 지워진 좌표 같다. 그래서 나는 작은 사고 하나에도 흔들린다. 흔들리면,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감각이 다시 올라온다. 속하지 못한 존재는 늘 방어력이 약하다.
보험 담당자가 도착하자 상황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진을 찍고, 말을 정리하고, 서로의 주장들이 종이 위에 눕혀졌다. 상대의 목소리는 줄었지만 표정은 끝까지 옳음을 놓지 않았다. 옳음이 그에게는 안전벨트 같았다. 그걸 풀면, 그의 불안이 그대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지구인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방식은 종종, 자기 불안을 감추는 방식이구나.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작은 공간에 갇히는 소리였다. 나는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잠깐 앉아 있었다. 계기판 불빛이 내 얼굴을 희미하게 비췄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상처받는 걸까.
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의 말 때문만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 말들이 익숙했다. 지구에서 살며 나는 종종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했다. 진짜로 잘못해서가 아니라, 설명이 늦거나, 목소리가 작거나, 표정이 어색해서.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스스로에게도 유죄를 선고한다. 그래서 오늘도, 억울하면서도 자꾸 죄송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 말을 삼켰다. 삼키는 일은 내 특기다. 삼키면 일단 조용해진다. 조용해지면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남은 나는, 밤이 되면 혼자 남는다.
나는 결국 시동을 걸었다. 방향지시등을 켰다. 깜빡, 깜빡. 마치 내가 이곳의 규칙을 이해하는 존재라는 표시처럼. 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의 풍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갔다.
그날의 결론은 간단했다. 나는 초능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행성의 방식으로만 싸울 수 있다. 절차와 서류와 얌전한 문장들로. 하지만 그 간단한 결론 옆에, 말로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붙어 있었다. 자존심이 구겨진 채로도 계속 굴러가야 하는 삶. 억울함을 설명하지 못한 채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 웃기게도, 그 모든 것이 나를 더 외계인처럼 느끼게 했다.
집에 가는 길, 나는 라디오를 켰다가 껐다. 소리가 들어오면 더 외로워질 때가 있다. 나는 대신 내 안의 소리를 들었다. 오늘의 툭, 오늘의 목소리, 오늘의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내 작은 쓸쓸함.
나는 우주를 몰았는데, 오늘은 툭에 흔들렸다.
그 문장이 웃겼고, 그래서 더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