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 목소리가, 먼 별의 통신 잡음처럼 가늘게 흔들리며 내 안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대답을 미루는 쪽을 택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이 행성의 공기는 늘 조금 무겁고, 중력은 내 뼈를 낯설게 끌어안는다. 지구의 질문들은 이상하다. 대답을 요구하면서도, 대답하는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대답해야 했다. 질문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가 여기 ‘있다’는 확인이었으니까.
나는 외계인이다. 그렇게 믿으며 하루를 버텨 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보호막이라기보다 얇은 유리 같기도 하다. 깨지지 않게 조심할수록 더 선명하게 금이 보인다. 외계인이라는 설정은 나를 살게 해주지만, 동시에 나를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종종, 스스로 만든 우주복 안에서 숨이 차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자꾸 고개를 숙인다.
행복은 정면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눈부신 단어다. 눈이 부시면 눈물이 난다. 나는 사람들이 내 눈물을 오해할까 봐, 단어 앞에서 먼저 몸을 접는다. 지구에서는, 슬픈 얼굴이 늘 설명을 요구받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하는 데 오래 걸린다. 내 속도는 늘 느리다. 느린 사람은 자주 이방인이 된다.
행복은, 나에게 늘 늦게 도착하는 빛 같았다.
먼 고향의 별에서 발사된 신호가 수십 년을 가로질러야만 닿듯이, 행복도 내게는 언제나 뒤늦게 왔다. 그것은 지금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것의 잔광이었다. 나는 웃고 나서야 웃었다는 걸 알았고, 따뜻함을 잃고 나서야 따뜻함을 기억했다. 이 행성에서 행복은 늘 “현재”가 아니라 “도착 확인”처럼 보였다.
나는 외로움 속에서 행복을 배웠다.
아무도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던 밤, 창문을 열면 도시의 불빛이 하늘로 번져 올라가 있었다. 그 번짐은 별무리라기보다, 지구가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덧칠한 얼룩 같았다. 나는 그 얼룩을 오래 바라봤다.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로. 감정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아서.
그때 나는 알았다.
행복은 꼭 환희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행복은, 감정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는 미지근한 공기 같은 것이라는 걸.
때로 행복은, 지나치지 않고 버텨 준 하루의 체온이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잘 부서졌는데도, 저녁까지 내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흘린 눈물이 내 안에서 조용히 마르고,
말 한마디 건넬 사람이 없어도
침대까지 걸어가서
불을 끄고
또 한 번 숨을 쉬는 일.
나는 그런 작은 동작들을 ‘행복’이라고 불러 보았다.
정확한 정의가 없어서, 일단 이름을 붙여두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이 행성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늘 너무 많으니까.
나는 슬픔과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었다.
슬픔은 내 방의 가구처럼 늘 같은 자리에 있었고, 나는 매번 거기에 발을 부딪혔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수록 나는 더 선명한 이방인이 되었다. 웃음이 오갈 때, 나는 웃음의 규칙을 뒤늦게 이해했고, 이해한 순간에는 이미 장면이 다음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계속 늦었다.
늦는 사람의 고독은, 속도 차이에서 온다.
모두가 이미 도착한 곳에서, 나만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감각.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깊이 혼자가 되는 순간,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불씨가 보였다.
불씨는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뜨겁고 얇아서, 바람이 불면 바로 꺼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씨는 말했다.
너는 아직,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게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말이 너무 쓸쓸해서
나는 잠깐 숨을 삼켰다.
살아 있다는 증거가 왜 이렇게 외로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행성에서 살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나는 자주, 빈 공기만 잡는다. 빈 공기는 잡히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동작이, 내게는 행복과 비슷해졌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행복은 단단한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외로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따뜻한 여백 같은 것이라는 걸.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주는 상상의 존재,
이 행성의 언어로도, 내가 떠나온 별의 언어로도
끝내 완벽히 번역되지 않는 감정들.
행복은 그 번역되지 않는 잔여물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지구에서 자주 통역자가 되지만, 내 마음만큼은 통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가끔 일기장에 숨긴다. 일기장은 유일하게 나를 오해하지 않는 행성이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행복이란,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고 싶어 하는 마음.
사라지지 않겠다고, 여기서 조금 더 머물겠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숨결.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잠시라도 내가 품을 수 있는 순간.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순간.
그것이 내가 이 행성에서 배운
초능력 없는 외계인의 행복이다.
초능력은 없지만, 견디는 법은 배웠다. 견디는 법을 배우는 동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닳았고, 그 닳음이 때때로 빛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기록은 이렇게 남겨 둔다.
나는 아직 완전히 외롭지 않다.
완전히 외롭지 않다는 건,
아직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기다림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림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말 하나가,
내가 붙잡고 있는 작은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