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사랑해요!

by 쪼교


나는 외계인이다. 지구에선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무해한 표정을 연습한다. 지구인들은 “직업”을 좋아한다. 직업은 정체성을 안전하게 설명해 주는 라벨이니까. 나는 그 라벨을 하나 붙였다. 화학연구원. 흰 가운, 니트릴 장갑, 라벨링된 시약병, 규정된 폐기 절차. 이 세계에서 나는 늘 정확한 척을 하며 살아남는다.


내 일터는 조용하지 않다. 후드(흄후드)의 팬은 낮게 울리고, 교반기는 끈질기게 떨며, 오토클레이브와 냉동고와 펌프는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쉰다. 기계들은 늘 일정한 리듬으로 내 신경을 문지른다. 어떤 날은 그 소음이 나를 살리고, 어떤 날은 나를 갈아 넣는다. 나는 데이터로 말해야 하고, 재현성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감”이 아니라 “수치”로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하루를 버티게 하는 건 수치가 아니라 이다.


나는 실험실에서 모든 것을 분류한다. 산과 염기, 용매와 용질, 친수성과 소수성, 위험과 비위험, 폐액 A와 폐액 B. 정해진 용기에 정해진 라벨. 분류를 잘하면 사고가 줄고, 분류를 잘하면 결과가 깔끔해진다. 나는 분류에 익숙하다. 외계인의 언어는 본래 분류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이 무엇인지 확실히 가르는 능력이 우리 종족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지구의 책은 분류되지 않는다. 분류를 거부한다.

책은 한 사람의 생을 한꺼번에 담아 버리고, 어떤 문장은 산성처럼 혀를 태우다가도, 다음 문장은 염기처럼 속을 편하게 만든다. 어떤 페이지는 향처럼 날아다니고, 어떤 페이지는 침전처럼 바닥에 남는다. 책은 반응한다. 읽는 나와 반응하고, 내 기억과 반응하고, 내가 감추려 했던 진짜 성분과 반응한다.


나는 그런 반응을 좋아하게 됐다.


연구소에는 매일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나간다. 시약은 유통기한이 있고, 용매는 증발하고, 장갑은 한 번 쓰고 버리고, 샘플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된다. “규정”은 신뢰를 만들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잘라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정리되고,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제거된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내 주변은 더 깔끔해지는데, 내 속은 왜 더 어지러워지는지 나는 늘 궁금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발견했다.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낡은 서가 구석에, 누군가 두고 간 책들이 있었다. 회의실 한쪽에, 퇴사자가 남긴 책 더미가 있었다. 실험실 휴게 공간에, 종이컵과 함께 놓인 단행본이 있었다. 모두가 지나치며 “누가 치우지?”라고 말하는 것들. 그러나 아무도 제대로 치우지 않는 것들.


나는 그 책들을, 몰래 건졌다.


나는 실험실에서 폐기물을 다룰 때 늘 조심한다. 어떤 것은 섞이면 폭발하고, 어떤 것은 증기를 내뿜고, 어떤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절차를 외운다. 라벨을 붙이고, 분리하고, 밀봉하고, 기록한다. 나는 그 습관으로 책도 다룬다. 책을 ‘버려지는 것’으로 분류하는 대신, ‘보관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내 기준은 간단하다. 누군가의 시간이 묻어 있는 것.

밑줄, 접힌 귀, 메모, 종이 냄새, 페이지 사이에 낀 작은 영수증. 날짜가 적힌 영수증을 보면, 나는 잠깐 멈춘다. 연구 노트의 날짜처럼, 책 속의 날짜도 “그날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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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계인이라 감정이 느슨해야 한다. 필요하면 켜고, 필요 없으면 끈다. 그런데 책은 늘 켜 버린다. 특히 지친 날. 특히 실험이 실패한 날. 특히 내가 보고서에 “원인 불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실험실에선 “원인 불명”이 부끄럽다.

하지만 삶에선 원인 불명이 너무 많다.


어떤 날은 내가 하루 종일 한 반응을 돌리고 또 돌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분자들은 내 기대를 배신한다. 오차는 정직한데, 결론은 도망간다. 그런 날 나는 집에 와서 책을 펼친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실험실에서 도망가던 것들이, 문장 속에서는 도망가지 않는다. 문장은 적어도 끝까지 가 준다. 내가 끝을 보기만 하면, 문장은 어느 정도의 의미를 남기고 닫힌다.


그게 나를 안심시킨다.

이 별에서 내가 얻은 몇 안 되는 안심이다.


내 방은 좁다. 외계인인 내가 지구에서 얻은 방은 늘 좁다. 지구는 늘 “여기까지만”을 허락한다. 그래서 책들이 벽이 된다. 책장이 아니라 책 자체가 책장이다. 나는 책들 사이에 끼어 산다. 책은 나를 껴안지 않지만, 나를 추방하지도 않는다. 지구인들은 사랑한다면서도 쉽게 추방하지만, 책은 적어도 조용히 자리를 내 준다. 그 점이 좋다.


밤이 되면 나는 불을 최소로 켠다. 실험실 조명은 늘 과하게 밝아서, 사람의 얼굴을 증명사진처럼 만들어 버리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 책을 펼친다. 그러면 소음이 다른 종류로 바뀐다. 후드 팬의 소음도, 펌프의 진동도 아닌—내 머릿속 소음. 문장들이 내 안에서 떠들기 시작한다.


나는 그 떠듦을 “노이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연구소에서 노이즈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만, 내 삶에서 노이즈는 오히려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 같을 때가 있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지만, 사실은 페이지가 나를 넘긴다.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 데이터와 그래프를 만든다. 하지만 책은 그런 걸 묻지 않는다. 책은 내가 실패한 날에도 “너는 오늘도 반응하고 있었어”라고 말해 준다.

실험이 실패해도, 나라는 존재가 실패한 건 아니라고—그 말을 나는 책에서 배운다. 책은 내게 재현성 대신 지속성을 가르친다. 다시 해 볼 것. 다시 살아 볼 것.


그리고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건져 올린 책들이 없다면 나는 어떤 외계인이었을까. 아마 더 정확하고, 더 무표정하고, 더 안전했겠지. 하지만 훨씬 덜 인간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간의 고독에 가까워지고 싶다. 인간의 고독은 조용하지 않다. 늘 시끄럽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너무 많아서, 밤마다 머리가 떠들썩하다. 그 시끄러움 속에서 인간은 겨우 살아남는다.


나도 그렇다.


나는 데이터의 소음이 아닌, 문장의 소음 속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내가 구출한 책들이 방을 점점 더 비좁게 만들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조금 넓어진다. 지구에서 넓어진다는 건 많은 걸 가지는 게 아니라, 많은 걸 견디는 능력이 커지는 것 같다. 나는 그 능력을 책에게서 배우는 중이다.


내일도 나는 실험실로 간다.

내일도 나는 라벨을 붙이고, 시약을 계량하고, 폐액을 분리하고, 결과를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심히 두고 간 책 한 권을 보게 되면—나는 또 한 번,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내 쪽으로 당길 것이다. 마치 위험물을 다루듯, 그러나 위험물과는 반대로, 나를 살리는 것을 다루듯.


나는 외계인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화학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는 동안

나는 책으로 나를 계속 반응시킨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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