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공기가 바뀌었다. 지구의 공기는 원래도 사람 냄새로 눅눅한데, 무당집의 공기는 사람보다 먼저 사람이 남긴 것을 쓸어 담아 둔 느낌이었다. 향이 타는 냄새, 오래된 이불 속 먼지, 젖은 비닐봉지에 남아 있는 비누 향 같은 것들이 한 덩어리로 붙어 내 코로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얕게 쉬었다. 이 별에서 나는 늘 눈치라는 산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그날은 그 마스크의 필터가 처음부터 막혀 있었다. 지구인들은 이런 걸 기운이 세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속으로 대기 혼합비 오류라고 번역했다. 내 행성에서는 이런 상황에 경고음이 울린다. 삐— 정상 산소, 비정상 눈치.
방은 작았다. 작은데도 꽉 차 있었다. 물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사방에 걸려 있어서였다. 벽지의 무늬 사이, 접힌 방석 틈, 신발장 위의 오래된 사진틀 유리 뒤, 그런 데에 실처럼 얇은 것들이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걸 과학적 데이터로 부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내 눈은 이미 보고 있었다. 보고 나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내가 이제야 인정하게 되는 식으로. 지구인들은 이런 걸 직감이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감지라고 부른다. 외계인에게 직감은 없어도 센서는 있다.
무당은 상 위에 앉아 있었고, 나는 방석에 엉덩이를 완전히 붙이기도 전이었다. 딱딱한 방석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으려는 사소한 동작을 하려던 순간, 그가 내 쪽을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앉기도 전에 답답하다.”
사람들은 보통 안녕하세요를 먼저 한다. 지구인들의 인사말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절차다. 그런데 그는 절차를 생략했다.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전에, 나에게 붙어 있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내 쪽의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외계인은 신분을 숨기지 않는다. 숨길수록 숨이 더 막히니까.
“선생님, 저 외계인이에요.”
내가 또렷하게 말했다. 농담처럼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말끝을 단단히 붙잡았다. 외계인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빠져나가 방 안에 놓이자,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잠깐 멈칫하는 것 같았다. 내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멈칫을 인식됨이라고 기록했다.
무당은 놀라지 않았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래서 더 답답한 거야.”
들킨 것은 항상 부끄럽다. 그런데 이건 부끄러움보다 더 빨리 찾아오는 것이었다. 등 뒤가 서늘해지고, 배가 무거워지고, 숨이 좁아지는 느낌. 숨이 좁아진다는 말은 원래 비유인데, 그날은 비유가 아니었다. 내 몸 안에 진짜로 통로가 있고 누군가가 그 통로를 손가락으로 눌러 줄여 버린 듯했다.
“답답해서요.”
나는 꿋꿋이 이어 말했다.
“외계인인데도요. 아니, 외계인이라서 더요. 숨이 막혀요. 진짜로.”
말하는 순간 더라는 부사가 내 입에서 빠져나가 방 안에 떨어졌다. 그 부사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외계인은 부사를 잘 쓰지 않는다. 부사는 감정의 찌꺼기라서. 그런데 나는 지구의 언어를 쓰고, 지구의 부사로 숨이 막힌다고 말한다. 그것 자체가 이미 지구화의 증거였다.
무당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 손짓은 물을 젓는 것처럼 보였다. 물이 없는데도 물결이 생겼다. 나는 그 물결이 내 앞에서 출렁이는 걸 봤다. 시력이 좋은 게 아니라, 그쪽이 더 먼저 흔들렸다는 뜻이다. 그는 손을 휘젓고 나서 아주 짧게 손끝을 닦았다. 테이블 가장자리의 수건 끝. 그냥 습관처럼 보일 그 동작이 내 눈에는 ‘외부 오염을 털어내는 절차’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입국 심사다. 외계인은 어디서든 입국 심사를 받는다.
“불안이 너무 많아. 우울도 같이 끼고.”
그는 내 생년월일도 묻지 않은 채 내 안쪽에 이름표를 붙이듯 말했다.
“너 이거— 병원 가. 꼭 가봐. 이건 여기서 푸는 게 아니야.”
무당집에 와서 병원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나는 잠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여기서는 보통 굿이나 부적이 나오거나 조상이나 삼재 같은 단어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내 상태를 치료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놀랍게도 그 분류가 아주 정확했다. 정확한 분류는 사람을 잠깐 안심시킨다. 내가 망가진 게 아니라, 망가짐에도 이름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도 나는 다시 말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나를 놓친다.
“선생님, 저는 외계인이에요.”
나는 그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됐다. 지구에서는 반복이 진심을 증명한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은 병원 가도 돼요? 지구 병원에서 외계인도 진료해요?”
무당은 이번에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냥 아주 현실적인 얼굴로 나를 봤다. 그 현실이 오히려 신비했다.
“외계인이든 뭐든, 네 숨이 지금 눌려 있어.”
그는 내 가슴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확히는 가슴이 아니라, 가슴 뒤에 있는 그 막을.
“여기서 계속 압력 걸리고 있어.”
압력. 나는 그 단어가 좋았다. 우울과 불안을 압력으로 부르는 순간, 내 상태는 갑자기 물리학이 되었다. 나는 과학을 믿는 외계인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얻었기 때문에. 압력이라면 수치가 있고 방향이 있고 언젠가는 빠질 구멍이 있을 테니까. 내 행성에서는 압력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밸브가 열린다. 지구의 문제는 밸브가 늘 참아로 잠겨 있다는 점이다.
무당은 내 말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의외로 그는 그 대목에서 나를 한 번 더 보았다. 사람을 보는 눈으로.
“너 집에서 잠은 자?”
“자긴 자요.”
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외계인도 잠은 자요. 근데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 그게 우울이야.”
그가 단정하듯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계속 미안해 하잖아. 말로는 안 해도, 몸이 미안해 하고 있어.”
나는 그 말에서 찔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통화였다. 누구나 갖고 있고, 아무 때나 쓰고, 아무도 진짜 가치로 바꾸어 주지 않는다. 나는 그 통화를 너무 많이 쥐고 있었다. 손에 땀이 배어 종이가 눅눅해질 정도로. 내 행성에는 미안합니다 같은 말이 없다. 대신 오류가 발생했습니다가 있다. 책임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흩어지니까. 그런데 나는 지구에 와서 시스템이 아니라 나를 먼저 탓하는 법을 배웠다. 외계인인 나에게도, 어느새 죄책감이 모국어처럼 붙어 있었다.
무당은 물 한 컵을 내밀었다. 물컵은 평범했는데, 그 평범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지구는 언제나 과잉인데, 물은 과잉이 없다. 물은 늘 물의 역할만 한다. 나는 물을 한 모금 삼켰고, 그때 내 목을 누르던 압력이 아주 조금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났다. 빠지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것, 없어지는 게 아니라 위치를 바꾸는 것. 그래도 그 작은 이동이 내게는 큰 사건이었다. 외계인은 이런 걸 사건으로 기록한다.
무당이 말했다.
“네가 여기까지 온 건, 네 마음이 아직 살려고 해서야.”
“저는 외계인이니까요.”
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우스운 자존심이 아니라, 숨을 위한 자존심이었다.
“살려고 온 거 맞아요. 외계인은 생존에 진심이거든요.”
무당은 잠깐 웃을 듯 말 듯 하더니, 결국 웃지 않았다. 대신 말끝을 단단히 눌러 내렸다.
“근데 네 마음 혼자서 못해. 병원 가고, 약도 필요하면 먹고.”
그는 잠깐 멈추고 내 얼굴을 봤다. 점괘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그리고… 너, 네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잖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더 또렷하게 말했다.
“생각이 아니에요. 저는 외계인이에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 속에서 내가 내게 붙어 있던 말 하나를 떼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인간일지도 몰라 같은 말. 그 말이 떨어져 나가며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조금 숨을 쉬었다.
무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외계인이든 뭐든, 네가 너무 오래 참아서 그래.”
그는 말끝을 낮췄다.
“참는 건 미덕이 아니야. 오래 참으면 몸이 먼저 고장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방 안의 공기를 다시 느꼈다. 내 숨이 아직 좁았지만, 좁음이 완전히 막힘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또렷해졌다. 압력은 여전히 있었고, 다만 그 압력에 이름이 생기자 내가 그 압력과 같은 방에 있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조금 늘어났다. 이름을 붙이는 건 외계인의 본능이다. 모르는 것을 분류하면, 모르는 것이 덜 무섭다.
집을 나올 때, 나는 신발을 신는 내 발을 유심히 봤다. 발은 늘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불안이 머리에서 폭발해도, 발은 바닥을 딛는다. 딛고, 서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 단순한 기능이 때로는 기적이다. 내 행성에서는 이런 걸 기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정상 작동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날의 나는 정상 작동을 겨우 회복한 셈이었다.
밖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내 목을 조금 넓혀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전히 답답했지만, 답답함이 조금 형태를 갖춘 느낌이었다.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압력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엇. 차가운 공기가 그 압력의 가장자리로 스며들어 아주 미세한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지구의 초자연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네.”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외계인이라서, 이 현실도 끝까지 기록할 거야.”
그리고 내일, 나는 정말로 병원에 갈 생각을 한다. 외계인도 지구의 병원에 가는 시대다. 무당집에서 들은 가장 현실적인 점괘는 결국 그거였다.
“너, 지금 살아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