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집 앞 마트에 가서 장미꽃을 사고, 근처 카페에 들러 와인 한 병과 작은 생크림 케이크를 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9층 대신 8층을 눌렀다. 8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밥 냄새와 찌개 냄새, 고기 굽는 냄새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열린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실례합니다.”
검은색 면바지에 흰색 폴라티를 입은 아랫집 남자가 문간에 나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 뒤에 선 아랫집 여자는 핑크색 원피스에 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들어와요. 들어와. 아니 뭘 이런 걸 가져와요.”
아랫집 남자는 나를 집안으로 거침없이 이끌었다. 순간 나는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 그에게서 보았던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떠밀려 그의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현관입구 복도에는 내 키만한 해바라기 꽃이 그려진 유화가 걸려 있었다. 지난 번에 정신이 없어서 미처 못 본 물건이다. 그러나 그 옆에 놓인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그리고 어느 야구 선수의 사인은 본 듯한 기억이 난다. 그는 그 야구 방망이로 나를 가격하려 했었다.
거실까지 들어서니 집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과 같은 구조인데, 아무것도 없는 우리 집과 달리 그의 거실은 가구와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베란다 빨래걸이에는 시래기가 널려있었고, 파와 양파, 사과, 마늘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쪽 벽에는 플라스틱 박스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내가 그 박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아랫집 남자는 말했다.
“아! 저건 우리 아내가 심심풀이로 하는 소일거리예요.”
그의 아내는 눈 없는 인형을 받아와 눈을 붙이는 일을 한다고 했다. 눈 없는 인형들과 주인을 찾지 못한 눈알들이 한 구석에서 무덤처럼 산을 이루고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식탁에 케이크와 와인을 올려 두었다. 부엌에서는 진한 마늘 냄새가 났다.
아랫집 남자가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요. 와줘서 고마워요.”
남자는 내 팔을 잡고 나를 소파로 끌어당겼다. 소파에 앉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집안은 찌개가 끊는 소리 외에는 고요하다. 그 고요함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아랫집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남자를 자세히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한쪽 눈은 외꺼풀, 다른 한쪽은 쌍꺼풀이 진 눈매, 숱이 적은 머리에 넓은 이마와 짧은 턱, 그리고 굵고 짧은 손가락이 인상적이었다. 그날은 황소 같은 덩치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날 아랫집 남자를 황소처럼 변하게 했었는지 말이다.
식탁에는 구운 김과, 총각김치가 놓여 있었고 곧 고등어조림과, 두부김치찌개가 나왔다. 이어서 강낭콩을 넣은 흰쌀밥이 나왔다. 나는 어색한 인사를 하고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찌개에서는 시큼한 향이 돌았다.
“맛있어요.”
그 찌개에서는 이국적인 맛이 났다. 언젠가 똠양꿍을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맛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찌개를 끓였을 아랫집 여자에게 감사의(?)눈길 비슷한 것을 보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눈을 내리깔고 내 눈을 피했다. 어쩌면 그녀는 원래 지독히 조용한 성격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그녀가 거실과 복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 나동그라져 남자들의 발길에 채일 때에도 그랬다.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었다.
그날은 여동생 내외와 조카들이 우리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집 거실에서 뛰고 구르며 한바탕 요란법석을 떨었다. 평소에 우리집은 사람이 아예 없을 때가 많고, 사람이 있을 때조차도 움직임이 거의 없기에, 어쩌다 하루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는 것쯤은 양해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략 한 시간가량 시간이 흐른 후, 생전 안 울리던 인터폰이 울렸다. 아랫집이었다. 나는 인터폰을 받았다.
“이봐!”
대뜸 들리는 반말에 나는 당황했다
"네?"
“조용히 하라고! 여기 너 혼자 살아?”
순간, 남자의 위협적인 반말에 감추어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랫집으로 뛰어 내려갔다. 뉴스에서만 보던, 층간소음으로 인한 싸움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아랫집 초인종을 두들기듯 눌러 댔다. 그러자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검은 반바지에 흰색 러닝셔츠를 입고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50대 중년 남자가 와락 달려들 듯 문밖으로 튀어나왔다. 남자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실은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술냄새가 진동했었다.
“저기요! 왜 반말을 합니까?”
아랫집 남자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나를 반대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남자에게 질세라 그의 멱살을 맞잡고 다시 반대쪽 벽으로 그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몇 번의 몸싸움 중에 아랫집 여자가 끼어들었다. 우리 둘을 떨쳐놓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러다 그녀는 바닥에 넘어졌고, 그녀의 몸이 발에 걸려 우리 둘 다 바닥에 뒹굴게 되었다. 아랫집 남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가 야구 방망이를 집어 들고 나와 나를 때릴 듯이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야구 방망이를 맞잡고 완강히 저항했다. 그때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경찰이 왔다.
경찰의 등장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아랫집 남자는 바닥에 앉아 씩씩거리고 있었고, 아랫집 여자는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경찰은 이웃 간에 사소한 오해이니 사과하고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도, 아랫집 남자도, 아무 말 없이 고객을 숙이고 끄덕이는 것으로 상황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방금 전의 일을 후회했다. 조금만 참을걸, 내가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대응할걸, 술 먹은 사람과 똑같은 부류가 된 거 같아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며칠 후 또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801호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는 며칠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엇다.
“아랫집인데요. 제가 사과하고 싶은데 잠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아랫집 남자는 어제와 달리 부드럽고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인터폰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어제의 앙금이 남아 마음은 여전히 찝찝했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아랫집 남자였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나는 문을 열었다. 그날과 같은 검은 반바지에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아랫집 남자는 머리를 무릎까지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식사라로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오늘 저녁 어떠신가요?”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랫집 남자의 깍듯한 사과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서 얼떨결에 알겠다는 대답을 헤버렸고, 서둘러 그를 내보내고 문을 닫아걸었다. 그게 바로 오늘 오전의 일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아랫집 남자는 고개를 숙인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제가 술만 먹으면 예민해져서...”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똑같이 그랬는 걸요. 저도 사과드립니다.”
“아내가 외국 사람이라 음식이 입에 맞으셨을지 모르겠네요.”
그의 말을 듣고, 이국적인 음식맛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유달리 말수가 적다고 생각했을 뿐, 외국사람인 줄은 몰랐다. 아랫집 여자는 한국사람 같은 이목구비에 마른 체격을 가졌고 10대와 같은 앳된 얼굴이었다. 말없이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아랫집 남자는 2년 전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스무 살 연하의 베트남 국적 여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건설 현장 감독으로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40대 중반의 나이가 훌쩍 넘어 결혼할 시기를 놓쳤던 것이다. 나이 많고 돈이 없으니 한국 여자들은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더라고, 그는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국제결혼업체를 알게 되었는데 결혼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으고 은행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고, 수 천만 원의 결혼비용까지 더 들여 결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랫집 남자는 결혼했다는 설렘보다 나이 어린 여자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단다. 그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여자는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남자는 베트남어를 배우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대 차이, 문화차이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쌓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 부부는 대화보다는 침묵 속에 살게 되었다. 결국, 퇴근 후에 아랫집 남자는 술을 먹기 시작했고, 아랫집 여자는 인형 눈 붙이는 일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아랫집 남자는 자신이 동굴 속에서 사는 거 같다고 했다. 집안은 고요해지고 숨 막힐 듯 답답해졌다고 했다. 작은 침묵이 더 큰 적막으로 바뀌게 되었고. 집안은 거대한 동굴처럼 변했다고 했다. 아랫집 남자는 차라리 그것이 평화롭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작은 소음에 동굴이 울리기라도 하면 평화가 깨지는 듯하여 폭발할 듯 화를 내었다고 한다. 아랫집 남자는 죄송하다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의 동굴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그 동굴 속에서 그랬을 거다. 나도 나의 평화가 깨질까봐 예민하게 굴었다. 침묵이 평화스러운 것인 양, 우울이 당연한 것인 양, 혹여 동굴이 울리면 큰일이 난 것인 양 그렇게 살아온 거 같았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이국적인 맛이 나는 찌개와 조림을 말없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 집을 빠져나왔다. 9층의 내집으로 올라오고야 나는 비로소 뭔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오늘 나는 아랫집 남자를 응원하게 되었다. 아랫 남자가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