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유리창에 스며든 저녁놀에 차 안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핸들을 꺾을 때마다 방향을 바꿔가며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검은 렌즈에 색을 빼앗긴 하늘에는 무거운 구름이 먹물처럼 흐르고 있다.
여동생에게 엄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짜증부터 났다. 왜? 또 왜! 라는 소리가 목구멍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왔다.
엄마는 지하철 계단에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계속 어지럽다고 하셨는데 동네 병원에 가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거 같아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원인을 찾기 전에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일을 나가셨고 결국 출근길에 쓰러지신 거였다.
왜 자꾸 일을 만드는 거지? 왜?
운전하는 내내 스트레스로 잔뜩 곤두서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집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우다가, 한순간 정신이 아뜩해지며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나도 모르게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긴 한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가 든 만큼 부모도 늙어간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내 부모는 이미 노년이고,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려 드는 순간 어김없이 현실의 채찍은 내 등짝을 후려치곤 한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부서질 듯 차문을 닫았다. 계단을 쿵쿵거리고 올라가 현관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 문짝을 잡아뜯을 듯 열어젖혔다. 집안은 휑할 정도로 조용했다. 동시에 내게는 이미 익숙한, 그 냄새가 코끝에 느껴졌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있는 공간엔 언제나 음식 냄새가 감돌았다. 마늘 냄새, 양파 냄새, 간장 냄새가 뒤섞인, 뭔가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 같은 냄새. 그러나 언제부턴가 엄마집에서는 환자 냄새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음식 냄새와 환자의 냄새가 뒤섞인 냄새. 과거와 미래가 섞인 듯한 그 냄새는 늘 내게 구역질을 느끼게 했다. 마치 그 기분 나쁜 냄새를 씻어내기라도 하는 듯,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나 사라진 원색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은 어둠에 그늘져 있었다. 거실 가운데 여동생 현정이 앉아 있었고 엄마와 아버지는 죄지은 사람인 양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 셋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면,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취성 강한 냄새... 방금 전까지 치밀어오르던 짜증과 분노가 무뎌져간다.
"왜들 그러고 있어“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긴장한 듯,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서 소파에 걸터 앉았다. 시선은 커피 잔 속의 불투명한 액체에 고정해두었다. 안 봐도 뻔한 가족들의 얼굴을 쳐다보기 두려웠다.
엄마가 환자가 된 뒤로 여동생과 나는 병원 진료 일정에 맞추어 각자의 스케줄을 조절하고 보험 약관을 뒤져가며 적용범위를 확인하였다. 엄마는 혹시나 해서 들어둔 암보험을 정말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며, 돈걱정은 덜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순간 자식이 해야 마땅한 말을 했다.
“엄마 돈 걱정하지 마! 현정이하고 내가 잘 버는데...”
그렇게 말하며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름진 얼굴에 힘없는 노인이 앉아있었다. 내가 알던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무 말도 없는 아버지가 미웠다.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과 슬픔이 뒤섞인 불쾌한 감정에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휘청거렸다. 따귀를 맞아 중심을 잃은 아이처럼...
엄마와 아버지는 나를 열심히 두들겨 팼다. 아버지는 육두문자를 섞어 가며 따귀를 때리는 것을 즐겼다. 그때 나는 알고 싶었다. 아니 알지 못해 고통스러웠었다. 나는 왜 부모로부터 맞아야할까? 내 부모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 자식을 때리는 걸까? 중년이 되어서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리고 애써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던 때, 내가 쉴 곳은 집이 아니었다. 집은 지옥이었고, 독서실이 나에게 천국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곧장 독서실로 가 새벽까지 버텼다. 성인이 되어 내가 제일 좋았던 것은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를 자주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좋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았고, 마음껏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중력을 벗어나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나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시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교활했다. 더 큰 인생의 궤도를 그려 나를 그 거미줄 같은 선 위에 붙들어 맸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늙어가면서 부모와 나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그들의 중력은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엄마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 꾸역꾸역 생계를 꾸려왔고, 나름 사업도 성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억세게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지독한 병이 들면 그만인 것을.
나도 나이가 들고, 먹고사는 고통을 겪어보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누군가에게 응어리를 풀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였을까? 왜 하필 나였을까?. 아니 나라서 다행이었을까?
나를 태운 운명의 굴레는 계속 굴러갔고 그러다 결국 엄마와 충돌했다. 엄마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날, 엄마와 나는 10시간을 병원 구석구석 옮겨 다니며 각종 검사를 받았다. 마지막 검사를 끝내고 병실에 누워있던 엄마는 이제 집에 가자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엄마는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흔들렸다. 급격한 어지러움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철재 침대를 붙잡으며 간신히 병실을 나섰다. 그날 부터였다. 엄마는 암 환자의 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병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진단명은 '다발성 골수종'. 일종의 혈액암인데 암세포가 온몸을 돌아다니며 내장 기관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엄마는 이미 심장이 심각한 손상을 받아, 언제 멈추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항암치료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그 결과는 어떠할지 알 수 없었다. 담당의사는 어떠한 섣부른 희망도 우리 모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괜찮다고, 치료받으면 좋아진다고 떠들었으나 엄마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엄마는 그날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서야, 세상을 원망하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는 두려웠다. 도저히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벌써부터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두려웠다. 그날 밤부터 나는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운명은 돌고 돌아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나란히 흘러가게 만들었다.
1년이 지났다. 항암치료 결과는 좋았고, 몸속에 떠돌고 있던 람다수치는 정상인과 같아졌다. 의사는 치료 결과가 좋다며 이대로 쭉 가면 된다고 했다. 심장내과에서는 심장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있으니 잘 유지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기쁘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는 영양실조에 걸렸고, 얼굴은 검어졌으며,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힘없이 떨리게 되었고, 독사 같은 눈매는 병든 병아리처럼 쳐졌고, 단단하던 체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수치는 정상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점점 힘들어했다. 게다가 멀쩡하던 아버지도 아프다며, 당신에게도 관심을 보여달라며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아버지 답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암에 비하면 나를 괴롭히던 불안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내 존재가 그리 중요하냐며 자책했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어느 어두운 구석을 둥둥 떠다니는 먼지같이 느껴졌다.
그래, 언젠가는 지금 이 시간도 끝날 것이다. 다 끝난 그날이 올 것이다. 그럼 나는 편해질 것인가? 나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옹이가 죽었을 때 보리를 데려와 슬픔을 달랬다. 하지만 인간은, 부모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다.
수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라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내 귀를 상처 내듯 긁었다. 날카로운 그 단어는 내 이명과 함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용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우주의 먼지가 우주의 중심을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운명의 굴레는 돌고 돌아 결국 그날이 올 것이다. 내가 용서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이후의 나는 어떨까?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를 감싸 안고 모두를 사랑하게 되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