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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Dec 28. 2023

나 돌아갈래!

짧은 글

살다 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지만 무작정 어디라고 말한다면 인생의 원점이라 말할 것이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에서 설경구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외친 대사가 있다. '나 돌아갈래!'

저 대사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고민하게 된다.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떠나 온 곳?, 고향?,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적어도 설경구는 돌아갈 곳이 있어 보인다. 나는 부럽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것은 내가 영원히 열지 못한 보석함의 열쇠 같은 거라 생각했다.




"그때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혼자 중얼거린 말을 들은 희윤은 옆에서 말했다. 

"어디를? “


나는 말했다. 

"어디든, 여기까지 오게 된 시발점. 지나간 날들이 끔찍하게 느껴지니까. 다시 시작하고 싶어 “


TV리모컨을 무심코 잡으며 희윤은 말했다. 

"후회해? “


나는 후회한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내가 그곳에 안 갔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을했지도,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참고 참다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죽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후회하거나 억울해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희윤은 말했다. 

"난 후회 같은 거 안 해. 후회하면 뭐 해? 이미 지나간 것을. “


"나도 너처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나는 단지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면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있었는데 좁은 세계에 살던 나는 동화 속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다. 훗날 나도 그들과 같이 살거라 믿었었다. 동화 속에서의 나는 영웅이었고, 구경꾼이었고, 이야기꾼이었다. 나는 이유를 모를 그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나는 상상 속의 상상 속의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내 의식은 또렸했고,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혜화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 앉아있었다. 똑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앞에 일렬로 앉아있다. 모두 넥타이로 목을 조이고 있거나, 머릿속에 사표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하철의 리듬에 맞추어 사람들의 머리가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모두 같은 상상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인류가 멸망하기를, 천재지변으로 세상이 모두 무너지기를, 그렇게 세상을 정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혜화역에서 내려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다 보면 나는 어느덧 대학로 한복판에 서있다. 동성고등학교를 지나 로터리를 건너 쭉 위로 올라가니 대형 오락실이 나왔다. 그때의 기억이 난다. 나는 꼭 오락실을 들리고서야 학교에 가거니 집에 갔다. 나는 학교로 가기 전에 오락실에 들렸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오락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문을 열자 현재의 회사 사무실이 나왔다. 오락기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책상이 놓여있었고 회사 사람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오락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뒤통수를 때리듯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리 와! “

문 이사였다.


강한 자석에 끌리듯 나는 다시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어쩌면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 오락실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오락실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였다. 곧장 학교로 갔었어야 했다. 나는 바꾸고 싶었다. 

나는 다시 상상 속의 상상 속의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오락실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학교로 갔다. 강의실로 들어가자 강당에 문이사가 서있었다. 문이사는 나 혼자 앉혀놓고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말이야. 지옥에서 살고 있어. 미생물조차 살 가치가 없는 곳에 말이야. 게다가 너는 이 세상의 단역 같은 거야. 이름도 없이 지나가는 행인 같은 거지?"

나는 대꾸했다. 

"아니요. 저는 주인공입니다. “


문이사는 말했다. 

"흥!. 단역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지. 자기가 나오는 부분은 죽어라 외우고 연습하지. 그 순간은 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진짜 주인공은 아니야 “


나는 슬펐다. 내가 돌아갈 곳은, 다시 시작할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단역일 뿐이라고 말이다.

문이사는 내게 쫙 벌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 괜히 누구 탓을 하지 마. 네가 문제니까 “

문이사는 여느 날에 다를 것 없이 나를 다구 쳤다. 


나는 학교를 뛰쳐나와 밖으로 무작정 달렸다. 벗어나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어렸을 적 살았던 용두동 우리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이라면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세상에 차가 없는 것처럼 도로를 달려 일산으로 갔다. 부모님에게 달려갔으나 부모님은 병들어 있었다. 병든 부모님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부모님이 내민 손을 외면하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때 머릿속에 생각하나 가 떠올랐다. 


"지각이다"

나는 회사에 지각할까 봐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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