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요란스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그 소리는 핸드폰의 경고음이었다. 어딘가에 지진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밤새 폭설이라도 내린 것일까? 그때 경고 메시지가 들렸다.
-긴급속보-
달이 사라졌습니다.
시민들은 원인이 나올 때까지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달이 사라졌다니 이게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이가. TV부터 켜보았다. TV에서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달이 사라졌다는 그 황당한 얘기 뿐이었다. 이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달이 사라진 원인에 대해 말하고, 앞으로 지구가 겪게 될 일에 대해 예측해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건, 달이 사라졌다는 것뿐이었다.
달은 어제저녁부터 뜨지 않았다고 했다. 해가 지면 달이 떠야 하는데, 해가 져도 달이 뜨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달이 사라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 지구의 밤은 달이 없어도 도시의 불빛이나 자동차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기 때문이다.
뉴스에 의하면, 달이 사라진 것을 안 것은 사람들보다 동물들이 먼저였다고 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은 어두워진 바닷속을 빠져나와 모두 물 위로 올라왔고, 하늘을 날던 새들은 어두워진 밤하늘을 피해 모두 땅으로 내려왔다. 산속에 살던 동물들도 깜깜한 산속에서 나와 밝은 도시로 몰려나오기 나왔다. 도로는 온통 차들과 동물들로 뒤섞여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도로를 질주하는 동물들을 구경하느라 달이 사라진 줄은 미처 몰랐었다. 해가 뜰 때가 가까워서야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망원경에 의해서 달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세계 천문학계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무엇인가가 달을 들이받는 바람에, 달이 궤도를 이탈해 우주 어딘가로 날아갔다는 ‘충돌설’이 나왔다. 일부 학자들은 그 충격에 의해 달이 아예 산산조각 났다는 ‘파괴설’도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소수의 과학자들에 의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설명도 나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애초에 달은 외계인이 지구를 탐색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모종의 임무를 마친 외계인들이 지구에서 철수하면서 달을 통째로 끌고 갔거나, 혹은 제거해버렸다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충돌설보다 이 전초 기지설에 더 마음이 끌리는 분위기였다.
달이 사라진 그 날 이후로 세상 사람들은 온통 달 이야기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달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 밖의 것은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냈다는 소식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도 이제는 특별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어지간한 충격은 달이 사라진 충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람들은 오직 달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만 동요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달의 부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달의 부재는 모든 것에 핑곗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달이 사라지자 출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상을 포기한 사람들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거리로 나와 밤새도록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심지어 사람들은 마치 달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달이 다시 뜨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천체망원경이 불이 나게 팔렸다. 지붕마다 옥상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달을 찾았다.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로 오히려 낮보다 밤이 더 밝아 보였다. 그러나 달을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덨다.
달이 없는 날들은 길어져가고, 사람들의 생활패턴도 바뀌어갔다. 사람들은 밤에 일하고 밤에 식사를 하며, 밤에 여행을 다녔다. 반대로 낮에는 잠을 잤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연현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밀물과 썰물의 주기가 엉망이 되어 해일이 육지를 덮치고 해안선을 바꾸어 놓았다. 기상 이변이 잇달았고, 생물들의 생체 리듬이 무너져갔으며 번식이 되지 않아 수많은 동식물종들이 멸종했다. 그렇게 지구는 황폐해져갔다. 사람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갓다. 종말을 각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참혹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이었다. 그 언젠가처럼, 갑자기 속보가 떴다.
-뉴스 속보입니다. 드디어 달을 찾았습니다. 애초에 달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달은 축구공 크기만큼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과학계에서도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지구를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크기가 작아져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찾고 보니, 달은 멀쩡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모양은 기존의 달과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예전의 평화롭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돌아온 달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 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지구에 인력을 행사하지도 못했다. 이미 달이 없는 환경에 적응해버린 사람들에게, 돌아온 작은 달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이미 시와 가요는 달을 노래하지 않았다. 달에 관한 꿈과 미신, 달에 관한 영화, 달에 관한 상상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달을 잊어갔다. 달이 사라진 뒤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예 달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또다시 수 년이 흘렀다. 이제 아무도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어느 날, 갑자기 달이 돌아왔다. 축구공만 하던 달이 어느 날 갑자기 커져서 원래의 크기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하늘에 나하탄 달에 두려움을 느꼈다. 없던 것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달이 떠올라 세상을 환하게 밝히자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그 빛이 너무 밝아 견딜 수가 없다며 선글라스를 꺼내쓰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에는 깨어있고 밝은 대낮에는 잠을 자던 사람들은, 달이 돌아온 이후 혼란스러워했다. 달빛이 환한 밤에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어두워져야 일을 하던 사람들도 달빛 아래에서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 고통스러워했다.
만일 그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사람들은 다시 달이 있는 밤에 적응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선조가 수백만년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다시 작아져버렸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커졌다. 달은 작아지고 커지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 변화에 주기를 측정하게 되었다. 주기는 갈수록 짧아져서 나중엔 몇 초만에 커졌다가, 몇 초만에 작아지는 지경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지구는 미러볼처럼 반짝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큰 미러볼....
-뉴스속보입니다.
달이 외계인의 기지였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외계인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 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의 결과로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은 증명되었다. 달이 작아지면 인간은 눈을 뜬다. 그리고 다시 달이 커질 때 눈을 감는다. 달은 눈깜짝 할 새에 커졌다 작아졌고, 인간은 달과 함께 눈을 깜박거렸다. 그렇게 환경에 적응해갔다. 아마도 그들의 후손들은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낄 것이다. 달과 인간이 원래 그렇게 지내온 것인 줄 알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