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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an 07. 2024

고양이가 묻힌날.

에세이

나는 그때 회사 정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정문이 보이자마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고, 온몸의 신경줄이 어김없이 팽팽하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띈 뭔가가 있었다. 회사 입구 한쪽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회사 내에서 살던 길고양이인데 평소에 내가 밥을 주곤 했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로 가까이 갔다. 이상하게 녀석은 사람이 다가오는데도 미동조차 없다. 무의식중에  발로 툭 쳐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녀석은 죽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길고양이의 죽음. 그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궁금했다. 왜 죽었을까? 무엇을 잘못 먹었을까? 적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았을까?


 곧이어 녀석이 낳은 새끼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에 세 마리였는데,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은 어미보다는 새끼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묘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문득 집에 있는 보리가 생각났다. 저녀석도 주인을 잘 만났더라면 보리처럼 따뜻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녀석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죄책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내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새끼이던 녀석에게 보리가 먹지 않는 간식들을 가져다 주곤 했다. 물론 녀석은 나를 경계하며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간식을 내 발밑에 내려 놓으면 그제서야 슬금 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다가와 맛을 보기 시작하면 과감하게 먹는다. 체구는 앙증맞게 작아도 겁이 없었다. 아직 어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 자란 고양이들은 오히려 겁이 많았다. 먹이를 보고도 다가올 꿈도 꾸지 않는다. 내가 자리를 피해주면 그제서야 다가와 먹기 시작한다. 길고양이들의 그런 습성이 나는 볼 때마다 신기했다. 


 가끔 나는 생각하곤 했다. 저 약하고 작은 동물들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호의적이지 않은 인간 세상 속에서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전 날도 나는 길 고양이 가족에게 먹이를 주고 멀리서 그들이 먹는 장면을 지켜보았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가끔 나는 몇 시간이고 그들을 바라보곤 하니까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조차 결코 지루하지 않다. 얼핏 졸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들의 귀는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에겐 사방이 위험이고 적이다. 늘 경계하며 사는 삶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본능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내 본능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삽으로 녀석의 사체를 들어올렸다. 그걸 회사 한쪽 공터에 들고 가서 내려놓은 뒤 잡초가 자란 한 구석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혹시나 공터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파헤쳐질 가능성이 없는 곳을 골랐다. 다행히 땅이 아직 단단히 얼진 않았다. 고양이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고 흙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삽등으로 흙을 살살 두드려주었다. 새끼 때부터 봐온 녀석이라 그럴까? 가슴이 아팠다. 내 고양이가 아님에도 그랬다. 매장의 과정이 다 끝났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두려움일까? 죽음에 대한 경외심이었을까?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내 감정은 자연을 담을 풍경화 같았다. 감상은 할 순 있지만, 다가갈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나는 사무실로 올라가 창가에 기대섰다. 고양이를 묻어둔 공터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새끼일 때 집으로 데려갔어야 했다. 그러면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필사적으로 이런 생각에 매달렸다.


그래 내 잘못은 아니야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어나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야.” 

    

 모든 걸 잠시 잊기 위해 나는 커피를 내렸다. 커피 향이 머릿속에 퍼지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묻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계속 찜찜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또 다른 찜찜함이 느껴졌다. 정말 이걸로 끝인가? 


 나는 사무실에서 나가 그 녀석이 남겨둔 새끼 고양이들에게 갔다. 녀석들은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서로 뒤엉켜 놀고 있었다. 아니다. 아마 그 녀석들도 알 것이다. 어미가 죽었을 때 슬펐을 것이다. 낑낑거리며, 나름 애도도 했을 것이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서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통을 잠시 접어두고 일상 속에 쉬고 있는 것뿐이다. 새끼 길고양이의 일상 속에... 

 나는 녀석들과 내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감정도 인간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다만 그 감정을 파헤치지 않을 뿐이지인간들은 뇌를 완벽하게 이해고자 했어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어떤 부위가 있을 거고그것을 찾아내면 그 비밀도 쉽게 밝혀질 거라 믿었던 거야그리나 알면 알수록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게 되었어만용이었지인간만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는 근자감 같은 거 말이야너희가 알 수 없듯이 인간들도 마찬가지야아무리 간단한 감정이라 해도 모든 부분이 작용해야 돼절대 알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녀석들을 위로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다. 나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녀석들도 험한 세상을 길에서 살며 경험하고 느끼다 보면 조금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죽은 어미에게 했던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좀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힘차게 내일의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며...      


 몇 달이 지났고, 그새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덩치가 어미와 비슷해지자 한 녀석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한 마리가 되고, 결국 마지막 녀석까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놓아둔 사료는 지나가던 다른 길고양이가 먹어치우곤 했다. 세 마리 어린 고양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떠났다. 아, 그렇지. 녀석들은 애초에 길고양이들었다. 어미가 떠난 뒤로 그들에겐 집이 없었다.    

  

 녀석들의 남기고 간 빈 공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떠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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