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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an 10. 2024

비가 많이 오는 날

에세이

비가 내렸다. 어제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도 크기가 더해 내린다.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뿌연 물보라를 일으켰다. 출근길은 언제나 같지만 비가 오는 날 도시는 모든 색이 씻겨내린듯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다. 기분도 색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입구,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꽤 컸다. 발등에 튀는 빗방울에 신발 위는 살얼음이 생겼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던 직원들이 내 앞을 지나가며 소리를 줄인다. 나는 한발 옆으로 물러 섰다. 지나가던 직원들은 나를 흘깃 보고 목례를 한다. 


 "아 왜 음침하게 저기 서있데?"

"그러게 말이야."


그들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고서야 나는 발길을 옮겼다. 그들이 남기고 간 검은 발자국이 반짝거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물을 켜자 형광등이 번쩍이며 어둠이 꿈틀거리며 사라졌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있을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오늘이구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준비됐어?"

엄마는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짧게 대답했다. 

"이따 갈게"

가만히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구름 때가 몰려오고 있다. 


빗줄기는 어느새 폭우로 바꾸어 내리고 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창문에 거세게 부딪히고 있다. 박대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장님, 오늘 조퇴하시죠?"

"괜찮겠어요? 오늘 비 많이 온다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웃음을 지었는데 잘 되지 않아 입술이 찌그러졌다. 박대리는 잘 다녀오라며 어깨를 툭툭치고 사무실을 나갔다. 찌그러진 입술은 박대리가 나간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컴퓨터 화면 보호기가 작동되자 끝없는 미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시가 되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창가에 올려둔 핸드폰을 가지러 가다 바라본 창가에는 빗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무실을 나가 회사를 빠져나왔다. 나는 비바람을 헤치며 길을 만들었다. 비는 바람을 먹어 무게를 더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비바람을 밀어내며 차에 올라탔다.



차를 몰고 일산 IC로 넘어가자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맑은 하늘의 햇살로 가득했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득 내가 어디로 가는것인지를 상기시켰다. 그래 나는 엄마 집으로 가고 있다. 


내가 도착하자 엄마는 자리에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집안을 둘러본다. 그녀의 집은 늘 그렇듯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단지 생기를 잃었을 뿐이다. 엄마는 미련이 남는지 집을 빠져나오기를 머뭇거린다. 나는 엄마를 부축하고 차에 태웠다.

어느새 하늘은 파란 뭉게 구름을 품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구름은 사라지고 하늘은 푸른 도화지로 바뀌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괜찮아"

엄마는 웃어 보였지만 얼굴근육은 힘겨워하고 있었다. 어중간한 미소와 일그러짐. 그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다리를 지나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졌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빗방울이 흩날렸다. 차창에 얼룩이 생겨 와이퍼를 작동시키니 긴 얼룩이 남는다.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지나간다. 한참을 달리니 촘촘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커다란 건물이 숲과 거대한 바위에 둘러싸여 있다. 바람도, 비도, 공기도 멈춰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세상과 단절된 그림속의 외로운 풍경같았다.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비를 머금은 건물이 반짝인다. 건물 정면에 '00 요양병원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글자가 보인다. 차에서 내려 건물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나와 엄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손을 꼭 잡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거센 바람이 우리를 지나쳐 숲저편으로 달아났다. 서로 치대는 나뭇가지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힘들어하는 엄마는 숨을 고른다. 건물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다가갈수록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희망을 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름 모를 화분들이 줄지어 서있다. 후끈거리는 공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현기증이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나무로 된 나무바닥에 올라섰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정면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옆으로 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나왔다.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은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다. 매일 똑같은 나무, 똑같은 돌, 똑같은 바람, 똑같은 사람을 보게될 엄마의 시선이 보였다.


입원수속을 하고 간단한 상담을 했다. 의사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배정받은 입원실로 향했다. 나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나는 떠나는 엄마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탔다. 차 안은 밀도 높은 먼지와 엄마 냄새로 가득 찼다. 창이란 창문은 모두 열었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지만 머릿속은 혼탁했다. 건물너머 어둠이 찾아올때 쯤 시동을 걸았다.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자 앞머리카락이 흐르듯 눈을 살짝 가린다. 코가 시큰거린다. 눈물을 참으려 심호흡을 했다. 


차를 출발하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은 점점 강해졌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두려움이 몰아쳤다.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번쩍이며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천둥소리에 땅이 흔들렸다. 나는 도망치듯 차를 세게 몰았다.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붙잡힐 듯이 달렸다. 산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차를 세웠다. 나는 차에서 내려 뒤돌아보았다. 어둠은 산길을 막아버렸다. 다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나는 믿는다. 어둠은 빛을 부른다는 것을... 

다시 해가 뜨면 길은 꼭 열릴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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