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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Jan 15. 2024

소원을 들어주는 집

짧은 글

먼지로 검은색으로 도배된 차를 몰고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 덜컹거리는 차 안의 음료수는 쏟아질 듯 아슬아슬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남자는 차가 흔들릴 때마다 속이 울렁거림을 참지 못할 지경이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돌덩이를 밟자 차는 크게 요동쳤다.  몸이 크게 흔들리자 금방이라도 저녁에 먹은 라면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올 거 같았다. 차 안에서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끊어질 듯 흘러나오고 있다. 저 노래에 추억이 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어떤 기억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충동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곳에 올생각은 아니었다. 남자는 방금 전까지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금쯤이면 일산대교를 넘어 집에 도착해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남자는 파주로 차를 몰았다. 아니 정확히는 매일같이 파주로 가는 꿈을 꿔왔었다. 언제나 대교를 넘기 전 파주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다만 어쩌다 보니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파주 어느 시골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남자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의 행동을 본다면 무책임하고 정신 나간 짓을 했다고 할 것이다. 멀쩡한 가장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옆길로 샌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어이없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남자는 다시 한숨을 푹 쉬 내쉬며 창문을 올렸다. 그때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비포장도로가 끝나더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선유리라고 나와있었다. 남자는 차에서 내려 마을 안쪽으로 걸어내려 갔다. 작은 골목들이 나왔고 술집으로 보이는 가계들이 보였다. 관리를 어떻게 한 것인지 문들은 여기저기 썩고 문들어져있었고 창문들은 대부분 깨져있었다.

 

남자는 기억했다. 아주 오랜 전에 이곳에 미군기지가 있었고 미군들을 상대하던 작은 술집들이 몰려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어렸을 적 이곳에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골목마다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너무 커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미군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헤매며 골목을 찾아 헤맸다.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기억 속의 길을 걸었지만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그 골목에서는 사람의 말소리는커녕 빛조차도 없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낯익은 민가가 보였다. 그제야 남자는 한숨을 돌렸다.


"우리 집이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벽이든 사람이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오직 남자가 살던 집만이 남아있었다. 집에 다가가자 밥 짓는 듯한 냄새가 났다. 남자는 의아했다. 이제까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의 냄새가 났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골목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기이했다. 분명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사람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동물들도, 미새한 생명의 숨소리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남자는 미쳐 못 보고 지나쳤다 생각해서 다시 골목으로 되돌아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밥 짓는 냄새와 더불어 남자가 좋아하던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남자는 냄새를 따라갔다. 냄새는 남자가 살던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집 앞으로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살짝 열었다. 끼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남자가 어릴 적 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루에는 작은 밥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남자가 마루에 걸터앉으려던 순간이었다.


" 배고프지?"


남자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서있었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의 어머니는 흙이 가득 묻은 고무줄바지에 두꺼운 털 조끼를 입고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두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너무나 기괴한 상황에 더듬거리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남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밥 먹어라"


남자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잠시 입꼬리만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의미를 알 수 있는 대답에 남자는 밥상을 보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밥과 찌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반찬은 남자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였다. 마치 남자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반찬들은 오래된 기색 없이 모두 다 새 반찬들이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말없이 계란말이를 남자의 밥그릇 위로 올려주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기 위해 남자는 그제야 수저를 들어 밥 위의 계란말이와 함께 밥을  한 숟가락 떴다. 그리웠던 맛이었다. 어머니의 맛. 남자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반쯤 비운 상태에서 남자는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 어떻게 된 거죠?"


남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여기 온 이유 아니더냐"


남자는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토할 거 같았다.


남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방에서 잠시 쉬고 가라"


진이 쭉 빠지는 거 같았다. 일단 잠을 자고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묘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착각인지, 꿈인지, 아니면 자신이 미쳤는지, 아니면 남자가 열다섯 살까지 이 마을에 살 묻혀있던 기억 속에서 환영을 본 것인지,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좁은 방에 누우니 뒤척일 틈도 없이 꽉 찼다. 어렸을 적에 커 보였던 방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조금 멍할 뿐 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잠을 억지로 청하기 위해 눈을 꾹 감고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남자는 지금 이 상황은 계획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세상과 멀어지기 위해, 비록 충동적으로 차를 몰았지만 오랫동안 계획해 왔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과 달리 몸은 피곤을 이기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철퍽'


깊은 잠으로 빠져들때 쯤 무엇이 얼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뱀이 목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힘겹게 남자는 눈을 떴다. 그리고 두 눈에 보인 것은 남자의 목에 걸려있는 노끈이 보였다. 천장은 부서져 있었고 남자는 끈과 함께 방바닥으로 널부러져 있었다.

남자는 자리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마루에 나오니 낡고 오래된 마당이 보였다. 사람이 오래도록 살지 않은, 남자의 기억과 다른 폐허가 된 집이었다. 마루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밥상이 보였다. 남자는 밥상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남자는 집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고 집 앞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만이 가라앉았다. 희뿌연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떨어지며 마을의 모든 것을 새하얗게 덮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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