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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책방 Mar 17. 2024

이별이 가까워진다는 건

짧은 글

정말 오랜만에 서점엘 다녀왔다광화문 교보문고... 예전엔 그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에 들어 즐겨 찾던 곳이다그러다 언젠가 규모를 축소하고 내부를 바꾼 뒤부터 가지 않게 된 것인데이번에 다시 가보니 역시 좋았다서점이란 장소는적어도 내게는 위로를 주는 곳이다그곳에 가면 책에 파묻혀 꿈꿀 수 있을 것 같다수 많은 이야기들이 무지갯빛 비누방울처럼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내가 강하고 둔할 때는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치 않다연약하고 예민해져 있을 때또는 몹시 지쳐 있을 때 나는 마치 마약을 찾듯 이야기를 찾는다현실을 잊게 할 마약으로서의 이야기가 무한 제공되는 장소가 있다면 그게 바로 서점일 것이다나는 그곳에서 바깥 세상을 잊을 수 있다그곳에 영원히 머문다면나는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소설 속 이야기들을 숨쉬고이야기들을 먹고 마시며한 이야기로부터 다른 이야기로 옮겨 다니는 삶그런 삶이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장소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그런 장소를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말해주는가힘겹고 막막한 현실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뜻이다다만 잠시 그 고통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현실을 담담히 바라볼 수는 있었다어느 정도 차분한 마음으로 내게 일어난 일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그 사건 직전까지 누렸던 평화로운 날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분명 그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말이다그러니 괴롭고 고통받던 시간마저도 어쩌면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집에서 떠나는 날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느끼지 못했다아니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연락을 받고 찾아갔을 때 엄마는 방바닥에 쓰러진 채로 누워있었다움직일 수 없어서 새벽 내내 허공만 바라보며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엄마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병원이 답답해서 싫다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엄마는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이젠 병원에 가야겠다.     


 그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슬픈 감정보다는 본능적인 눈물이었다눈물을 얼굴에 느끼며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도망치고 싶었다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 나를 영영 가둬버리고 싶었다

 어쩌면엄마도 나도 처음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나는 그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나름 계획을 세웠다그것도 몇 년이 지난 후의 일까지 말이다그러나 그날은 멀지 않았던 거다이렇게 불시에 그날이 찾아왔다그날이 닥치고야 나는 알아챘다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그날을 각오하고 있었음을구급대원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담담했다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왜 아무렇지도 않지슬펴야 하는데 왜 담담한 거지?

 

 마치 그 답을 찾으려는 듯 나는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을 비로소 자세히 살펴보았다얼굴 여기저기엔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들이 있었고 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간호사가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바늘로 찔러대자검게 바짝 말라버린 엄마는 괴로운 신음 소리를 냈다나는 순간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이 우리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쯤에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검사결과가 나와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나이가 지긋한 그 의사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간병인이 있는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좋을 거라 했다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그곳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래도 나는 담담했다무의식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멍한 채로요양병원을 알아보았다그리로 모셔가기 위해 엄마를 뒷좌석에 태웠다엄마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병원에 도착해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안으로 들어갔다그제야그병원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그곳은 이제까지 엄마가 계셨던 말 그대로 요양을 하기 위한 요양병원과는 달랐다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개미집처럼 보였다왠지 모르게 차갑고 어두운 느낌의 공간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계적인 사람들과 곳곳에 누워 있는 환자들게다가 대변 냄새와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간호사들은 표정이 없었고 직원들은 고개를 들지 않고 우리를 응대했다.  그 전의 요양병원은 그나마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날을 절박하게 기닫리는 곳이었다면 이곳은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장소였다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복도를 걸으며 지나친 방들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백발의 노인들이 가득했고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다배정된 방에 들어가자 이미 명의 노인들이 천장만 보고 누워있었다어두운 커튼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마저 어두워 보였다.  

 조선족으로 보이는 간병인이 엄마를 침대에 눕혔다엄마는 간병인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엄마의 말에 나는 눈물이 울컥 쏟아졌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간병인은 곧바로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엄마에게 성인용 기저귀를 채웠다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처음으로 끓어오르는 내 감정을 그대로 폭발시켰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이것이 현대판 고려장인가죽음으로 내던지는 것과 다를 바가 뭔가?     


 병원을 나와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그리고 나는 곧바로 다른 요양병원을 알아보았다이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여동생도 동의했다엄마를 좀 더 좋은 곳에 모시고 싶었다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여기저기 알아본 결과이전보다는 깨끗한 환경의 병원을 찾았다나는 입원 1시간 만에 엄마를 퇴원시켰다우리를 붙잡는 관리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곤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엄마다른 곳에 가자

 거긴 좀 더 좋아

 미안해 엄마...          


 어쩌면 나는 이미 엄마를 용서했을지도 모른다아니 처음부터 미움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가족을 보내야 할 때부모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혈육과의 이별의 날이 오길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 일을 우리 모두는 겪어야 한다     

 새로운 병원은 친절했다밝은 빛이 들어오고 쾌적했다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들 사이에 약간의 희망과 위로가 공기처럼 떠돌고 있었다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입원절차를 마치고 간병인에게 엄마를 부탁하며 봉투를 건넸다그러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어느새 나는 다시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담담해지고 있었다내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다감정이 없는데도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들었다집에서도회사에서도밥을 먹을 때도잠들기 전에도 엄마가 문득문득 생각났다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불과 며칠 전에 엄마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었지만 이제는 엄마는 더 이상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엄마는 분명 살아계신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같았다전화를 하고 싶어도 전화를   없는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데도 다른 세상에 있는 거 같은 그런 대상 같았다     


 나는 주말마다 엄마를 보러 간다갈 때마다 엄마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평소 냉랭하던 엄마는 살가워졌고말이 없던 엄마는 소녀처럼 말이 많아졌다외모는 점점 쪼그라들고 신체기능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는데 성격은 밝아지고 있다희윤이가 말했다     


-규호 씨 어머니가 귀여워지셨어     


 엄마의 섬망증상도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나는 생각했다어쩌면 본인의 잃어버린 젊은 시절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고 말이다엄마에게도 즐거웠던 기억이천진난만하고 귀여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잠시라도 그 시절을 찾아서 행복했으면 했다우리를 잊을지라도우리에게 낯선 모습의 엄마라 할지라도시한부 인생이라 할지라도병원에 누워만 지내야 하는 마지막 삶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각자가 원하는 결말이 있겠지만 삶이라는 것은 잔혹하게도 그 결말을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원하는 이야기를 쓰게 두지도 않는다우리의 이야기는 엄마도 나도 원하는 이야기의 결말이 아닐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중간에 책을 덮을 수도 다른 이야기를 고를 수도 없다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비록 엄마의 이야기는 슬픈 마무리가 되어갈지라도 엄마의 꿈속에서는 본인의 원하는 행복한 결말이 되었으면 바란다그것이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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