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국립농업과학원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
https://brunch.co.kr/@ggulggeokhouse/14
이번 밥핑은 10명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토종 곡류(멥쌀, 찹쌀, 콩 등) 15종을 함께 평가하기로 했다. 이후엔 참여해 주신 분들의 의견을 수렴한 몇 가지 품종을 꿀꺽하우스에서 시제품 테스트를 거치고 향후 음식과 우리 술 등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토종 멥쌀, 콩, 찹쌀 등을 선정한 기준은 1) 사전 테스트 후 내부적으로 선호가 높은 2) 맛, 향, 색상 등에 비교적 차이가 두드러지는 3) 소개하고 싶은 품종 등을 우선으로 했다. 그렇게 선정된 품종은 다음과 같다.
멥쌀 5종 - 노인도, 보리벼, 북흑조, 검은깨쌀벼, 자광도
콩 5종 - 홀애비밤콩, 선비잡이콩, 베틸콩, 아주까리밤콩, 호랑이콩
찹쌀 5종 - 붉은차나락, 멧돼지찰, 몽근차나락, 소유리, 귀도
이렇게 선정된 곡류 원물의 조리 형태는 쌀은 밥으로, 콩은 찐 것으로. 최대한 동일한 조건으로 조리하기 위해 밥솥을 준비했고 행사 시간에 맞게 첫 섹션의 곡류는 먼저 취사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밥핑을 진행하기에 앞서 꿀꺽하우스의 간단한 인사말과 국립농업과학원 이승은 박사님의 소개가 이어졌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토종 식품 자원의 발굴과 활용을 위한 모델 개발을 위해 다양한 부분에 연구를 진행하고 계셨는데 '토종'에 대한 정의부터 이런 연구 개발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 주셨다. 토종은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 행정적으로는 야생종과 재래종을 뜻한다고 한다. 농업의 산업화나 규모화로 점차 사라져 가는 토종 농산물을 복원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소비 시장이 확대되고 다양한 산업에 연계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연구 개발 중이라고 하셨다.
금일 메인으로 진행될 토종 농산물 Sensory Wheel을 통한 평가 방법과 자세한 감각 속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셨는데 사전에 직접 휠을 보며 향/맛, 질감 등을 평가해 보니 생소했던 감각을 정의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외에도 우리가 추가적으로 궁금한 품종별 개인 선호도와 휠에서 느끼지 못한 단어, 활용 방안 등 주관식으로 작성할 수 있는 평가지를 만들어 두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드리는 동안 밥 짓는 냄새와 증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밥핑은 5종씩 총 3 섹션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취사가 완료된 곡류들의 향이 휘발되기 전에 가볍게 향과 외관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바에 놓인 순서대로 돌아가며 확인했다. 살짝 식으면 개인마다 테스트할 수 있게 용기에 소분했다. 처음 가급적 일회용 용기를 안 쓰고자 유리잔, 소스 종지 등 다양하게 고민했는데 박사님께서 최대한 향을 잡아둘 수 있는 뚜껑 있는 용기가 좋다고 하셔서 우선은 지원해 주신 용기를 활용했다. 테이블엔 추가적으로 테이스팅 중간중간 환기 할 수 있도록 오이 스틱과 김, 물 등 을 함께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관능 평가가 이어졌다. 이 중엔 평소 먹는 멥쌀과 거의 유사한 것도 있었고 독특한 향미를 풍기는 품종도 있었다. 사실 사전 테스트할 때 멥쌀 노인도는 찰기가 덜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날은 전반적으로 너무 밥이 잘 됐다(?). 차이를 느껴보시라고 추가한 품종인데 잘 지어진 밥에 약간의 아쉬움이…
모든 섹션 평가가 끝난 후, 개인마다 가장 선호하는 품종과 이유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일 참여해 주신 분들은 청년 농부, 양조장 대표, 요식업자, 마케터, 술 애호가, 식품 전공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재료에 대한 평가와 활용 방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대체로 북흑조, 검은깨쌀벼, 몽근차나락, 귀도, 홀애비밤콩, 베틸콩 등의 선호도가 높았고 그중엔 우리 팀이 생각했던 품종과 생각한 방향이 유사했던 의견도 있었다. 자세한 결과물은 추후에 공유를!
마지막 순서로는 박사님께서 금일 테스트한 각 품종별 특성을 공유해주시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몇 분으로 축약한다는 게 어려운 내용이지만 품종마다 궁금해할 만한 주요 특징과 선호/비선호 요인 등 전반적인 내용을 잘 정리해주셨다. 콩마다 붙여진 이름은 어찌 그리 찰떡인지. 이번에 테스트한 품종들은 웬만해선 까먹기 쉽지 않을 듯하다. 박사님께서는 긴 시간 연구를 하다 보니 이제는 쌀이나 콩만 봐도 이름이 뭔지 아시고, 계속해서 하나하나 애정이 가신다고. 한 분야에 애정을 갖고 집중하시는 분을 보면 가끔 그 마음이 전달될 때가 있는데 그 순간 그랬고, 마치고 박사님과 따로 나눈 자리에서도 그게 온전히 느껴졌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소수 품종을 좀 더 깊게 다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의 과제가 남았다. 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의견을 꼼꼼히 정리해 우리 공간에서는 초여름을 목표로 음식과 술로 탄생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꿀꺽하우스 SNS에서!)
변화무쌍한 양조장 라이프지만, 가끔은 반복되는 일과에 쌀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작은 변화는 우리에게도 미세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쌀을 주원료로 해서? 계약 재배를 시작하게 돼서? 밥핑을 해서? 어디서부터 출발한 건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우리 술과 원재료를 대하는 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 술과 토종 농산물". 어쩌면 당연한 연결고리일지도 모르지만 작은 양조장에서 비용, 시간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품종을 테스트해 보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건 쉽지 않다. 이 또한 우리가 앞으로 할 수많은 도전 중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4화에서 말했듯 이런 활동들을 켜켜이 쌓아가는 우리의 목표는 그것에 있다. 다 함께 누리고, 즐기며, 서로 상생하는 것. 꿀꺽하고 삼키는 것들에 단순히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부-양조장 각자가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자 했는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 많은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알고 소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 서로 기대어 살 수 있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밥핑을 시작으로 올해는 우리가 빚는 술과 또 다양한 활동들에 이런 생각들이 많이 얹어질 것이다.
*참고로 요즘은 국내에서 토종 농산물을 활용해 술뿐 아니라 다양한 2차 가공품으로 품종별 활용 방법이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가깝게는 사라진 국내 토종벼 중 450여 품종을 복원해 온 우보 농장과 토종벼품종연구회 주관으로 9회 전국토종벼농부대회를 개최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해도 좋을 듯하다.
사진 촬영 - geeeeugkku & drink_villain
지원 - 국립농업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