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실습생의 고백
"상담하는 건 어때?"
나: [해맑게]내가 상담을 엄청 못한다는 것만 빼면 다 괜찮아!
" 아..[주저한다] 상담을 못해?"
나: 응. 처음에는 못한다는 게 죽고싶었는데, 못하는게 당연한 거니까 뭐 어쩔수 없지.
"왜 못하는데?"
나: 그러게.. 좀 진짜 재수없게 들릴 수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뭔가를 못해본적이 없는 사람이거든? 내가 하고 싶어하고, 흥미가 있는 일이면 그냥 남들보다 자연스럽게 열심히 했고, 결과도 대부분 좋았던 거 같아. 근데 상담은 내가 열심히 공부한다고 더 잘하게 되는게 아니더라고. 책상에 얼마나 앉아있던지 그 날 내가 그 내담자와 상담을 잘 하는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거지. 내담자와의 한 회기 한 회기가 너무나 새롭고 예측이 안돼. 첫날에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 주동안 그 관계를 어떻게 탐색하면 좋을지 고민해도, 다음주에 와서는 갑자기 진로 얘기가 나오는 거지. 그리고 사실 진로가 진짜 고민이였을 수도 있지. 가족 관계는 그냥 연막인거야. 그럼 또 그날 나는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거지. 첫 번째 내담자와의 상담을 잘 끝냈다고 해서 두 번째 내담자와 상담을 더 잘할 수 있는 건 아냐. 두 번째 내담자는 아주 새롭고 다른 사람이니까.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는 거랑 같은거지.
"그래도 다음 내담자할 때 좀 더 편하지 않아?"
나: 언니는 변호사니까.. 법조계의 예를 들어볼게. 첫 번째 의뢰인이 가져온 건 임대차 문제였어. 그래서 그 의뢰하는 내내 임대차법을 공부해서 수임을 잘 마무리했다고 쳐, 근데 두 번째 의뢰인은 기업 인수합병 사건을 의뢰한거야. 임대차를 잘 공부했다고 인수합병에 전문가가 되진 않잖아. [급발진] 아니 염병 보통 안그러잖아. 민법 하는 변호사는 민법만 하고, 기업법 하는 변호사는 보통 기업법만 맡아서 하잖아. 형사소송하는 변호사는 그걸 전문으로 하고. 근데 나는 초심자에 전문 분야도 없으니까 그냥 중구난방으로 오는거야. 예측이 안돼. 일단 내담자를 만나기 전에는 뭘 공부해야 할지도,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거야. 매 순간 순간이 예측불가능한거지. 이런 상황에서 잘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
"그럼 어떻게 해? 계속 못하는 거야?"
나: 그냥 잘해질 때까지 계속 구르는 거지 뭐. 주변 전문가들한테 물어보니까 한 10년 지나면 좀 버틸만 하다고 하더라고. 무능감을 견디는 법을 배우거나, 그래도 내가 하는 짓이 뭔지 알고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나.
"그래도 상담하는 게 괜찮은거야?"
나: 아까도 말했지만 상담을 못한다는 것 빼고는 다 괜찮아. 상담하는 행위 자체는 즐겁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끼는 것도,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정말 재밌어. 나의 꿈과 환상과 무의식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행복해야 하는게 직업적인 의무라는 사실도 좋아. 의무적으로 행복해야 하는 직업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 또 나의 인격이 성숙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좋아. 물론 내 인격의 좋고 나쁨이 상담의 질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제길스럽기도 하지. 인격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잖아. 매일매일 보이지도 않는 인격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지 깽깽이 같지. 게다가 나의 전문성과 내 인격에 대한 평가가 구분되지 못한다는게 두려워. 변호사가 승률이 낮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 의심하진 않잖아. 근데 상담사가 상담을 잘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성 전체에 대해서 평가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 근데 염병 어쩌겠어. 내가 선택한 길인데. 내 주변에서 아무도 상담자 하라고 떠민 사람은 없거든. 내가 꾸역꾸역 여기 들어와가지고 이러고 있는건데 어쩌겠냐고. 그냥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