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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상담사 Oct 31. 2021

상담사 대학원생의 집단상담 1편

상담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나의 값비싼 취미는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것인데, 상담자로가 아니라 집단원으로 참여한다. 개인 상담과 마찬가지로 집단상담 또한 다른 집단원의 사생활에 대한 비밀보장이 원칙이지만.. 뭐 난 내 얘기만 할 거니까 상관은 없다. 


집단상담: 한 명 혹은 두 명의 상담자(리더와 코리더)가 이끌고 10~15명의 내담자가 참여하는 형태의 상담. 2박 3일, 30시간의 형태로 진행되는 마라톤 집단부터 매주 2시간씩 모이는 형태도 있다. 수련요건 때문에 최소 15시간 이상으로 열리곤 한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상담자와 만나는 시간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집단이 가지는 효과(대인 관계 역동 등에 탁월)가 있다. 가격은 시간당 9천원~1만 5천원정도로 다양하다. 


배경: 이 집단은 반말로 진행하는 집단이다. 나는 그간 숱하게 집단을 가서 여러 번 내 어렸을 때 상처에 대해서 말한 이력이 있다. 이번 집단에서 또다시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서 얘기하게 되었다. 


# Scene 1 


도비: 해봤자 뭐해. 말해봤자 뭐하냐고. 해봐야 안다고? 그런 생각도 하는데.. 말해봤자 뻔한 말 하겠지. '말해줘서 고맙다'라던가 '힘들었겠다'라던가. 그렇게 또 위로 받겠지 뭐. 낯선 집단에 가서 또 같은 말하고 이런게 싫어. 


리더: 위로 받으면 느낌이 어떤데? 


도비: 위로 받으면 좋지. 그땐 좋고 따뜻하고. 근데 또 다른 데 가서 또 말하고 위로받고 이게 뭐야. 


리더: 그렇게 반복된다는 건 도비가 어떻다는 건데? 


도비: (울음) 아직도 슬프고, 아프고, 취약하고, 상처입었다는 거지. 그 오랜 작업에도 난 아직도 너무 아파. 너무 힘들어. 그리고 이런 작업을 해야한다는게 너무 억울해. 왜 내가 이렇게 작업해야 하는거야?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리더: 내가 다 화가 나네.


나: (울음)이 작업은 끝도 없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억울해. 내 상처에 떠밀려서 선택한거 같아. 내가 만약 건강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어도 이 전공을 택했을까? 나 상담하는거 좋아해. 의미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공부도 재밌어. 그거랑 별개로, 이 진로가 100% 나의 선택이냔 말이야. 진로 뿐만이 아니야. 내 상처가 그동안 나에게 끼친 영향들, 앞으로 끼칠 영향들, 내가 연인을 만들어도, 가정을 만들어도, 아이를 키워도 날 따라다닐 이 상처에 영향을 받는 것도 억울해. 


=> 리더가 이 억울함에 대해 같이 화내주고, 기다려주고 내가 굳이 내 상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게, 내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서 존중해주었다. 침묵 속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 Scene 2


배경: 나는 리더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그간 볼꼴 안볼꼴 다 보였다. 내 큰큰이모 정도의 나이시다. (나의 엄마보다 한 15살 많나 그렇다) 


도비: 나는 너가 날 미워하거나, 좋아하지 않을까봐 고민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 왜 그럴까 아까 점심 먹으면서 생각해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여울 거라고 생각해. 


리더: 너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널 귀엽게 볼거라고? (도비: 응) 그건 무슨 근자감이야? 


도비: 몰라. 이 생각이 어디서 온 건지는 모르겠어.


리더: 맞아. 아직까진 귀여워. 


도비: 다행이네.


=> 남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어 보이는 대화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큰 도약인 장면이다. 내 안에서 생각하고 있던 걸 용기있게 말한거다. "너 나 좋아하지? 그거 나 알아." 이런 말인거다. 이런 말 뱉어보신 적 있으신가 다들? 나에겐 정말로 사랑받고 싶은 대상한테는 정말 해보기 어려운 말이다. 아니라고 하면 그 타격 어쩔꺼야ㅋㅋ


 근거가 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있다. 리더가 날 보는 따뜻한 눈빛, 내 말에 웃고, 챙겨주고, 내 말을 기억해주고 중요하게 여겨주는 순간들로 쌓아올린 너무나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당신의 이런 애정이 죽고 싶은 순간에 날 살게 했다고, 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의 원천이고, 내 가난한 마음 안에 사랑이 깃들게 해주는 햇살같은 거라고, 감히 내가 당신의 사랑을 느낀다고, 깊이 감사한다고 말할 수 없어 대신 내뱉은거다. 나 귀엽냐고. 


'나 알고 있어. 리더가 날 아낀다는 걸 알고 있어. 고마워. 날 살게 해줘서. 내가 나대로 있는게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내 모든 말을 소중하게 여겨줘서. 고마워 정말.' 이렇게 내가 죽기 전엔 한 번 날 잡고 얘기해야겠다. 나보다 먼저 죽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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