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7

7. 담임교사 K 씨의 일일

by 꿈몽글

7. 담임교사 K 씨의 일일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은 구두를 신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꺼내 들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간 아들은,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어머니는 엘리베이터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내었다.


"일찍 들어와!"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소리를 내며 열리고, 또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아들의 '네'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스물일곱 살짜리 아들은 젊은 어머니에게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우선 아침에 한 번 출근을 하고 나면, 아들은 밤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자정? 그리 늦지는 않았다.


이제 아들은 돌아올 거다.


초과근무 수당도 받지 않으며 일하는 아들이 어서 돌아와 잠이나 자길 바라며, 또 어느 틈엔가 꼬빡 잠이 든다.


그녀가 두 번째 잠을 깨는 것은 아주 늦은 시각이다.


아들의 방에는 그저 불이 켜 있다.


아들은 잘 때면 반드시 불을 끈다.


그러나 혹은 어느 틈엔가 아들은 돌아와 자리에 누워 지도서라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아들에게는 그런 버릇이 있다.


어머니는 소리가 안 나게 조심스레 가만히 안을 엿듣는다.


나이 찬 아들 방의 외장하드 돌아가는 소리와 화면 속 가득한 한글 문서에 어머니의 마음은 애달팠다.


어머니는 초저녁에 깔아놓은 채 그대로 있는 아들의 이부자리와 베개를 바로 고쳐놓고, 그리고 그 옆에 가 앉아본다.


스물일곱 해를 길렀어도 언제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자식이었다.


"참, 이 애는 왜 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람."


언제나 업무와 관련하여 말을 꺼내면, 아들은 말하였다.


"수업 준비 하나 없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 냅니까."


"하지만…. 정도가 있는 것 아니냐. 어디 월급쟁이가 초과근무 수당도 못 받고 일을 하니. 집에는 업무를 들고 오지 않아야지."


"학교에서 수업 준비로 일해도 초과근무 수당은 없다니까요."


어머니는 어디 초과근무 수당 얻을 생각도 못하고, 밤낮으로 수업 준비나 하고 업무 처리나 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참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그래두 연차가 쌓이면 맘이 달라지겠지.'


'업무 처리 능력이 늘면, 자연히 자기 시간도 좀 가지려나.'


작년 여름에 아들은 '생활부장'을 맡은 일이 있다.


그 업무에 아들은 찌들다 못해 병들었다.


남들은 교사들은 그 좋은 방학에 쉬지 않냐고 떠들지만, 그녀의 아들은 방학 때에도 사흘을 빼곤 꼬박 학교에 갔다.


이제 그 업무는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


그리고 어머니는 어느 틈엔가 아들이 좀 쉬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아들은 그러나 돌아와 '어서 주무세요.' 인사를 드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그런 때 옆에서 무슨 말이든 하면, 아들은 언제나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 어머니는 가까스로


"늦었으니 어서 자거라. 그것이랑 내일 대충 하고…."


한마디를 하고서 아들의 방을 나온다.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라도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하는 아들은, 그대로 소리 없이 밥을 떠먹고는 나가버렸다.


하루에 다섯 차시, 많게는 여섯 차시의 수업을 잘 준비한 경우에,


아들은 어머니를 보고 "무엇 드시고 싶으신 건 없어요?" 묻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들이,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간신히 시간을 짜내는지 마음이 아픈 상태였다.


"어서 내 생각 말고, 친구들이랑 놀든가 하며 좀 쉬어라."



그러면 아들은 으레 제 고집을 세웠다.


아들의 고집 센 것을 물론 어머니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아들이 고집을 세우면 세울수록 어머니는 기뻐하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보수를 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식이 자기에게 대한 사랑을 보여줄 때, 그것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




승우는 집을 나와 학교로 향하여 걸어가며, 어머니에게 단 한 마디 "네"하고 대답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하기야 엘리베이터를 여닫으며 승우는 "네" 소리를 목구멍까지 내어보았으나, 엘리베이터와 집까지의 거리는 제법 큰 소리를 요구했고, 그리고 공교롭게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는 때마침 세 명의 여학생이 웃고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 안에서 승우는 갑자기 격렬한 두통을 느낀다.


비록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은 왕성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신경쇠약에 틀림없었다.


승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하여본다.


1교시 국어.


2교시 실과.


3교시 수학.


4교시 체육.


5교시 영어.


6교시 미술.



그의 교실에서 연달아 이어지는 수업 중에 교과전담 수업은 없었다.


승우는 갑자기 교탁에 몸을 기댄다.


그 순간 노트북이 윙-하며 돌아간다.


버튼이 여러 개가 눌린 노트북이 모멸 가득한 소리로 승우를 쳐다본다.


노트북은 승우가 켜놓은 한글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줌 프로그램, 젠 메신저, 업무포털 등 여러 프로그램의 중첩으로 요란스레 경고를 울렸음이 틀림없다.


업무가 마감 직전에 박두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업무 매뉴얼을 달달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승우는 자신의 지도 능력에 스스로 의혹을 갖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늘 잘해왔지만, 학기가 지나가며 업무에 찌들고 지쳐 마음이 불편해왔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수업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수업을 하는 교사라기보다는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 공무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4주일 간 치료를 요하는 중이염을 앓고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승우는, 그의 마음속 외침에 무한한 굴욕을 느끼며, 그래도 매일 신경질 나게 수업안을 작성해 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승우는 수업 능력은 타고난 것 같았다.


어느 외부 강사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사로서 잘 다독이며 살아온 승우였고,


수업 준비를 딱히 하지 않아도 언제든 성취기준에 의거한 일정 이상 수준의 수업을 능히 할 수 있다고 혼자 생각하였다.


자기의 정신적 압박에는 만성적인 업무 피로도가 영향을 주는 것이 틀림없다고 승우는 작정하고 있었다.


아침 8시부터 자신이 맡은 업무 문서를 처리하고,


8시 30분부터 아이들을 맞이하며 출결 현황 파악 및 학생 관련 자료를 정리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진행하며,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교직원 회의에 참여했다.


4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당장 다음 날 수업 자료를 급히 제작하였고,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갑자기 걸려온 학부모의 전화에 응대하였다.


오늘도 초과근무 신청 없이 학교에 남아 9시 30분까지 업무 분임에 따른 자신의 업무 문서를 작성하였다.


중간에 "왜 초과근무 신청도 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계시냐."라고 당직 담당자께 한소리를 들은 건 덤이다.




승우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복도에 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복도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승우는 복도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事務)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순전하게 가졌던 교육적 양심이 공교롭게도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은 까닭이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 지난다.


승우는 그 방해자와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위태롭게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승우는 이렇게 대낮에도 조금의 자신도 가질 수 없는 자신의 교권을 저주한다.


급식 메뉴 중 하나를 먹어보라고 권하기만 했을 뿐인데 정서적 학대라고 소리치는 자,


사회과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교과서 순서대로 헌법을 가르쳤다고 대충 가르치는 거 아니냐고 민원을 넣은 자,


학교폭력 업무를 매뉴얼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처리해도 죽여버리겠다고 살해협박을 하는 자,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내용이 아니어서 아이들을 다독이며 화해시키려 하자, 학교폭력 은폐를 시도하는 거냐며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는 자,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자,


아무리 애를 쓰고 아이들을 사랑해도 학부모, 학생 그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한 채 그것이 당연히 교사가 해야 할 일로 남고 도리어 동료 교사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부당한 현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학교로 무한하게 쏟아지는 범교과교육,


이미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수 시간 실시하고 있어도,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에서 교육을 안 한 탓이라고 지목하는 각종 법률안들,


미국에서 싸워도, 계곡에서 다퉈도, 방과후활동 시간에 싸움이 있어도, 모든 것이 '학교폭력'으로 정의되어 마치 학교가 문제인 것처럼 묘사되는 현실들.


그의 업무 매뉴얼과 지도서, 교육학 이론은 그의 시선에서 발생한 무수히 많은 문제를 제거하는 재주는 없었다.


승우가 꿈꾸던 행복한 수업안은 어쩌면 우울한 교탁 서랍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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