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학] 벙어리 성룡이
교실 문학 단편선
벙어리 성룡이(원작: 벙어리 삼룡이, 작가 나도향)
내가 서른 살이 될락 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일이 년 전 일이다.
지금은 아동학대 조사를 시군구청의 아동학대 공무원과 경찰이 하지만,
그때는 아보전이라고 이름 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하였다.
즉 검색해서 보면은 어린이를 위한다느니, 세계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를 구한다느니,
하는 그런 단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그곳에 후원을 할 수 없게 된 후원자들이 생기기도 했으나,
그때에는 자기네 딴에 그 푼돈이나 되는 월급을 쪼개서 후원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월급이라고는 20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은 대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거나,
교사가 되었을 때부터 일대일 아동 후원을 해서 자신의 보람을 찾아나갔다.
여기에 그중 교장직을 갖고 그중 여유있는 생활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다들 잊어버렸으나 학교 교직원들이 부르기를 오 교장(吳 校長)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두툼하고 잘생겼으며,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서 길게 목 늘여 우는 매미 소리 같이 저르렁저르렁 하였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의 남자로 아침이면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앞뒤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학교 일을 살펴보았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학교 교직원들이 이상하여 교장실로 가보면 그는 반드시 몸이 불편하여 누웠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은 일 년 삼백육십오 일에 한 번 있기 어려운 일이요, 이태나 삼 년에 한 번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인사 이동을 온 지는 얼마 되지 아니하나 언제든지 '에헴'거리고 다니므로 학교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학교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다면평가 점수를 측근에게 넉넉히 나눠주며,
행사 때에 쓰는 업무추진비도 넉넉히 장만한 후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이후에야 카드를 긁게 하므로,
그 학교에서는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을 받는 교직원인 동시에 세력 있는 교장이다.
언제나 입에서는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와 같은 말이 나오니 학부모에겐 호감이었다고 한다.
그 학교에는 성룡이라는 남교사 한 명이 있으니, 나이가 많지 않아 경력도 적고 호봉도 낮아 그 월급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거기다가 체육 부장 업무를 맡았으나 부장 점수는 없는 상태인지라,
교장의 명령으로 맡기는 맡았으나 언제나 업무에 허덕이며 만족스럽지는 못한 상태였다.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안전시설 관리와 강당 시설 정비 등 교사가 해야할 일이 맞는지 모를 업무까지도 다 맡고 있어 숨차 보이고 업무 추진 속도가 더디어 보인다.
학교 사람들이 부르기를 '김성룡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김 쌤', '성룡 쌤'이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체육 담당', '어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성룡이는 그 표현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도 이 학교 교장이 이리로 인사 이동을 할 때에 같이 발령을 받았으니,
학교가 낯설고 서툴 수밖에 없다.
눈치로만 지내는 신규이지마는,
아이들 앞에서 따뜻한 면이 분명히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 큰 실수는 한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작 체육 업무 담당은 아니나 배드민턴 부와 투포환 부의 명목상 책임자인 정 부장의 명령에 따라
강당을 쓸고 운동장을 정비하며 7시에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여름이면 전국체전 점수에 눈이 돌아간 정 부장을 따라가 아이들 지도에 참여하고,
가을이면 스포츠클럽 대회에 눈이 돌아간 정 부장의 잔심부름이며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이 학교 교장은 성룡이를 위해 주며 아껴준다.
혹시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힘든 일이 없어요?" 인사하고,
먹고 싶어 하는 듯한 것은 업무추진비로 가끔은 사주고,
초과근무를 할 때에는 초과근무 결재를 특별히 해준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아까도 말했지만, 교장이 총애하는 정 부장이 있다.
나이는 마흔일곱 살이나, 방탕한 삶에 걸맞게 예순 살에 근접해보였고,
독고다이로 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젊은 여자들 앞에서 추파를 던지며 추한 꼴을 많이 한다.
학교 안팍 사람들은 그를,
"미꾸라지, 교사들 욕 다 먹일 인간, 저런 사람은 교사를 안 해야 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교감은 정 부장이 잘못할 때마다 교장을 보고
"정 부장을 조금 나무라주시죠.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 계십니까."
하고 자기가 대신 훈계하려고 나서면,
"아뇨, 아직 혈기가 넘치고 교육 열정이 넘쳐서 그렇지. 정 부장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니 선은 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교감은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교육 열정이 넘치다뇨. 자기 점수에 관련된 것에만 혈안 아닙니까. 지금 신규인 김성룡 선생님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안 느껴지십니까. 자기 승진을 위한 것이지,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 들이대며,
"학교 분위기는 정 부장이 지금 망치고 있습니다."
라고 충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싸움이 시작만 하려 하면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감에 대한 평가권'을 운운한다.
그러면 교감은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정 부장은 성룡이를 교사로 존중하지도 않는다.
말 못하는 신규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리를 치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찬다.
그러면 그 신규는 어린 사람이 뭐라고 반박할 수 있겠냐며 힘없이 희미한 미소를 보내며 항복의 의사를 전할 뿐이다.
어떤 때는 가만 있는 성룡이를 픽업해서 카풀을 해주겠다며, 자기 집까지 걸어서 25분 거리를 걸어오라고 한 적이 있다.
성룡이 집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50분 걸리는 거리를,
25분 동안 걸어서 정 부장의 집 앞까지 간 다음, 다시 25분을 걸려서 차를 타고 가니
성룡이에겐 기뻐할 구석이 딱히 있진 않았다.
그래도 꼴에 카풀이라고 성룡이는 이틀 건너 한 번씩 간식을 사고, 한 달에 한 번 주유비도 건네고 그랬단다.
정 부장은 그럴 때면 "아이들을 위해 하는 거니까, 너도 많이 배울 거다. 성장의 기회야."라고 말하며, 성룡이 준비한 간식과 주유비를 서둘러 챙겼다.
이러할 때마다 성룡이의 가슴에는 답답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학교를 원망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교대에 와서 교사가 되는 선택을 했으며,
교사에 대한 권위와 존중을 안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세력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 모양으로, 자기가 헌신해야 할 곳은 교육계이고 자기가 믿을 것도 교육을 통해 아이들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인 줄로만 알았다.
학교 교장과 정 부장이 당근과 채찍을 교차로 주는 이 순간에도 그 아픈 것이 으레 자기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몫이라고만 알았다.
그는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 생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셈이었다.
그가 희망내신을 쓰려하거나 또는 의원면직을 쓰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든지 교장과 정 부장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때, 그는 자기의 주먹과 자기의 힘을 생각하여 보았다.
정 부장이 심부름을 시킬 때 그는 정 부장 하나쯤과는 맞서 싸울 힘이 있다고는 생각했다.
어떤 때는 아픔과 쓰림이 스며들 때, 정 부장을 한 대 쳐야하나 하다가는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나는 교사이다. 저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내 수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그는 동료이다.' 하고 꾹 참았다.
그러고는 전국체전에서 성룡이가 지도한 아이들만 입상하였을 때에도,
스포츠클럽 대회에서 성룡이가 지도한 아이들만 1등을 했을 때에도,
정 부장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받은 적 없이 모든 승진 점수를 정 부장이 챙겼지만,
'아이들에겐 이로써 좋은 일이다.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하고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언제든지 일손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 부장은 성룡이를 찾았다.
성룡이는 힘들어 하면서도 기어드는 충견 모양으로 아이들을 위하여 훈련도 지도하고, 웃으며 응원했다.
성룡이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물론 아동학대를 접할 일이 없었다.
가끔 TV에서 심각한 학대의 현장을 볼 때에 분하고 골나는 마음을 느끼거나,
반대로 교사는 반성문만 쓰게 해도 아동학대로 간주되는 세태에 대해 분노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교사로서 소명의식을 가진 성룡이기에 정 부장의 행위에 화가 날 때가 있었다.
전국체전 1등이라는 목표를 위해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고 때리기까지 했다.
부모는 그것을 방관했다.
때로는 같이 회초리나 꿀밤으로 혼내기도 했다.
마치 언제 폭발이 될는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 모양으로 그의 가슴속에는 충분한 분노를 감추어 놓았으나,
그것이 아직 폭발될 시기가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해 가을이다.
정 부장이 축구 클럽을 만들었다.
사실 성룡이가 올해 초부터 여자 아이들이 씩씩하게 축구를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자 아이들 vs 남자 아이들'의 경기를 꾸준히 개최했다.
그 여파로 여자 아이들은 축구를 접하게 되었고, 성룡이가 도와주는 속에서 공을 만져보고 패스를 하고 슛을 했다.
공에 맞아도 바로 달래주지 않고,
"남자 아이들도 공에 맞아도 울지 않는다. 너도 축구 플레이어로서 울지 않아야 한다." 라며
다독이는 분위기 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이제 축구를 하면서도 울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전교생이 축구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정 부장은 잽싸게 축구 스포츠 클럽을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와 실력이면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회에 나갈 때 비용도 오 교장에게 부탁하여 적절히 마련했고, 유니폼까지 제작했다.
대회에 나갈 때에도 당연히 정 부장은 성룡이에게 잡무를 시켰다.
업무의 부당성에 대해 조그맣게 항의를 하자,
"이 흉칙한 신규 놈 같으니. 내 승진 점수를 건드리려 해?"
하고 업무 파일을 뺏어서 갈가리 찢어서 바닥에 던졌다.
"그러고 이놈아! 인제는 선배도 몰라보고 막친다! 이런 것은 혼나야 해!"
하고 여기저기에 뒷담을 갈겨서 그 학교에서 평판이 안 좋아지게 했다.
신규 성룡이는 침묵할 뿐이었다.
그 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틈만 있으면 휴직을 내고 싶었다.
교장이 전보다 많이 간식을 내어주고, 결재도 쉽게 통과시켜주었으나 그것이 싫었다.
교감이 하루는 강당에서 일장 연설을 했다.
아이들에게 지도를 하다가 "에휴, 왜 이럴까"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분노한 부모가 아동학대 신고를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바로 이 사안이 아동학대사안임이 틀림없다고 단정지었다.
이것이 바로 아동학대로 판단될 수 있다면
정 부장의 행위는 왜 또 아동학대가 아닌 것일까.
그것을 방관하고 같이 때리며 훈계하던 학부모는 또 무엇인가.
그렇게 성룡이는 본인이 벙어리가 된 듯한 기분에 빠졌다.
하나 더 덧붙이면 성룡이는 그 기관에 5년 동안 후원을 하고 있던 후원자였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인 것을 알았다.
아이들을 위해 보탬이 되고 있다고 믿었으나 아동학대가 아닌 사안도 언제나 아동학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그 후원기관,
"아이들을 위해서", "신규의 성장의 기회"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승진 점수만을 위했던 부장.
아이를 위한다고 표방하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의 향연이었다.
정 부장이 쓰라고 부탁을 해도 눈 감고 쓰지 않은 탄원서,
오 교장이 쓰라고 권유를 해도 쓰지 않았던 초과근무,
5년이나 지속했지만 이제는 끊어버린 아동후원.
그의 울분은 그렇게 사라졌을는지.
침묵의 희미한 웃음같지 않은 웃음이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