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실] 1화

오늘의 교실_L의 교실

by 꿈몽글

오늘의 교실 1화



#. 오늘의 첫 번째 교실

“오늘부터요?”

교사 L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약간의 웃음기는 남아있었지만,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하긴 그럴 만도. 교실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해도, 그게 바로 다음 날일 줄은 몰랐겠지.

‘있는 그대로 수업을 보여주겠다면, 이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않겠나.’

기준은 상대의 흔들리는 감정을 느끼고도, 괜한 연민의 감정이 뒤섞이지 않으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L에게 말을 건넸다.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우리 T 님이 설계한 프로그램 취지 자체가 ‘대한민국 학교의 오늘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선생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날이든 좋은 수업을 보여주시리란 믿음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하하하.”

“하…. 그래도 이게 바로 진행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들어오시죠.”

“헤헤, 감사해요. 그럼, 지금 바로 촬영 들어갈게요! 다들 준비되셨죠? 3, 2, 1, 스타트!”

유튜버 T의 해맑은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카메라 촬영음이 띵동, 복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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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실]

- ㄱ초등학교 6학년 1반

- 남학생 13명, 여학생 9명

- 담임 교사 L(30대 중반). 교직 경력 10년 차. 남성.

- 학급 목표: 함께 성장하는 우리 반, 오늘도 사랑하는 우리들


‘호오, 이게 6학년을 맡은 남자 담임 교사의 교실인 건가. 세상 칙칙하구만.’

확실히 날것의 교실이었다. 쓰레기통엔 아이들이 미술 작품을 만들다 남은 종이 조각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창틀 위에는 회색 솜털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먼지 뭉치가 심심찮게 보였다. 그뿐이랴. 책상과 의자는 오와 열을 맞추지 못한 채, 제각각 무질서한 난립의 상태였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라곤 전혀 안 되어 있는 평범한 교실이랄까.

교실의 전경만큼이나 아이들도 부산한 느낌이었다. 사전에 유튜버 T의 촬영이 예고되었다곤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일 줄은 몰랐었다면 학생들로서도 당황스러움을 한껏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상황적 맥락이 있는 그대로, 오롯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와…. 정말 유튜버 T다.”

“내가 완전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인데. 눈앞에서 볼 줄이야….”

“사진 찍자고 해도 되나?”

“쉿, 쉿. 선생님 허락은 받고 그래야 할 걸.”

슬쩍슬쩍 뒤를 봤다가 앞을 봤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왠지 모를 흥분감과 긴장감이 가득함이 느껴졌다.

‘6학년이라고 해도, 애들은 애들이군,’

자기들 딴에는 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으로 왕 노릇 좀 하는 애들일지라도, 외부인의 시선에서 볼 땐 고작 열두 살 남짓한 귀여운 꼬마들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기준 본인보다도 덩치가 클 정도로 위압감을 주는 아이들도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그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등학생 특유의 앳됨이 묻어나왔다.

“자, 자. 진정하고. 뒤에는 여러분들이 사전에 안내받고 모두가 동의해 줬던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유튜버 T 님, 그리고 교육 평론가로서 여러 글을 쓰신 이기준 작가님이 오셨습니다. 다 같이 인사 먼저 드리고 시작합시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교사 L의 말에 맞춰 아이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고 인사를 했다.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는 기준과 달리, 유튜버 T는 두 손을 흔들며 프로 방송인으로서의 여유로움을 보여줬다.

“꺄, T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어.”

“진짜 이따 바로 사인받으러 가자.”

낯선 사람, 그것도 유명인의 방문은 교실 분위기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요소였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중하죠.”

L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다시 움찔, 곧장 앞을 보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호라…. 기강은 아주 잘 잡아놨구만, 그래.’

기준과 유튜버 T의 기습공격과 같은 방문에도, 차분한 수업 분위기는 잘 유지되는 것 같았다. 1교시는 수학 수업. 분수의 나눗셈 단원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단계의 차시였다. L은 ‘수학의 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아이들이 수학식을 하나의 언어로 이해하게끔 발문(옮긴이: 교사가 수업이나 대화에서 학습자나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 단순한 의문 표현이 아니라 사고를 자극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제시하는 물음을 말함.)하였다.

“자, 1÷4의 답이 이란 건 그냥 외워서는 누구나 알 수 있지. 하지만 우리 반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랬죠? 나누기의 두 번째 의미가 뭐다? 좋아, 다인이.”

“나누어지는 수를 나누는 수로 똑같이 나눈 것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 그 의미에서 이제 1÷4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우리말로 설명할 사람은? 재이.”

“1을 똑같이 네 조각으로 나눈 것 중 하나만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분수로 말하면 4분의 1이 됩니다.”

그는 발표를 마친 재이와 다인이를 향해 씩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발표를 마친 아이들의 표정도 만족스러운 듯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기세를 몰아 L이 발문을 이어갔다.

“좋습니다. 이걸 이제 4÷1을 구하는 과정과 비교해 볼까요? 이때 나눗셈의 의미는 다른 의미, 첫 번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죠. 설명해 볼 사람? 그렇지, 용기 있게 손을 드는 거, 아주 좋았다. 재민이가 가보자.”

“네, 선생님. 이때의 나누기는 나누어지는 수를 나누는 수만큼 최대한 몇 번 뺄 수 있냐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4-1-1-1-1=0이므로, 4에서 1을 네 번 뺄 수 있습니다. 즉 이때의 답은 4입니다.”

“완벽해! 우리 반 스스로를 향해 칭찬 주문 가자. 칭찬 눈빛 발사!”

“오, 잘하는데.”

아이들은 칭찬 눈빛 구호에 맞추어 발표자를 향해 검지로 가리키며, 팔을 흐물거리며 춤 동작 비슷한, 마치 웨이브를 추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초등학교에서 의례 쓰곤 하는 칭찬 샤워가 이런 거구나, 처음 보는 광경에 왠지 모를 간질거림이 가슴에 일어났다. 제삼자로서 그 모습들을 보는 게 뭔가 민망하면서도,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교육 이론서에서 접했을 때는 일제히 같은 반 친구를 칭찬하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초등학생들에게도 부적합하지 않나, 아이들이 유치하게 여기지 않으려나 싶었었다. 유치원에서나 할 법한 장치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L의 교실에서 이뤄지는 칭찬 눈빛 구호는 확실히 수업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었다. 동시에 아이들에겐 약간의 장난을 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쯤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보였다. 발표 기회에 손을 들지 않던 아이들도 이 동작 하나만큼은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유 모를 웃음들도 터져 나왔다.

“푸하하.”

“아, 적당히 해. 크크.”

수학 수업은 1단원 분수의 나눗셈 내용을 정리한 후, 수학 익힘책의 문제를 풀고 끝났다.

‘주입식 수업 같으면서도, 뭐랄까…. 약간은 다르군. 그 차이가 뭐지. 단순히 뻔한 주입식 수업으로 평가하기엔, 묘하게 뭔가가 다르단 말이지.’

교사가 한 시간 내내 설명을 이어가는, 전형적인 강의식 수업 방법을 활용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초반부를 들으면서는 이 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되겠다 싶었다. 여전히 교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싶어서 핵심적인 비판점으로 짚고자 했는데, 막상 그 수업을 쭉 듣고 나니 그렇게 평가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나태한 교사의 수업 방식 그대로인데…. 왜 강의식 수업인데 이걸 주입식 수업이라고 평가할 마음이 안 생기지. 그 묘한 차이가 뭘까, 수업 막바지에 이르러 한참을 고민하는 중에 유튜버 T가 속닥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수업을 잘하시네요. 아이들도 딴짓 하나 안하고요. 단순히 우리가 와서 그걸 의식해서 그런다기보다는, 뭔가 전체적으로 쉽게 이해되게 설명해 주는 느낌이죠?”

그 말에 부정할 수 없던 기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T도 그렇게 느낄 정도면 이건 착각이 아니다. 아무리 공교육 무용론자라고 할지라도, 사실에 없는 것을 끄집어내어 한 명의 교사와 그의 수업을 몰지각하게 비판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교실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사실에 기반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의미 있는 비판이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거니까. 이건 교육 전문가이자 수업 비평가로서 가진 자존심이기도 했다.

L의 수업은 누가 봐도 철저한 강의식 수업인데, 왜 주입식 수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수업이 끝나면 수업자의 의도를 확실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다림 끝에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자, 오늘 배운 내용을 확실히 기억하도록 하고. 쉬는 시간 갖도록 합시다. 수업 구호 외치죠.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 와!”

아이들은 L의 신호에 맞춰 수업을 끝내는 구호를 큼지막하게 외쳤다. 양팔을 들고 만세를 외치는 듯한 동작에서는 수업이 끝난 이후의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곧장 교탁 앞으로 다가가 L에게 질문을 던졌다.

“와! 선생님, 손님들한테 사인 부탁드리거나 말 걸어도 돼요?”

“유튜버 T 님한테 꼭 사인받고 싶어요, 선생님.”

그러나 아이들의 간절한 표정에도 L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안 돼. 일단 손님들 모시고 교재연구실에서 말씀 나누고 올게. 얌전히 잘 놀고 있어라.”

“아아, 선생님.”

“너무해, 정말.”

아이들은 칭얼거림과 아우성 가득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L은 저벅저벅 교실 뒤편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던 카메라 감독과 T, 그리고 기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어서 교실을 탈출하시죠. 이쪽으로.”



기준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갑작스러운 교실 방문 때문에 발생한 가혹한 대가(代價)는 L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업자가 어떤 의도로 수업을 하고, 어떤 교육과정을 운영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참관을 한 것이기에, 수업을 전부 다 확실히 이해하고 비평하기엔 정보가 부족했다. 그 부족함에서 나오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기준은 교재연구실의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방금 한 수업은 어떤 의도로 발문을 구성하신 겁니까. 그리고 어떤 교육적 모델을 염두에 두신 건지요. 특히 나눗셈의 의미를 그렇게 설명하는 방식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던데, 선생님이 직접 고안하신 모델인 건지, 아니면 앞선 교육과정에 나오는 개념을 복습하며 단원을 교육하신 건지도요. 그리고, 아…. 일단 여기까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 너무 쏘아붙인 것이었으려나. 수업을 분석할 생각에 나도 모르게 혼자 너무 흥분한 것인가. 교사 L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서야, 기준은 민망함을 느끼며 가까스로 질문을 멈출 수 있었다. L은 양팔을 들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대답을 시작했다.

“네 네, 하나씩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차피 저희 수업 다 끝나고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한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잖아요. 그렇죠, T님?”

T는 언제나 그렇듯 눈을 찡긋하며 웃음을 띄우고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요. 혹시 몰라서 오늘 학교 수업 후 공식 일정이 없는 날로 골라놨는걸요. 이야기가 길어질 내용은 그때 자세히 답해주셔도 됩니다.”

T의 대답을 듣고 L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설명을 이어갔다.

“나눗셈의 의미는 정식 교육과정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수학에서의 식이 하나의 문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드러내진 않고 있죠. 저는 그걸 이제 직접적으로 학생들에게 제시해서, 그렇게 이해하는 방식을 하나 덧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연수 나누기 분수의 내용을 단순히 역수로 나눠서 곱해준다는, 전형적인 암기식 수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이미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진행한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죠. 또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이해에 더딤이 있는 친구들은 본인의 위축감을 ‘쉽고 빠르게 대충’ 이해하는 방식이 편해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요.”

아하, 그런 것인가. 교육과정에 있는 걸 가르치는 것이야 똑같은 출발점이지만, 표현을 달리하여 학생들이 이해하게 돕는다라…. 강의식 수업임에도 주입식 수업처럼 느껴지지 않던 이유를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알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기준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교육 모델까지 말하면 너무 복합적이겠습니다만…. 일단 일상의 수업에서 매 차시 깊은 차원의 이론을 단면적으로 내세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항상 다양한 이론이 합쳐져서 하나의 유기적인 수업이 구성되는 느낌이거든요. 다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제가 가진 교실 속 철학을 배경으로 대표적인 교수‧학습 이론을 하나 골라볼 순 있겠어요. 제 수업 운영 방식을 이론적으로 풀어내 본다면, 오수벨(Ausubel)의 유의미 수용학습 이론으로 설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아, 오수벨. 기준은 당연히 그의 이론을 잘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무언가를 발견하는 학습도 아니고,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수용하는 학습도 아니다. 교사가 주도하여 학습 내용을 조직화하여 제시하되, 학습자들이 지식과 정보를 의미 있게 학습하도록 내용을 재구성하는 수업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방금 그가 보여준 수업은 그 이론으로 단숨에 설명되는 내용 구성이었다. 철저히 교육과정에 기반해서 나눗셈의 의미를 설명하되, 3학년 수준에서 배웠을 나눗셈의 근본 원리를 우리말의 문장으로 번역하는 활동으로 치환하여 이해시켰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6학년 과정에서 다루는 분수의 나눗셈을 학생들이 해결하도록 학습 내용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준으로서는 ‘강의식 수업’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기반하여, 비판적으로 평가하려 했던 비평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 강의식 수업이 무조건적인 암기식 수업인 것도 아니고, 기계적 학습인 것도 아니었지…. 교육학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했음에도, 어느 순간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아, 그런 것인가. 강의식 수업이 꼭 악(惡)한 수업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이건가….’


그때였다.

드드륵, 쾅. 문이 거세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선생님. 빨리 와주세요. 시율이랑 지우가 또 싸워요.”

“아, 또? 알았어. 선생님 지금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라.”

아이를 돌려보낸 후 교사 L은 두 손님을 향해 말했다.

“잠깐 한 5분만 있다가 교실에 와주실 수 있죠? 자주 싸우던 아이들이긴 한데…. 이래서 쉬는 시간에도 교실을 비울 수 없다니까요. 다과라도 좀 드려야 하는데, 학교에서 교사용 간식이나 정수기를 사주질 않아서…. 드릴 게 없어 민망하네요. 다음번에 오실 땐 뭐라도 준비해 놓든가 해야겠네요. 아무튼 좀 쉬다가 와주세요.”

묻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L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교사 L이 싸움을 해결하는 사이, 유튜버 T와 기준은 6학년 교재연구실에 앉아 잠시 이것저것을 둘러봤다. 수모형, 자석 보드 판 등 각종 학습 용품과 야구공, 글러브, 티볼용 배팅 티 등 여러 체육 물품도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체육 수업하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 헤헤. 화면엔 꽤 귀엽게 잡힐 것 같은데.”

“그러게요, 오늘 시간표가 어떻게 될까요.”

기준의 질문에 T는 반별 시간표가 적힌 종이를 들고 찬찬히 확인했다.

“어디 보자, 오늘이 목요일이죠? 수학, 사회, 사회, 국어, 창의적 체험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이렇게 6교시네요. 2교부터는 사회 수업이겠어요. 오늘 체육 수업은 없네요. 에휴, 아쉬워라.”

사실 기준은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체육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체육 수업은 교육과정대로 해도, 교육과정대로 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이 이뤄지는 것 자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요소가 많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봐도, 체육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며 무용이나 뜀틀, 기계체조 등을 배울 때보다는 그냥 공 하나 던져주고 피구 놀이나 하라고 해줄 때가 더 고마웠던 기억이 선명했다. 여전히 관습적으로 ‘아나공(옮긴이: 체육 담당 교사가 그냥 ‘아나, 여기 공 있다.’라고 주고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는 수업을 비꼬는 말)’ 수업을 진행하고 있더라도, 이를 대놓고 비판적으로 말하기엔 어려운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사회와 국어 수업이 더 기대되는 기준이었다.


시간이 지나 수업 시간을 맞이해 기준과 T가 교실로 돌아왔을 땐, 교실은 차분해진 상태였다. 아마 아까 아이가 담임 교사에게 보고했던 다툼을 처리한 이후의 결과이었으리라. 아이들은 모두 담임 교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 지금 그 활동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만.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자, 교과서 77쪽을 핍니다. 수업 구호 외치고 시작하죠.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 와!”

아이들의 구호와 함께 시작된 이 수업은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기준이 알고 있던 교육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이 수업은 PBL(ProLect Based Learning) 기반의 교수·학습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6학년 1반을 국가로 운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얌얌’이라는 화폐가 통용되고, 부서별로 학생들이 맡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 국가는 ‘KJ민반’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존재했고, 입법부는 ‘반회(옮긴이: 국회의 역할을 반에서 하는 기관이라는 의미)’, 사법부는 ‘법원’, 행정부는 ‘반통령(옮긴이: 대통령의 역할을 반에서 하는, 행정부 수장이라는 의미)’과 ‘반무위원(옮긴이: 국무위원의 역할을 반에서 하는 위원이라는 의미)’ 등의 명칭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두 시간의 수업 동안 교사 L은 일종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역할을 할 뿐, 아이들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날 입법부는 행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세금을 20% 올리는 ‘세금 인상법’과, 반대로 이 법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가난한 반민(옮긴이: 국민에 해당하는 말)을 위해 행정부에서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위기 학생 지원법’을 만들었다. 사법부는 복도에서 뛰지 않기로 한 행위를 한 몇 학생에 대한 벌금 판결을 내렸다. 행정부에서는 ‘모든 학생이 하루에 발표 1번을 하면 1000 얌얌을 상금으로 정부가 받을 수 있다.’라는 규칙을 달성하기 위해, 발표를 독려하며 저 퀘스트를 달성하면 학생 개인에게 50얌얌을 지급하겠다는 반통령령을 선포했다.

이후 공약을 적고,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 몇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달 단위로 반통령 선거와 반회의원(옮긴이: 국회의원의 역할을 반에서 하는 의원이라는 말) 선거가 이뤄지는 모양이었다. 분단별로 비례대표제도까지 운영되고 있어서, 정당 포스터도 여러 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원 아이들을 독려하던 한 아이는 기준과 얼굴이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우리 당은 반회의원 역할을 맡고 싶은데 수줍어서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을 비례대표 1번, 2번으로 넣어놔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반회의원이 될 수 있게 도와줘요. 그래서 당 이름도 ‘모두가대표당’이구요. 어때요, 멋지죠?”

의기양양한 아이의 모습에서, 기준은 자신도 모르게 진심에서 나오는 칭찬을 전했다.

“어어…. 진짜 대단하구나. 쉽지 않은 일 같은데.”

“헤헤, 감사합니다.”

아이는 기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곤, 활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보고 있자니… 그렇다. 여기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학생 모두가 즐기고 있다. 이 아이들은 이 수업을 정말로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떠들면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권리와 역할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있었고, 교과서에서 글로 배우게 될 내용을 경험과 체험으로 만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는 1교시 때의 수업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기에 기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교사에게서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수업이 가능했던 것인가?’

사실 처음 강의식 수업이 기계식, 주입식 수업이 아닐 수 있단 것에도 새삼 놀랐었는데…. 그런 식의 수업만 쭉 운영할 줄로 보였던 교사가 이렇게 열린 형태의 프로젝트 수업을 병행하고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수업을 이번 방송 촬영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조작해 보여준다곤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숙지하고 있었고, 이미 이런 식의 루틴을 여러 차례 경험하여 회의를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까지도 체화한 것으로 보였다.

국어 수업 때는 다시 교사 L 특유의 강의식 수업이 이어졌다. 논설문의 특성을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글을 읽으며 그 구조에서 기원하는 글 읽기 방법을 학생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발문이 주로 활용되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안전교육과 성범죄 예방 교육이 이어졌는데, 수업에 앞서 교사 L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 일 년에 수십 시간씩,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계기 교육이란 게 정식 교육과정에 있어서요. 상위 기관에서 추천한 영상을 통해 수업할 예정이라…. 이 수업은 좀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대로 정부 기관 공식 로고가 박힌 영상 몇 가지를 통해 진행되는 단순한 형태의 수업이었다. 교사 L이 수업에 앞서 양해를 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앞서 진행한 수업과의 퀄리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여기서 나온 괜한 민망함 때문이었겠거니 싶었다.

‘일 년에 수십 시간을 이런 식의 수업으로 진행한다니. 참 부질없구만.’

모든 수업이 끝난 후 유튜버 T와 기준은 ‘수업 후 교사와의 면담’ 코너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짧은 회의를 진행했다.

“어때요? 작가님께서 보시기에 수업 비평하기에 괜찮은 하루였을까요.”

“확실히 흥미로운, 재미있는 교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기준이 말끝에 붙인 단서는 유튜버 T의 흥미를 끌었던 모양이다. 유튜버 T는 당장이라도 뭘 적겠단 듯이 메모장과 펜을 들고 기준을 빤히 바라봤다. 기준은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방송을 위한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오는 반응임을 이해하고 전문가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교사 L을 어떻게 선발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냥 괜찮은, 수업 열심히 좀 하는 선생님 한 분을 모신 건 아닐까 싶어서요. 확실히 하루 전체적인 수업 운영도 좋았고, 한 차시 한 차시 수업이 다 의미가 있었어요. 본인 수업 철학도 확실했고요.”

“그런데 그게 너무 분명하고 너무 확실했군요.”

T의 맞장구에 수긍하며 말을 덧붙이는 기준이었다.

“네, 그렇죠. 좀 더 생생한 교실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확실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네요. 그 점도 보완하도록 할게요, 작가님!”


얼마 지나지 않아 L은 하교 지도를 마친 후, 기준과 T를 교실로 오도록 안내했다. 유튜버 T의 촬영팀은 곧장 카메라를 켜 녹화를 시작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선생님. 저희의 깜짝 방문에도 놀라지 않고, 이렇게 멋진 수업을 보여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오늘 오시는 줄 알았으면 뭐라도 더 정리하고, 대접할 것이라도 준비해 두는 건데. 그게 죄송하네요.”

“오늘 수업 비평을 위해 이기준 작가님께서 오셨는데요. 반갑습니다, 작가님! 교육 전문가로서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영광이죠.”

자연스러운 오프닝 멘트와 함께 수업 분석 시간이 이어졌다. 수업 중 주요 장면에서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보고, T와 기준, 그리고 L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마치 관찰 예능의 MC를 맡은 기분도 들었다.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딴짓하는 모습도 하나하나 화면에 잡혔다.

“하하, 선생님. 저 때 저 친구가 저렇게 하신 줄 알았어요?”

“아이고야…. 알긴 알았습니다만 이렇게 보니 또 괜히 민망하네요.”

“히히. 아니에요, 귀여워요. 분명 영상에도 예쁘게 담길 겁니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촬영 중 갑자기 시끄러운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요.”

교사 L의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잠시 진행을 멈추고 그는 복도에 나가 통화를 시작했다. 카메라는 여전히 녹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촬영을… 안 멈추나요?”

기준의 물음에 T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왠지 흥미로운 장면이 나올 것 같은데요? 놓칠 수 없죠.”

그 해맑은 분위기를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한 T를 보고서 기준은 내심 놀랐다. 프로 방송인이란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카메라 감독과 T가 복도에 나간 L을 응시하는 사이, 딴청 피우던 기준도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게 복도를 향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뇨, 어머니….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시율이가 먼저 때려서 지우가 맞받아친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됐고요! 우리 애도 그럴 상황이었는지 아닌지 확인은 하셨냐고요. 결국은 상대 애가 때린 거 아닙니까!”

분명 그 통화는 스피커폰 모드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창문 틈 사이로 소리가 전달될 만큼 목청 좋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머니…. 시율이와 지우 각자와도 이야기를 나눈 후, 둘이 같이 이야기를 나눠서 사건의 흐름은 맞춰진 상태예요. 시율이가 오늘 지우개를 준비 못 했어요. 그걸 알고 지우가 지우개를 빌려준다고 하니, 시율이는 ‘내가 왜 네 걸 빌려!’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지우가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니, 시율이가 ‘네 엄마가 지우라고 이름을 지어서, 그렇게 지우개에 환장했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우가 그 말에 사과하라고 말하니, 시율이가 주먹으로 지우의 어깨를 쳤어요. 그다음 지우가 시율이의 어깨를 맞받아쳤구요.”

담담히 담임교사 L의 설명이 이어졌다. 기준으로서는 L의 말대로라면, 시율이가 잘못한 게 아닌가, 뭔가 저 어머니가 상황을 잘못 이해해서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본인 딸에게 들은 바가 다르다면, 교사의 설명을 통해 오해를 빨리 풀어야 하지 않나 싶던 그때,

“뭐! 그래서 뭐! 네가 교사면 다야?”

다시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증거 있냐고. 증거 있어? 우리 딸이 먼저 맞았으면 어쩔 건데. 네가 책임질 거냐고! CCTV 깔까? CCTV 까라고. 학교폭력 은폐나 하는 쓰레기들아.”

몇 분 동안 이어지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참다, L은 마지막 선언을 하였다.

“지금 이건 정상적인 상담 상황이 아닙니다, 어머니. 학교폭력 신고를 원하시면 학교폭력 신고를 하세요. 경찰로 신고하시든, 제게 직접 신고를 원한다고 말하시든, 어떤 방법으로든 신고 의사를 밝혀주시면 전담기구 열리고 교육청 심의위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교육적 지도는 이미 마쳤고, 두 아이는 서로 잘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 상황입니다. 상대 아이의 잘못이 심각하다고 생각되거나, 이미 이루어진 교육적 지도로 불충분하다고 여기시면 학교폭력 신고를 접수하면 됩니다.”

“내가, 내가! 언제 학교폭력 접수한대? 일을 키우기만 하고, 그냥 누워가지고 월급 값도 안 하려는 거잖아. 너 이제 가만 안 둬! 가만 안….”


또르릉. 통화 종료음이 들렸다. L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통화를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세상에. 학교 현장이 힘들다, 힘들다 그러길래 엄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교실 안에 있던 T와 카메라 감독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야…. 저 엄마 보통이 아닌데요? 감독님, 녹화 땄어요?”

“네, 당연히 땄죠. 계속 녹화 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녹화가 더 가능할까요. 선생님 너무 힘드시겠는데….”

그 말마따나 저벅저벅, 복도에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엔 힘이 없었다. 곧 돌아온 L은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하…. 오래 기다리셨죠.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좀 힘든 어머니가 저희 반에 있어서요.”

“아, 저희도 다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던데요.”

T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했다.

“아이가 학기 초부터 친구들을 함부로 대해서 친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억지로 여자아이들이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있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데리고 놀아주고, 또래 그룹을 만들어주고 했거든요. 그 이후로 이제 다행히 친구들도 좀 생기고, 그래도 학급에서 지내면서 외롭지 않은 단계까진 왔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불만을 토로하시더군요. 학기 초에 시율이 걱정을 하면서 상담을 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왜 자기 아이만 특별 대우를 해서 이상하게 보이게 만드냐.’, ‘왜 수업 때 교과서로 수업을 안 하고 괴상한 활동들을 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게 하냐.’ 이런 식의 항의를 몇 차례 반복하더군요. 아이를 그대로 놔두면 그대로 왕따가 될 판이었는데. 고맙단 말은 당연히 없었죠. 그러다 이제 뭐에 꽂힌 건지, 지난주에는 학교 교무실에 전화해서 제가 젊은 남교사라 아이들 공부를 대충 시킨다느니, 수업과 상관없는 헌법을 가르치고 애들을 놀리며 굴린다느니, 그런 식으로 따졌다더라고요. 그 내용들이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고스란히 제시된 내용인 줄은 모르나 봐요. 하여튼 슬슬 힘들고 지치긴 하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근 10년 동안 참 많은 게 바뀐 것 같아요. 이런 식의 민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얼마 전까지 분명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참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자면, 기준의 입장에서는 L의 수업이 참 괜찮다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렇게나 수업을 괜찮게 하는 교사를 캐스팅한 것이, 무너진 공교육 교실과 현실을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에 불만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어떤 학부모의 눈에는 저렇게 트집을 잡을 수 있는 건수가 된다는 생각이 우습기도 했다.


“저, 선생님. 선생님께서 오늘 보여주신 수업은 분명 괜찮은 수업, 아이들에게 참 좋은 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괜한 민원에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괜한 어쭙잖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단 걸 알면서도, 그래도 그 순간의 진심만큼은 전하고 싶어 입을 열어 말했다.

“아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이런 학부모 두세 명이 한 반에 있으면 지칠 대로 지치긴 하더라구요. 아, 오늘 인터뷰는 좀 더 힘들 것 같은데. 혹시 다른 때에 추가 인터뷰를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아마 이거 학교폭력으로 사안 접수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후 후속 처리를 좀 해야할 것 같거든요.”

L의 힘이 쭉 빠진 목소리에, T는 곧장 괜찮다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문제없어요. 수업 장면도 잘 담았고, 이걸로 일단 1~2회분 영상을 제작할게요. 다음 수업 녹화 때 인터뷰 한 번에 주고받아도 될 것 같구요. 게다가 오후에 민원 처리하시는 장면까지 영상에 넣으면 분량은 상당할 것 같아서.”

“아, 그건 안 됩니다.”

T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양팔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민원 사안은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할 것 같아요. 교사들이 자기들 속사정이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도 ‘학생 정보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요즘 나오는 교직 에세이 보시면 아시잖아요. 행복하고 좋은 교실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하고, 힘들고 슬픈 내용은 있는 그대로 잘 못 담아냅니다. 사실 그대로를 적을 수 없는 게 교실이죠. 이번 사안이 영상으로 유출되면 T 님이 저 낭떠러지로 떠미는 거예요, 하하. 절대 그 사안 관련해서는 유출 안 되게 해주세요.”

그 말에 T는 알겠다며 L을 다독였다. 그때 옆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눈을 끔벅이면서 물었다.

“어…. 저…. 그러면 아까 저 혼자 교실에 남아있을 때, 지우랑 시율이랑 싸운 장면도 담았는데요. 이거 지울까요? 선생님 설명이랑 그대로 일치해서 시율이 어머니가 또 선생님께 시비라도 걸라치면 증거로 보여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오, 맞아요. 아까 CCTV 까보자고 그렇게 애원하시던데.”

T의 동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L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여전히 슬픈 눈빛과 함께 대답했다.

“그런 분들은… 증거 자료가 있어도 자기에게 유리할 대로 해석하십니다. 표정이 어쨌니, 몸짓이 저랬니, 상대의 잘못은 크게 인식해요. 본인 자녀의 잘못은 ‘됐고요.’라고 단순하게 넘어가거나, 그럴만한 이유나 명분이 있었다고 트집을 잡아 꼬리에 꼬리를 물죠. 영상 자료가 있단 걸 알면 도리어 감독님이랑 T 님께 화살이 갈 겁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뭔가 애매하군. 좋은데 좋지가 않아.’

달콤쌉싸름한 맛이었다. 수업 자체론 철학과 의미가 있고, 방법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접근이 녹아있는 교실이었는데. 괜찮았는데. 좀 더 묻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수업 외의 것으로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듯한, 그 형국에서 나오는 불안감이 영 마음에 얹힌 느낌이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앞으로의 촬영은 좀 어려우시려나요.”

교사에 대한 걱정인지,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걱정인지, 정확히 분간하기는 어려웠으나, 유튜버 T는 걱정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촬영은 언제든 가능합니다만, 그래도 학교폭력 사안이 공식 접수되면 반 분위기도 그렇고, 뭔가 학교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요소가 늘어나는 게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긴 합니다. 잠시 다른 교실로 촬영하다가, 제게 다시 오시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어떠신가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촬영이 가능한 다른 선생님들을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


그 말에 기준은 갑자기 어깃장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교사 L에게 주도권을 주고 싶진 않았다. 자기가 추천하는 교사들이야, 뭐 뻔하겠지. 다 어느 정도 공개수업을 염두에 두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겠지. 그들이 공교육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기준의 염려였고, 처음 유튜버 T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김에, 정말 공교육의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교실을 찾아가 볼 기회로 전환하는 게 나을 거다.

“에이, 뭘 그렇게 고생하십니까. 원래 방송 취지에 맞게 그냥 다른 선생님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사실 L 선생님께서 애써주셨지만, 이미 준비된 수업을 구현하신 것 같아 날 것의 느낌이 영 안 나기도 하고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L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마 기준 말에 담긴 뼈가 그대로 잘 박혀 전달된 탓이리라.

“하하, 작가님. 마치 제가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수업을 보여드린 듯한 말씀이시네요.”

L의 말은 여전히 침착하고 부드러웠지만, 문장이 끝나는 시점에서도 억양이 다듬어지지 않고 강하게 뻗쳐나가는 걸 봐서는, 꽤나 기준의 말이 불편하게 느껴진 듯했다.

“뭐, 저희가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 아닙니까.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면 그렇죠. 요새 학교 선생님들이 사교육에 밀리는 것도 다 알고, 평상시 수업도 대충대충 하는 거 뻔히 아는데요. 선생님이 보여주신 수업은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엔 어려움이 있는 느낌이라서요.”

“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번 대답에 섞인 목소리론. 누가 들어도 L은 화가 나 있음이 분명했다.

“아휴, 저, 작가님 말씀은 그게 아니라….”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T의 노력은 돌아가는 상황에 어떤 조금의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L이 재빠르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제 생각엔 오늘 제가 아니라, 어느 반에 들어가셨어도 제가 하는 정도의 수업을 보셨을 겁니다. 교단에서 헌신하는 다른 교사들에 비하면 오히려 제 수업이 부족한 편에 가깝죠. 그리고 어떤 수업을 보셨든 간에 작가님께서는 삐딱하게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수업’으로 편견을 갖고 보셨을 것 같구요.”

그 말은 이제 반대로 기준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기준도 자신의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아, 제가 편견을 갖고 있다?”

“예, 편견.”

L은 칼같이 잘라 대답했다.

“세상이 그렇듯요. 어떤 한 명의 잘 가르치는 교사가 나타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래, 저 사람은 잘 가르치네. 그런데 왜 다른 교사들은 저렇게 안 하는 거야? 노력이 부족한 거네. 다들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였잖아.’ 이런 식으로 비꼬는 데에 활용하는 게 고작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옆 반 교사는 이렇게 해주는데, 왜 우리 반 담임 교사는 그거 하나 안 하냐.’ 그런 식의 민원이 학교를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서 작가님이 자유로우실 순 없을 겁니다. 저도 작가님의 교육 평론, 하나하나 잘 읽어서 사실 다 알고 있거든요.”

아차 싶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기준도 머쓱한 마음이 들긴 했다. 본인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자의(自意)로 본인이 가진 생각을 드러냈던 것이지만, 그 글을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읽을 것이라곤, 그리고 그런 교사를 대면하게 될 것이라고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던 탓이다. 마치 옷을 몽땅 벗어버린 채, 벌거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워낙 신랄하게 글을 써대온 탓에 교사가 기준이 썼던 칼럼을 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기준이 그런 당혹감으로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사이, L은 곧장 또 말을 이었다.

“만약 지금의 교육 현장이 무너져 있다는 결론이 사실이라면, 어떤 시선에 의해 무너졌는지 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실패했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틀에 박혀 정해져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주어진 사실과 정보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요. 그게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이렇게 무례한 급습 방문도 허락해 드린 건데. 하긴 한 번의 경험만으론 평생의 생각을 고쳐먹긴 힘들겠죠.”

비속어는 하나 없어도, 거친 표현이 뒤섞인 L의 말이었다. 그쯤 되니 기준도 가만히 듣고 있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치 자신을 악으로 표현하는 듯한, 거짓말쟁이로 묘사하는 듯한 상대의 억지를 들어주고만 있을 순 없었다. 핵심을 짚어주고 싶었다.

“그럼요, 선생님. 잘 알고 계시군요. 마치 우리나라 공교육이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시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까놓고 말해봅시다. 그럼 지금 우리네 학교가 안 무너졌습니까?”

그러나 그 말에도 교사 L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새 입술을 살짝 들어 올린 표정엔 기준을 조롱하는 듯한 기운도 한껏 녹아있었다.

“정말 우리나라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공교육이 무너져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인플루언서, 대통령 등 어느 직장 종사자보다도 가장 신뢰하는 직업군이 교사입니까? 공교육이 무너져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다양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나요? 인적자원, 그거 하나로 먹고사는 국가가 지금까지 이룩한 결과의 밑바탕에 공교육의 역할은 정말 완전히 0, 무(無)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누리는 공공서비스는 무료이기에 무가치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생각에 기반한 주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요.”

쉴 틈 없이 말을 내뱉던 L은 한번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끊고는, 다시 자신의 주장을 펼쳐갔다.

“작가님이 갖고 계신 생각은 다 압니다. 작가님이 교사들을 비하하는 글을 썼던 것도 사실 다 읽어봤지요. 우리나라 공교육은 무너져 있고, 그 실패의 원인에는 게으른 교사들이 첫 번째로 지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이잖습니까. 그게 이제 아니란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간 어떤 글을 써오셨든, 어떤 생각을 가지셨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고 배우는 오늘날의 학교와 교실에서는 ‘괜찮은 수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분명 보시게 될 겁니다. 어떤 교실이든 편히 찾아가세요. 그리고 그 교실에서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세요. 작가님이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는 그런 분은 아니란 걸 알고 믿기에, 앞으로의 촬영을 그 관점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준은 L의 말에 수긍하며 대답했다. 사실 그가 한 말처럼, 이제 보면 되는 거니까.

“네, 말씀하신 대로 있는 그대로, 혹시라도 있을 편견이나 삐딱한 마음은 버리고 교실을 바라보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혹여라도 다른 분들의 수업 비평을 할 때 의문이 생기거나 비판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 L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보고 그것까지 촬영에 포함하였으면 합니다. 그 부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야 공교육에 대한 나름 공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 같네요.”

“그거 좋죠. 언제든 요청하시면,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싸울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대화의 흐름을 유튜버 T는 아주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오, 우리 구독자 ‘핫이슈’ 여러분들. 모두 보셨죠? 이제 앞으로 ‘오늘의 이슈’의 코너, ‘오늘의 교실’ 방송은 기준 작가님과 L 선생님 두 분의 뜨거운 토론과 함께 진행되겠습니다. 다들 정주행 가자구요! 이슈이슈 핫이슈!”

카메라가 꺼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녹화 중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아니, 이것도 촬영 중이었나요? 이건 좀 편집을….”

“에이, 아니에요. 서로 싸우신 것도 아니고, 욕도 하나 없었는 걸요. 오히려 공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두 분이 해주고 계심이 있는 그대로 느껴져서 너무 좋은 장면이었어요. 말씀해 주신 김에 수업에 대한 비평도 두 분이 함께 해주시고, 약간 교육 전문가 두 분의 대결 모드로 가도 괜찮겠죠? 헤헤, 감사해요!.”

T의 능글맞은 말에 기준도 L도 딱히 어떻게 대처할 줄 몰랐다. 그냥 그렇게 하겠다는,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답게 떠밀리는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T와 기준은 학교 밖을 나서며 대화를 나눴다.

“작가님. 그러면 진짜 아무 학급이나 가보게, 여기 인근 지역의 아무 학교, 아무 학년 반을 말해보실래요?”

“네?”

“아까 그러셨잖아요. 좀 더 생생한 교실을 보고 싶다고요. 정말 아무 데나 가보게요.”

“그게… 됩니까?”

“아이, 저 T라니까요? 아까 반에서 아이들 반응 못 보셨나? 10대들 사이에서 저 슈퍼스타예요. 협조받는 거 일도 아니라고요.”


그래, 솔직히 L의 교실은 좀 미리 준비된 느낌이 옅게나마 있었다. 이왕 갈 거, 초기 의도대로 정말 방송 촬영이 준비가 안 된 교실을 그대로 가봐야지. 그래서 L의 호언장담이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꼭 입증해 보이리라. 기준은 굳게 결심했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동의를 구하는 건 어차피 T의 몫이니, 그냥 아무렇게나 질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나는 아무 학교, 아무 학년, 아무 반으로 가보자. 그곳의 수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사실 그대로 기록해 보자.

생각나는 학교의 이름은 익숙한 기억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릴 적 다녔던 학교의 이름을 떠올렸다. 졸업 이후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모교. 가끔 지나가다 보면 건물 외관도 그대로였는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 그 학교는 이 근방 가까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면… ㄴ초등학교 6학년 6반으로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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