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실] 4화

오늘의 교실_O의 교실

by 꿈몽글

오늘의 교실 4화


#. 오늘의 네 번째 교실


“아, T님. 그래서 하여튼 오늘은 제가 병원에 잠시 다녀오느라 늦을 것 같습니다.”

“네네, 괜찮아요. 작가님 멘트는 자연스럽게 나중에 딸게요. 학교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데, 주차장이 엄청 좁아요. 학교 교직원들도 학교에 주차를 다 못한다네요. 옆 아파트에 돈 내고 주차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염두에 두시고 오세요!”

학교에 출장을 갈 때마다 주차가 참 어려웠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일찍 출발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늦어서 아슬아슬하게 이중주차를 하곤 했었다. 오늘 방문할 학교는 그마저도 어렵다는 얘기였다. 이왕 늦은 김에 아예 찬찬히 여유롭게 병원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준이었다. 요 며칠간 본인을 고생하게 만든 발 통증을 좀 잡아야 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한 후, 취한 채 길을 걷다 삐끗한 것인지, 갑자기 발목이 팅팅 부어올랐다. 괜찮겠지, 괜찮겠지, 그 생각으로 하루 이틀을 보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근처에 얼마 전 새로 오픈한 정형외과에 갔다.


병원은 참 깨끗했다. 모든 게 새것 같았고, 반짝반짝 빛났다. 오래된 병원과는 다른 결의 안정감을 주었다. 가끔 들리는 내과는 예전부터 다니던 곳을 꾸준히 가곤 있는데, 여긴 기준이 다닌 것만 따져도 30년은 족히 넘은 그 세월감으로 정확히 표현하긴 어려운 불신의 감정을 만들어 내곤 했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손에 들고 내 입을 헤집을 때 쓰는 이 도구들의 위생관리가 잘 이루어지긴 하는지 의심은 상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검사 기기가 최신형일수록 더욱 정확하고 안전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에, 그 내과에서 검진을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오래된 곳에 비하면, 확실히 새로 지은 병원의 분위기는 신뢰감을 굳게 형성하기에 유리했다. 철저하게 관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 검사를 받아도 결과가 정확할 것이란 기대. 오늘 기준의 발목 통증도 그 정도가 심하지만, 이 병원이라면 금방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 지금 사진으로 봐서는 통증 부위 원인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네요, 환자분. 좀 검사에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일단 피검사 한 번 받아보실까요?”

의사의 말은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그저 삐끗해서 생긴 발목 통증인데 무슨 피검사. 다시 보아하니, 의사는 어렸다. 어려도 너무 어렸다. 거기에서 스멀스멀 불신의 감정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시간 낭비를 할 순 없겠단 마음을 먹었다.


“아닙니다. 일단 그냥 다른 곳에 가볼게요. 사진으로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겠죠.”

“아뇨, 환자분. 해당 증상은 물리적으로 삐끗해서 생긴 것이 아닐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의사가 다급히 뭔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기준은 이미 이곳을 나갈 결심을 굳게 해버린 참이었다.

“제가 너무 바빠서.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호기롭게 정형외과를 나왔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발목 통증은 여전했다. 아니, 밖에서 빌빌거리며 억지로 돌아다닌 탓일까.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하…. 아는 병원도 없고. 어딜 가야 좋지. 뭐, 꼭 전문의가 아니어도 원인을 잡아낼 수 있진 않을까?’

그 내과를 떠올렸다. 어차피 아픈 부위도 발목이고, 사용하는 기기가 구형이든 말든 문제될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의사라면 오랜 경력에 별의별 환자를 다 만났겠지. 내과 전문의더라도 발목이 삐끗한 환자를 위해 증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줄 수 있지 않을까? 좋아, 그 의사에게 찾아가자. 그렇게 결심한 기준은 아픈 발을 질질 끌며 이동했다.


“아니, 이전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면서요. 왜 의사 말을 안 듣고 본인 생각대로 병명을 확정합니까. 발목이 삐끗한 건 아무 상관 없고, 이거 통풍일 가능성이 있어요. 당장 피검사부터 합시다.”

놀랍게도 오래된 병원의 나이가 지긋한 내과 의사는 아까의 젊은 의사와 똑같은 말을 했다.

“통, 통풍이라뇨. 딱히 그럴 이유가 없는데요.”

항변하는 기준을 노려보는 의사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환자분. 술 마시고 맥주로 치킨이랑, 튀김이랑 먹었다면서요. 퓨린 성분 아시죠? 통풍 바로 직빵으로 얻어맞는 식습관을 스스로 말씀하셔 놓고, 삐끗한 거 하나에 꽂혀서 의사 말은 안 들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의사는 더 이상 기준의 말을 들을 필요 없단 식으로, 팔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검사 결과는 내일 나오겠지만, 일단은 급한 대로 당장 처방받을 수 있는 약 몇 가지를 써주겠다는 의사의 말엔 여전히 가시가 가득했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어째서 의사보다 더 잘 아는 척을 하고 있냐는 뉘앙스였다.

사실 여전히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기준이었고, 통풍보다는 발목을 접질려서 생긴 통증이 길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가득했지만, 여기서 왈가왈부할 필욘 없었다. 피는 뽑았고, 결과는 내일 나올 것이다.

“앞으로 식습관 조절 잘해요!”

훈계하듯 호통치는 의사의 말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따뜻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령 이번의 내기―그러니까 발목이 다친 것인지 아니면 통풍이 온 것인지에 대해 옳은 판단을 누가 했는지에 대한 기준 혼자만의 싸움―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단 생각도 들었다. 서둘러 학교를 향했다.


삐끄덕, 삐끄덕.

지끄득, 찌끄득.

학교에 도착한 기준이 복도에서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그 잡음의 빈도만큼이나 시설의 역사도 비례하리라. 학교 정문에는 20년 전에 개교한 학교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다.

‘오래된 학교…. 오래된 병원에서도 좋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아날로그틱한 결이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계속 연달아 연식이 있는 학교를 오다 보니, 이런 종류의 낡음이 다시 익숙해졌다. 한편으로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도 이런 노후화된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아이들이 짠하기도 했다. 다 큰 어른들이야 어쩌다 한 번 와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기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시선에서의 모순이 문득 느껴졌다. 20년 전에 지은 건물이 오늘날에도 그대로이니, 이곳은 20년 전 그대로일 것이라고 보던 자신의 선입견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으니까. 아니, 아니지. 영향을 오히려 주고 있던 것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건물이 20년 전의 것인지, 엊그제 지은 새것인지가 그 안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결정짓는 것은 아닐 노릇인데. 그 모순은 어쩌다 생겨난 것일까.

그렇게 많은 생각을 안은 채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앞 복도에는 T가 서 있었다.

“아휴, 많이 늦진 않았죠?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뇨, 작가님. 안 늦으셨어요. 이제 1교시 수업 끝났거든요. 몸은 괜찮으세요? 걷는 게 불편해 보이세요. 어디가 아프셨던 거예요?”

기준은 차마 이 젊은 나이에 통풍을 앓기 시작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뭔가 부끄러움이 컸다. 괜찮은 체하며 에둘러 대답했다.

“약 처방을 받았으니 곧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인데….”

여전히 궁금해하는 표정의 T를 애써 무시하며 복도 게시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굳이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서둘러 주제를 돌려야 했다.

“교실 주변이 참 예쁘네요. 역시 5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미술 작품의 수준도 높고….”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작가님께서 또 고학년 교실을 선택하셔서 의외였어요. 이젠 더 어린 친구들의 교실도 가볼 만하지 않나요?”

T는 의아함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계속 연달아 고학년을 맡은 담임 교사만을 만나고 있는 일정의 연속이긴 했다. 아마 T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학년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기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고학년 교실만을 집중적으로 고른 것은 기준이 나름대로 세운 기준과 원칙 때문이었다. 혹자는 ‘인디언 기우제식’ 전법이 아니냐고 삐딱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 있는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준의 관점에서도 ‘괜찮은 교사’들이 학교에, 그가 원래 기대했던 바보다는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준이 갖고 있던, 어쩌면 L이 예전에 그를 향해 직접 지적했던 것처럼, 편견이나 삐딱한 마음이 아직도 교실 속 현상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례가 필요했다. 한 학년을 맡고 있는 여러 교사들의 색깔을 직접 봐야만 했다. 그곳에서의 분위기를 조금 더 느껴봐야 했다. 사실 기준으로서는 이만큼의 변화도 많은 것을 양보했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고. 이젠 비판적인 시선에서 교실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교실을 맛보겠다는 의지를 갖췄으니 말이다.

그녀에게 이런 생각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까지 영상을 녹화하면서도 매 교실의 아쉬운 점을 한두 개씩 굳이 꾸역꾸역 설명하고 있던 그로서는 민망한 속내이기도 했다. 다른 변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학년을 지도하는 여러 교사들을 보여줘야, 같은 기준에서 시청자들이 비판적인 시선을 기를 수 있겠지요.”

“그것도 그렇네요. 하긴 고학년 학생들의 정서적 특징을 짚어내면서 선생님들의 수업 중 아쉬운 부분을 코멘트하셨던 게 지난번에도 반응이 좋던데요.”

그 말에도 다시 한번 뜨끔했지만 말이다. L의 교실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한 학급 경영 방식이라느니, N의 교실은 학생들이 따분함을 느끼게 만드는 고전적인 수업 방식 일색이라느니, 날카로운 척 비판의 말을 끝마디에 덧붙였던 그였다. 물론 진심에서 나온 칭찬도 많이 덧붙였지만, 억지스러운 비판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양심의 가책이 더해지는 오늘이기도 했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는 다시 진실해져야 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래….’

그렇게 그는 오늘의 교실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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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실]

ㄹ초등학교 5학년 4반

남학생 12명, 여학생 12명

담임 교사 O(30대 초반, 교직 경력 7년 차, 여성.)

학급 목표: 우분투(우리가 있어 내가 있다.)





교실 옆 보관함에는 여러 가지의 보드게임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 옆으로는 분실물 바구니, 감정 신호등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보였다. 학급 회의록이 빼곡히 보관된 서류함은 차지하는 공간이 적지 않았는데, 얼핏 훑어 살펴보니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이 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거의… 조선시대 사관의 기록을 보는 것만 같네.’

뒤쪽 게시판에는 아이들이 각자 그린 그림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큰 작품을 만드는 협동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들풀과 꽃들이 모여 거대한 정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모든 게 분절화된 상태가 아니라, 어우러져 합쳐지는 섬세한 계획하에 배치된 느낌이야.’

기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고른 교실도 어쭙잖은 비판은 쉽지 않은 곳이 아닐까, 지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억지 비판은 이제 하고 싶지 않은데.


“후…. 그래도 이런 스타일이면 깐깐한 성격 아니려나.”

혼자 조용히 읊조리는데, T가 갑자기 끼어들어 말했다.

“여기 O 선생님이요? 그건 아닐걸요. 아까 아침 시간에는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곤한 학생들은 잠도 자게 허락해 주시더라구요.”

2교시 수업은 사회 교과 시간이었다. 역사 신문을 만드는 활동이었는데, 지난 시간에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모둠별 정리 활동이 이루어졌다. 자신의 몫을 덜 끝낸 학생이 있는 모둠은 약간의 분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내 교사 O가 아이들을 독려하였다.

“아직 조사를 끝내지 못한 친구는 마저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모둠 정리 활동에 함께하도록 해요. 최종 발표일까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합시다.”

교사가 개입하자 모둠 안에 있던 불만이 이내 제거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확실히 아이들을 잘 살피는 교사가 좋은 교사이겠군. 이런 식으로 사전에 진단한다면, 문제가 생기다가도 말아버리니.’


아이들의 활동에 방해가 안 되게 기준과 카메라 감독도 슬쩍 교실을 돌며 결과를 확인했다. 꽤 그럴싸한 신문, 정말 어디선가 있을 법한 역사 설명 자료들이 완성되고 있었다. 태블릿 PC를 활용해서 능숙하게 자료를 만드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어지간한 대학생들보다도 더 나은 것 같은데.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아까 그 아이 정도가 위험군이었을 텐데, 담임 교사가 이미 다시 과제를 열심히 하도록 끌어왔고 말이지.’

쉬는 시간에는 노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이전 활동을 마저 더 보완하느라 집중하는 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담임 교사는 다음 차시에 제공될 과제물을 가지러 가겠다며 나갔다. 아이들은 적당히 소란스러우면서도, 적절히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O는 교실로 돌아온 후, 어떤 아이들과는 캐릭터 딱지를 갖고 놀고 있는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기도 하고, 새로 구입한 보드게임 놀이법을 설명하며 실감 나게 표정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아마 수업 중 교사의 피드백이 빠른 영향을 주는 것들도, 아이들이 서로를 돕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그런 영향 덕분이었으리라.

3교시 수학 수업은 교과서에 기반한, 우직하고 단단한 수업이었다. 직육면체 전개도에 대해 학습하는 시간이었는데, 이론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 연습 문제와 수학 익힘 교과서 속 문제 풀이를 통해 학습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준의 입장에서 놀라운 부분은 이런 단순한 교재 구성으로도 깔끔한 개별화 수업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보통 수준별 수업을 하기 위해선 반을 아예 옮겨 이동하든지, 다른 책을 쓴다든지 해야 할 것 같았는데….’

교과서에서 제시된 문제만으로 완벽한 수준의 구분을 나누는 것에는 다소의 무리가 있어 보였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에도 그랬으니까. 수준별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심화반, 일반반을 구분하고 거기에 더해 과목별로도 A, B. C 등으로 서열을 정해서 학습했던 게 선명한데. 하긴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식의 위계를 학생들 사이에서 만드는 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고등학교 때의 기억으로 ‘대한민국 학교’ 전체가 잔인한 경쟁의 정글 한복판에 놓여있다고 믿어왔었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등학교에서 그런 식의 수업은 찾아보기 힘든 듯싶었다. 얼마 전까지 탐색한 교사들도 마찬가지였고, 오늘 교사 O가 지도하는 수학 수업을 통해 이 답은 명확해졌다. 물론 동일하게 주어진 단일한 교과서만으로 모든 수준의 학생을 일일이 맞춰주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긴 했다. 아무리 사회에서 저출생 문제를 뜨겁게 다루어도, 한 교실에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수업을 듣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교사의 발문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모둠 자리의 구성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시간이었기에, 이 시간이 기준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컸다. 그와 동시에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정작 선명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긴, 벌써 그게 수십 년 전이긴 하니까.’



수학 수업이 끝나고 교사 O는 수채화 수업을 준비하라는 안내 문구를 TV 화면에 띄워놓았다. 그러면서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바삐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에서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듯했다. T는 카메라 감독과 함께 교탁 근처로 가 짧은 인터뷰를 시도했다.

“중간 놀이 시간인데도 쉬지 않으시네요?”

“아, 예. 지금 당장 처리해달라고 급하게 요청이 들어온 건이 있어서요.”

“지금 인터뷰는 어려우신…?”

T의 길게 빼는 말에 O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죄송하게도. 이따 수업 끝나고 부탁드릴게요. 학교가 늘 이렇게 정신이 없긴 합니다. 수업만 하면 끝이라고 오해받을 때가 많긴 한데, 실제론 계속 뭔가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요.”

T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복도로 이동했다.

‘확실히 현장은 정말 다르다.’

솔직히 쉬는 시간만 되면 교사들이 놀고먹는 줄로 알았지, 다른 업무가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예전에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등기만 발급하면 되는데, 바쁘긴 뭐가 바쁜지 이해가 어렵다고, 대체 뭔 일을 하냐며 조롱하는 글을 써대던 악플러가 떠올랐다. 자기가 안 해본 업무에 대해서 어떻게 저렇게 쉽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한심했었건만. 유독 학교와 교실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4교시부터 5교시까지는 미술 수업이 진행되었다. 붓을 잡는 법부터 물감을 사용하는 법까지, 기초적인 부분에 대한 복습으로 시작되었다. 다양한 색으로 그라데이션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그 와중에 교사의 설명을 잘 듣지 않다가 자기 멋대로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옆에서 한소리를 얹으며 핀잔을 주는 짝꿍과의 실랑이가 이어지자, 곧장 교사 O가 옆으로 와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색의 변화를 이렇게 가져가야죠. 옳지, 좋아요. 그다음은 힘을 빼고…. 그렇지!”

짝꿍과 교사의 지속적인 피드백 속에 곧장 그럴듯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내는 아이였다. 그 덕에 이어지는 활동, 색상의 그라데이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는 교실 속 모든 수업 참여자들이 곧장 몰입하여 진행할 수 있었다.

‘형태 감각이 단순한 기술 훈련에서 끝나는 게 아닌걸. 체계적이면서, 또 아이들의 사고를 계속 촉진하는 발문들. 그래. 아, 이것은…. 사고력의 훈련으로 연장하는 아른하임의 교육관을 빼닮았어. 그래, 아른하임이었네.’

오늘의 교실에서도 교사의 철학은 분명했다. 기준은 그걸 알 수 있었다. 5교시에서 이어지는 수채화 그리기 활동의 주제는 ‘하늘이 있는 풍경 그리기’였고, 그 속에서 학생들의 심리를 지각적 요소와 연결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이전 시간에 진행한 그라데이션 만들기 및 그라데이션을 통해 마음 표현하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히 개인 단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협업과 상호작용의 과정이 충분히 보완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단 두 차시짜리 수업에서도 기술적인 훈련과 미학적 사고 성장을 위한 비계(scaffolding)는 충분히 제공되고 있던 셈이다.




오늘도 담임 교사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곧장 일대일 면담을 진행할 순 없었다. 방송에서는 노출할 수 없는 장면이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용이겠지만, 그런 성격의 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업무가 연이어 진행되는 모양새였다.

“죄송해요, 작가님, T님. 아이와 상담을 이미 예정해 놨던 지라. 다른 건 좀 어떻게 바꿔보겠는데, 아이랑 한 약속은 쉽게 바꿔선 안 되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아!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학교 일정을 확인했을 땐 이번이 상담 주간이 아니었는데, 상담을 진행해 주시는군요.”

T의 말에 O는 웃으며 대답했다.

“상담 주간이 사실 초등학교에선 아무 의미가 없어요. 상담은 언제나 매일 진행되거든요. 무엇을 위한 건지 굳이 학교 단위의 공식적인 상담 주간을 정해놓긴 하는데…. 학교 실정과 안 맞는 조치라서 고치는 학교들도 많긴 하더라고요. 아, 하여튼 학생과 상담하고, 학부모와 상담도 해야 해서 좀 시간이 걸릴 순 있겠어요. 양해 부탁드릴게요.”

교사 O는 민지라는 아이를 위해 상담을 한 시간 정도 진행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가정과 상담을 진행했다. 대충 엿들어보니, 가정에서는 이 상담 자체를 매우 언짢아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문제아처럼 낙인을 찍으려 하냐는 논조였다.

“아뇨, 아버지.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민지를 위해서 어른들이 도울 방법을 함께 논의하기 위함이에요. 이제 어느덧 5학년인데도, 기본적인 자리 정돈도 많이 어려워하고 있어요. 수업을 따라오는 부분도 버거워하고요.”

“선생님. 그건 그냥 애니까 그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가 하기 싫어하는 걸, 뭘 그런 걸로 상담을 한다, 만다, 그런 식으로 번거롭게 일을 만듭니다. 믿고 바라봐줘야 하는 게 교사 아닙니까?”

상대의 거친 외침에도 교사 O는 담담히 긴 설명을 시작했다.

“그냥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기는 것이 오히려 무관심한 대처예요. 이젠 민지가 도움을 받아 어려워하는 부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다행히 지금 반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잘 지내고 있지만, 지금 모습 이대로면 중학교 때 교우 관계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학기 초에 아버지께서 민지 공부는 관심 없다, 몸만 잘 크고 친구랑만 잘 지내면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단순히 공부를 못해서, 물건 정리가 안 되어서, 거기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약속을 관리하고, 자신을 잘 가꾸고, 이런 것들이 친구들에게도 민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의 기초 자료가 되어버리는 게 현실이에요. 이제 본격적으로 10대 중반 청소년이 된다면, 그런 것들의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고요. 고학년에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면, 혼자 그걸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닙니다. 조금 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도와주고, 방법을 함께 찾아봐 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줘야 할 일이란 말씀입니다.”

자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말해주면 기분 나빠하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생각이 들었다. 교사 L의 사례와 많은 게 겹쳐 보였다. 교사 O가 수십 분에 걸쳐, 이번 상담은 교육청의 협조로 무료로 진행될 것이며, 민지와 민지 부(父)의 관계 회복 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연이어 간 끝에야, 간신히 보호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본인의 자녀를 위한 것인데, 그것 하나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많은 과정이 소요된다는 것을 직접 목도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교사 O는 해당 주간에 있는 학년 행사 추진을 위한 동학년 회의, 다음 날 수업을 위한 자료 준비, 그리고 본인이 맡은 업무를 모두 마친 후 오후 7시가 넘어서 일대일 상담 코너 촬영에 응할 수 있었다.



“급한 것만 마무리했는데, 죄송해요.”

“오늘 초과 근무는 안 내신 것으로 아는데 생각보단 늦게 끝나셨어요. 고생이 많으셨네요.”

“아휴, 초과 근무는 특별한 날 아니면 잘 못 쓰는 분위기라….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희가 갑자기 찾아온 탓인걸요.”

T와 O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인터뷰를 위해 기준이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교실의 따뜻한 모습들에 참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교사가 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만화나 삽화를 그릴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중학생 때 잠시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금전적인 부담에 더해 이미 앞서가던 다른 수강생들을 보니 자신이 없어서 그만두기도 했지요. 이후에 무엇을 업으로 삼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타인을 도울 때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과 얕고 넓게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초등교사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위치, 졸업 후 진로가 거의 정해져 있어서 방황할 필요가 없고, 비교적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직업 선택에 큰 이유가 되기도 했고요.”

“솔직한 대답에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교사가 된 이후, 가장 보람찬 순간을 꼽자면요.”

“‘선생님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요! 그럴 때면 그 아이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느끼거든요. 같은 이유에서 뭔가 어려움을 겪던 학생이 후에 조금 더 능숙해진 모습을 보일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뿐 아니라, 저와 한 해를 보내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들을 보는 매시간이 보람된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더라고요, 하하.”

교사 O의 대답은 나무랄 데가 없는 대답이었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 자체를 업으로 삼는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있길 바랐다. 동시에 그런 교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교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한 그로서는, 그 교사가 진솔하게 삶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해주어 고마운 마음까지 생겨나는 시점이었다.

“그런 선생님께도 아마 힘든 순간이 있으셨겠지요?”

예전보다는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좋은 교사라도 힘든 순간이 있을 수 있음을, 교실 속 거대한 충돌이 있을 때 그 원인을 교사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자로서의 태도이기도 했다.

“음…. 대부분 좋은 학부모들이시지만, 그래도 가끔은 특별한 분들을 만날 때가 있더라고요. 학기가 끝나면 생활 통지표가 나가잖아요. 거기에 적힌 문장 중 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나쁜 문장도 아니었고 ‘OO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과 같이, 아이의 성장을 위해 이런 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에둘러 표현한 기록이었거든요. 이게 참 아쉬운 점 같아요. 직접적으로 ‘OO~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을 써도 사실 정말 아이가 지금은 그것을 할 수 없기에 할 수 없다고 가정에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대한 고민을 차치하고서 라도요. 조심스럽게 적은 문장 하나마저도 트집을 잡아 명령하듯 항의 전화를 한 게 참 놀랍더라고요. 거기에서만 끝났다면 뭐 특별한 기억까진 아니겠습니다만, 그 사건 이후로 알림장 문구 하나하나를 따지고 민원을 넣고 연락을 걸어와서 상당히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좀 더 단호하게 대처했을 텐데, 그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게 좀 아쉬워요.”

역시나 학부모와의 일이었다. 이렇게나 교실에서 애쓰는 교사들이 매번 학부모와의 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건 좀 흔한 케이스일 것 같은데.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하게 말씀하셨겠지만, 말씀드려 볼게요. 점심 시간에 학생들끼리 놀다가 시비가 붙어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어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쌍방이라고 하죠? 그런 경우였는데, 본인 자녀가 맞아온 것에 대해 학폭 신고하겠다 하시며 퇴근 시간 이후에도 연락하여 감정을 쏟아내는 분이 계셨어요. 학교폭력 신고를 하면 되는데, 왜 신고를 하겠다고 교사에게 협박하듯이 말씀하시는지는 아직도 참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분이 걸어온 전화를 못 받은 날에는 출근 전까지 끊임없이 문자로 계속 연락을 독촉하던 학부모님이시기도 했고요. 사과를 바란다고 해서 마련한 자리에서는 상대 학생 및 학부모, 담당 부장님 동석한 상황인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고압적인 말씀을 하시며 오랜 시간을 쓰셨죠. 학폭 신고를 원하시는 건지, 화해를 바라시는 건지, 그 마음은 아직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이후에는 아이의 학교생활 중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굉장히 예민해지셔서, 어르고 달래며 연락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학교폭력 건이었다. 이것도 L이 겪고 있는 사건과 매우 같은 양상이었다. 이쯤이면 기준 스스로도 학교 현장의 애로사항을 인정해야 이치에 합당한 상황이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다른 선생님도 그런 상황을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어떤 해결 방법이 있지 않을까, 교사가 대처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교실을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많은 선생님들이 고충을 겪고 계심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기준의 진심이었다. 교사 O는 알아주는 그 마음이 고맙단 듯이,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교사로서 가장 노력하시는 부분은 어떤 점이신가요?”

“음…. 참 많은 것 같긴 한데, 하하. 일단 아이들 앞에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먼저 줍는다든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화법을 항상 쓴다든지요.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제가 맡은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서 단어와 문장을 조합한 발문을 적절히 쓰도록 세심하게 조율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살피고, 적절히 개입하여, 소외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고요. 제 입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긴 민망한데, 아이고… 그런데 정말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영상을 통해 그게 보일진 모르겠어요, 흑흑.”



O의 말에 기준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시잖아요, 저 참 삐딱한 시선으로 학교 바라보던 사람인 거. 그런 제 눈에도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수업에 모두 참여하도록 신경 써 주시고, 또 미술 수업 하나에서도 발문을 세심하게 제공하면서 총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수업을 하심을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기준의 칭찬에, 교사 O와 유튜버 T는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구구, 그렇게 좋게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클로징 멘트를 위한 글을 교사 O가 적는 사이에, 유튜버 T가 귓속말로 기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작가님, 색깔이 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계속 좋은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잖아요. 제가 직접 고른 반들이니, 제가 뭐 딱히 할 말도 없고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멋쩍게 말하고 멀리 어두워진 저녁 창밖을 바라보는 기준이었다.




교사 O가 남긴 글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지켜보시면서 어떠셨는지요?

저는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던 것 같습니다.

정규 수업 이후엔 업무 및 수업 준비로 쉬지 못해 힘들 때가 많아서 퇴근 후 현관을 들어서면 녹초가 되어 바닥에 누워버릴 때가 부지기수죠. 특히 업무량이 많거나, 아이들 간의 갈등이 생기거나, 민원이 들어온 날이면 힘들어서 정말 ‘이 직업을 계속 해도 되는걸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정당한 지도에 대해서도 아동 학대로 신고를 당하고, 악성 민원이 늘어가는 현실에 열심히 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는 마음이 더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 직업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을 주는 만큼 마음을 받지 못할 때도 있고,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결국은 또 저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걸을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의 힘으로 길어지면 편집됩니다.

아이들과의 매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실 전국에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께도 진심 어린 지지와 격려를 부탁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어두운 밤길, 길을 나서며 기준은 생각했다.

2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새삼 기준은 2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이렇게나 찐한 깊이감을 주는 것인데, 그보다도 더 오래전에 학교를 다녔던 본인이 지금의 학교에 대해 잘 아는 척을 해도 되는 건지,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다른 영역에서 비유해 보자면, 이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20년 전에 근무한 회사가 현재 어떤지, 내부 상황이 이러니저러니 아는 체하는 건 논리상 맞을 리가 없었다. 이를 극단적으로 물질화된 사고로 수량화하거나 계량한다고 가정하면 더 적나라한 한계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국내 대기업 S전자의 주가에 대해 20년 전의 상황을 바탕으로 설명하면 하나마나한 소리일 테니 말이다. 당장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현재 기업에 대한 평가는 즉각적으로 달라진다. 그것을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주가이다. 주식 창을 들여보고 있자면, 정신없기 그지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종목일수록, 일분일초마다 호가창 그래프는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그런 상황에 어떤 주식 전문가가 20년 전에 S전자가 만든 구형 스마트폰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현재의 주가는 고평가되어 있다는 비난을 한다면 어떨까. 이 문장을 읽는 사람들이 느낄 당혹감만큼이나 되도 않는 헛소리일 것이다.

하물며 학교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교사가 아예 달라지는데. 지금을 살아가는 학생과 교사가 그 공간을 새롭게 채우는데. 학교 밖에서 바라보는 외관이 그대로란 이유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존재를 예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왜 세상은, 적어도 기준 본인은, 20년 전의 기억으로 현재의 학교를 재단하려 했을까.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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