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실_W의 교실
오늘의 교실 5화
#. 오늘의 다섯 번째 교실
[오늘의 교실]
ㅁ초등학교 6학년 2반
남학생 10명, 여학생 10명
담임 교사 W(20대 중반, 교직 경력 2년 차, 여성.)
학급 목표: 소중한 나, 더 소중한 우리!
‘조용한 아침이군.’
학교에 일찍 도착한 기준은 천천히 운동장을 거닐며 생각했다. 그곳에서 교실을 바라보면 창문에는 그 실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표식이 붙어있었다. 이전의 학교들과는 사뭇 다른 점을 거기에서 알 수 있었다. 이 학교는 2층까지만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로 사용되고, 3층부터는 특별실로 사용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줄어든 여파를 지금까지는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가는 학교마다 북적북적하고 떠들썩했던 탓인데, 이번에 방문한 학교는 확실히 대한민국 학생 수가 줄긴 줄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 예전엔 저 교실들도 모두 정규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이었으리라.
그렇다고 이곳이 어디 산골짜기에 있는 학교는 아니었다. 익히 우리가 잘 아는 대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학교였다. 하긴 돌이켜보면 주변에 빌딩만 가득한 이런 곳에 학생이 없는 것도 당연하겠다 싶었다. 예전에야 주택가와 상업 시설이 혼재되어 학교에 대한 수요가 있긴 했겠지만 말이다.
천천히 몇 바퀴를 돌다가 교실 정문이 이따금 등교한 학생들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반복하자, 기준은 슬슬 교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늘은 어떤 수업을 만날 수 있으려나.’
복도에서 오늘 만날 교사와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학급 수는 줄었어도 한 반에 스무 명의 학생이 소속되어 있는 것은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살펴보니, 교실 왼쪽에는 모둠 책상이 따로 놓여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보충학습을 위한 교재들이 여럿 정리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보드게임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그간 봐온 교실과는 자리 배치가 다르군. 독특해. 아무래도 젊은 교사들의 교실에 가면, 그들 나름의 톡톡 튀는 점들이 확실히 존재하긴 한단 말이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제 T님 통해 연락드렸는데, 작가 이기준이라고 합니다.”
“어머! 작가님.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차분하면서도 명랑한 어조로 인사를 하며 맞이해주는 교사 W였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오늘도 벌써 느낌이 좋아.’
또 괜찮은 교사의 교실을 선택하고 만 것인가. 어쩜 이쯤이면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에서 보편성의 문제가 아닐까, 확신이 들 지경이었다. 단순히 첫인사만으로 그리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교실의 분위기가 그랬다.
그녀의 교실엔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붙어있었다. 젊은 교사들의 특징적인 점이기도 했는데, 아이들 날것의 표현이 그대로 담긴 약속 문구, 직접 만든 듯한 시간표, 학교 일정 및 시정이 담긴 계획표 등이 칠판과 창가 여기저기에 게시되어 있었다. 거기에 당연히 아이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어떻게 보면 어지럽지만, 또 그렇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살아있는 초등학교 교실의 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등교를 함에 따라 교실의 색깔도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했다. 시끌벅적 활기찬 분위기였다. 정겹게 인사하는 모습으로 보아, 교사와 학생 사이엔 충분한 라포(rapport)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침 활동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알파벳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담임 교사가 따로 지도해주었다. 그중 한 아이는 상당히 꾀죄죄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사 W가 아이에게 어떻게 지도를 해주는지 궁금했다. 기준이 그들을 관찰하러 그 옆에 다가갔을 땐 은근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우웩,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설마 아이한테 나는 건가.’
괜히 몇 차례 교실을 도는 척하다,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냄새의 근원은 일정했다.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아이에겐 지독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저 냄새를 참아가며 아이 옆에서 차분히 지도를 해주다니. 대단하군, 정말.’
“어머, 오늘은 저보다 일찍 오셨네요.”
유튜버 T와 카메라 감독이 교실로 들어왔다.
“아, 예. 좀 서둘렀습니다.”
“오늘까지 6학년 교실 보시고, 이제 다른 곳 보시는 것 맞죠?”
T의 방송을 위해선 색다른 학년을 확인할 필요도 있겠지 싶었다. 오늘까지 고학년 교사들의 수업을 보면, 사실 충분한 게 맞았다. 같은 학년에서 이렇게 교사마다 자신만의 색깔로 충분히 괜찮은 수업을, 그리고 학급 경영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게 좋겠습니다. 다른 학년의 수업도 볼 때가 됐죠.”
“고마워요, 작가님. 오늘도 수업 분석과 선생님과의 일대일 대화, 잘 부탁드릴게요.”
1교시 수업이 수학 수업이 시작되고 난 후까지도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수업 전에 교사 W가 바삐 움직이며, 전화기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기를 반복한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때 T가 기준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 장기 결석생이 한 명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단결석이 단 며칠만 이어져도 원칙적으로는 학교에서 경찰로 신고를 하고, 가정에 방문을 하고 해야 하는데…. 담임 교사가 수업도 빼먹고 그러기가 여간 쉽지가 않잖아요. 그것 때문에 좀 힘드신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한 명이 아직 안 온 모양이네요.”
학생이 안 오면 담임 교사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왔긴 했는데. 이게 말로는 쉽지, 실제론 복잡한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T의 말대로 담임 교사가 당장 해야 할 업무는 수업을 진행하며 눈앞의 십수 명의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결석생까지 오전 시간 내에 완전히 챙기기란 가정의 협조 없이 쉽지 않겠단 걸 짐작하여 느낄 순 있었다.
수업은 구구단으로 시작되었다. 단원 자체는 ‘분수의 곱셈’이건만, 아이들은 아직 구구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구구단이라…. 원래 이게 몇 학년에 배웠어야 할 내용이지.”
기준의 혼잣말에 T가 다시 입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조용히 말했다.
“아마 2학년, 3학년 그쯤일 거예요.”
“안타깝군요. 지금 6학년인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침에 담임 교사가 알파벳 보충학습을 해주는 것도 6학년의 수준에선 맞지 않은 내용이다. 한 번 결손된 학습 내용은 쉽게 메워지지 않으니 말이다. 당연히 학교에서 기본적인 것을 해주고, 더 어렵고 심화된 것은 학원에서 배워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학습의 세계관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작 6학년이 되어도 알파벳 하나, 구구단 하나를 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반대로 이는 공교육이 무너져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기준에게 제공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쁘지 않았다. 무너짐의 원인이 자신의 편견과는 다를 것이라는 교사 L의 말을 도리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사는 분명 애를 쓰고 있다. 수업 시간 외에도 시간을 썼고, 수업 시간 중에도 뒤처진 아이들을 위해 몇 년 전에 해결했어야 하는 학습 내용을 다시 되짚어 주고 있어. 그럼에도 그 아이들이 회복되는 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온전히 교사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분석일까.’
그때였다. 전화 벨이 울렸다.
“아, 잠시 급한 전화라 다들 이해해 주세요. 지금 풀고 있던 문제를 혼자 풀고, 풀이 방법을 설명할 준비를 합니다.”
교사 W는 빠르고 짧게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하고 전화를 받았다.
“하민이 좀 늦습니다. 귀찮게 연락 그만 좀 하시고요. 애 기죽으니까 절대 혼내지 마세요.”
분명 스피커폰 모드가 아니었음에도,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교실 옆 모둠 보조 자리에서 참관하고 있던 기준의 귀에도 분명하게 내용이 들릴 정도였다.
‘이쯤 되면 학교에 화를 내며 전화하는 사람들의 발성은 다들 좋단 걸 인정해야겠어.’
“어머니…. 상황은 이해합니다만,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W가 최대한 나긋나긋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다시 수화기를 관통하여 멀리까지 퍼지는 고음역대의 거친 소리였다.
“하! 진짜 이래라저래라 좀 하지 마세요.”
교사 W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남은 수업을 진행했다. 학습에 부진한 아이들을 위한 맞춤 문제를 통해 지도했고, 잘하는 아이들은 그 수준에 맞추어 심화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이원화하여 활동지를 제공했다.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도 W는 쉬지 않고, 학습에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을 위해 피드백을 제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이번 쉬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연달아 수업을 이끌어 갈 모양이었다.
2교시 영어 수업에서도 아이들의 학습 편차는 심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중학교 수준의 영단어를 섞어가며 문장을 발화하는 등 아는 체하는 아이들도 소수 있었고, 알파벳도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아까 아침에 기준의 눈길, 아니 콧길을 끌었던 아이도 알파벳을 모르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영어 활동은 어떻게든 외워서라도 단어와 문장을 발화할 수 있도록 교사가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기에,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수준이 낮은 아이들도, 교사의 역량으로 어떻게든 성취기준 도달을 위해 끌고 간다라…. 고군분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군.’
중간놀이 시간에 W는 지각을 했던 그 아이와 상담을 진행했다. 교재연구실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창문 건너 멀리서 봐도, 아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입 모양으로 유추하자면, W가 학교에 결석과 지각을 반복한 이유를 물어보는 듯싶었는데,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말이 없고, 부모는 되려 화를 내고…. 나라도 딱히 답이 생각나진 않네.’
3교시에는 창의적 체험 활동의 일환으로, 학급 내 자리를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자, 그러면 랜덤으로 자리를 함께 바꿔봅시다.”
‘이게… 정말 의도성 없는 100% 랜덤 결정이라면 오히려 문제가 크지 않으려나.’
슬쩍 컴퓨터 화면을 보니,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교사용 모니터 화면에는 복잡한 분석표가 떠 있었다.
“어어, 이건.”
“쉿!”
W는 다급히 눈을 찡긋하며,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했다. 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화면만 잠시 자세히 봐보겠다는 손동작을 취했다.
‘정말 대단하군. 다 계획된 것이었어.’
[영어와 수학이 서툰 지수 옆: 공부를 잘하면서 옆 친구를 잘 도울 수 있는 지아]
[최근 수아랑 싸웠던 정민: 수아, 정민이랑 모두 친하면서도 둘의 화해를 조율해 줄 수 있는 선미]
[수업에 흥미 없어 하는 철진: 모둠 활동을 할 때 함께하도록 응원과 격려에 능한 수영, 민아]
아이들의 특성, 관계, 상황 등을 총망라하여 교사의 고심이 들어간 기록이 가득했다. 기준은 W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자리를 짜면 문제가 덜하겠군요.”
W는 어정쩡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길 바라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만, 쉽지 않긴 해요. 아이들이 최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매 순간 노력할 뿐이죠. 이렇게 해도 아쉬운 상황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요. 커가는 과정이니까요.”
마치 랜덤인 듯 랜덤 아닌 랜덤 같은 자리 뽑기 결과가 나오자, 아이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아싸! 민아랑 같은 모둠이다.”
“흐앙, 뒷자리야. 아쉬워.”
“난 앞자리라서 아쉬운데.”
“그래도 이만하면 정말 좋은 자리 같은데!”
기준은 그때 아까 지각하고, 교사에게 말도 안 하던 아이, 그리고 냄새가 나던 아이를 각각 바라봤다. 그 아이들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이 또한 담임 교사가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으리라.
4교시 실과 시간에는 개인의 생활 습관 및 위생 관리에 대한 학습이 진행되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의생활과 관련하여 옷을 개는 법과, 추가적으로 위생 관리를 위해 몸을 씻는 법을 다루었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다른 게 참 놀라웠다.
“아 이건 쉽지! 맨날 하는건데!”
이런 식으로 교과서 속 내용이 정말 당연한 게 아니냐는 대답도 있었지만,
“어? 이거 어떻게 한다구요? 모르겠어요.”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였어요?”
저런 식으로 생전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하더라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가정 환경은 또 서로가 다른 법이니까….’
학교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많은 이들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이 수업이 끝난 후 교사는 냄새가 나던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 몰래 불러 교재연구실로 갔다. 아마 아이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지 않았을까 싶었다.
점심시간에 교사 W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본인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야 영문을 물어보니, 아까 그 하민이라는 아이의 부모가 전화를 5분에 한 번씩 걸어대서, 한 번은 응대를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까 아이들과 수업하는 중에도 내내 전화를 걸었다고. 실은 오전 중 통화를 하고 수업에 방해가 될까 하여, 교실 내 전화기를 무음 모드로 바꿨다고도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수업 시간 내내 전화 벨이 울려서 수업을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고개를 떨구는 W였다.
아마 그렇게 전화를 안 받자 화가 나서, 교사의 전화기로 연달아 전화한 상황인 것으로 보였다.
“아니, 이건 수업 방해 아닙니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전화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러게요.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당장은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요. 일부 학교에서 아예 전화를 일차적으로 교무실이나 다른 대응팀으로 연결되게 하는 방법을 쓰긴 하는데…. 그것도 완벽한 방법까진 아니죠. 결국 쉬는 시간에 담임 교사가 응대하거나, 또는 교무실에 있는 교사가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요. 오후 업무 시간에 전화가 와도 시간에 쫓겨 답답하긴 하지만, 수업 시간 중에 이러는 건 진짜 너무한 것 같긴 해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중에도 다시 전화기는 몇 번을 반복하여 울렸다.
“에휴, 작가님. 죄송해요. 식사 어서 먼저 하세요. 어머니가 잔뜩 화가 나 있어서, 영 좋은 꼴은 못 보여드릴 것 같아서요. 좀 달래드리고 들어가겠습니다.”
기준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귀는 여전히 그 전화기를 향해 있었다. 학부모가 고함을 지르며 “우리 애가 오늘 머리가 아픈 건 알고는 있었나요?”, “애가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거는데, 왜 받질 않으세요?”, “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신경 써야죠.”라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반복하는 걸 엿들을 수 있었다.
‘본인 자녀가 아픈 거랑 담임 교사가 대체 무슨 상관이야….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어느새 교사의 입장에서 조소를 지어보는 기준이었다.
인터뷰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5, 6교시 수업의 참관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W는 모든 수업이 끝나고 바로 인터뷰를 응하기로 약속했다. 6교시가 끝난 후에는 기초학력지도가 예정되어 있었다. W는 두 아이를 지도했는데, 그중 한 아이는 냄새가 나는 바로 그 아이였다. 수업을 듣는 두 아이는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알파벳을 외우기 위해 애를 쓰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알파벳 ‘H’를 배우며 한 아이가 밝은 얼굴로 외쳤다.
“선생님! 이 글자가 우리 반티에 있는 해피에 있는 글자 맞죠? 행복!”
W는 뿌듯한 표정으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을 해주었다.
업무까지 마치어 일과가 끝난 후, 교사 W와 기준, T를 비롯한 촬영팀이 한데 모였다. 기준은 아까의 통화 건에 대해 제일 먼저 묻고 싶었다.
“대체 아까 그 어머니는 뭐가 불만이랍니까?”
“하…. 아까 하민이 어머니 건 말씀하시죠?”
W는 시선을 한참동안 천장에 두며 골똘히 생각하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전화 받자마자 ‘요즘 우리 애 머리 아픈 것 아셨나요?’라고 소리를 지르셨어요. 자주 지켜보고 있는데 겉으로는 잘 모르겠고, 말을 아예 안 하는 친구라 알기 어려웠다고 대답했죠. 어머니는 소리를 또 질렀어요. 저는 담담히 사실을 말했죠. ‘학교에서는 수업에 잘 참여하고는 있는데, 다만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걱정되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자리도 친한 친구들 위주로 배정해 주고 교사가 상시 잘 지켜볼 수 있도록 앞자리 위주로 앉게 했다. 수업과 놀이 모두 최근엔 잘 참여하고 있다.’와 같이 사실에 기반한 말들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하민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해서 머리를 아파한다고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봤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가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때문에 아픈 게 아니겠냐며 또 화를 내요. 안 그래도 왜 자기 아들을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 남겼냐고 따지더라구요. ‘또 애를 혼낸 거 아니냐, 문제 좀 틀렸다고 공부를 시킨 게 아니냐.’ 이런 말들로요.”
잠시 말을 쉬다가 찬찬히 생각을 떠올리며 입을 여는 W였다.
“언제인지 고민해 봤어요. 하민이는 공부에 어려움은 있지만 부모님께서 동의를 받지 못해서 하교 후 기초학력 지도는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부모님들 의견은 늘 똑같아요. 공부를 못하는 것처럼 편견으로 자기 애를 바라봐서 그런 거라나. 알아서 잘할 거라고요.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한 번 더 꼭 살펴보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만 이용해서 보충학습을 꾸준히 진행했어요. 그리고 하민이를 따로 남겨서 혼내지도 않습니다. 정말 피치 못 할 큰 사건, 예를 들어 뭔가 친구들과 충돌이 있었다거니 할 때는 부득이하게 어머님께 미리 연락을 드려서 지도했지요. 그래서 제가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물어보니 ‘저번 수요일에 왜 애가 늦었냐고요!’라며 날카로운 말이 돌아오더군요. 지난 수요일을 생각하다 보니 하민이와 학교 행사로 컵케익 만들기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건 하민이에게도 말했었고 부모님의 동의 서명도 받았던 행사였어요. 일부러 하민이와 하민이랑 친한 친구를 데리고 컵케익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하민이도 케이크를 꾸미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들고 갔구요. 그래서 제 나름 하민이를 위한 프로그램이었고 어머님께 동의도 받았다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니 어머님께서 아차 싶은 게 그제야 느껴지더라구요. 어머님은 횡설수설하시더니 전화를 끊으셨어요. 어느새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있고, 제 급식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급식실을 정리하시는 분위기여서 얼른 정리하고 교실로 오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휴, 괜히 말이 길어졌죠? 죄송해요. 이럴 때면 교사로서 참 마음이 아파서요.”
어느새 교사 W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기준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렇죠. 얼마 전에 찾아간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비슷한 사건들을 하나씩 겪으셨더라고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고, 정말 그건 학부모님이 무례하신 것이니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정말요, 작가님?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괜히 또 울컥하네요.”
기준은 서둘러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지금 W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젠 정말 그런 성격의 답답함을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잘해왔던 모습들, 그녀의 교실 속에서 발견한 다채로운 색깔들을 칭찬으로 담아 전하고 싶었다.
“선생님께서 매시간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보충 학습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시는 게, 정말 여간 고생이 아니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그런 방법을 교실에서 사용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가끔 학생이 변화하는 순간을 제 눈으로 보게 될 때가 있어요. 원래 관심이 없던 것들을 수업 이후에 발견하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알지 못했던 알파벳을 1년간의 사투 끝에 배워 영어를 읽으며 행복해한다든지 하는 순간들 말이죠. 수업 시간에 배운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방법을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도 사용하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요. 이렇게 학습과 생활 전반에서 아이들이 변화하고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느껴지는 때를 맞이하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와 배운 내용을 잊지 않고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며, 졸업하고도 잘 쓰고 있다는 어린이들의 연락을 받을 때, 그게 참 보람찬 것 같아요. 꼭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도 포함해서요! 그런 마음 때문에, 이렇게 교실에서 노력해 보는 것 같아요. 설령 학부모가 알아주지 못하더라도요.”
그 말에서 교실의 한계를 하나 포착한 기준이었다. 교실 속에서 일어난 일은 오직 교사와 학생만이 기억한다. 교사와 학생이 아니고서는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줄 사람 하나 없다. 어쩌면 일 년에 한두 번 교실에 찾아올까 말까, 영 거리가 먼 학부모가 교사의 모든 순간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는 건 잔혹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구나 오늘의 교실에서는 그런 점이 명확했다. 자신의 자녀를 위해 보충학습을 진행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교사를 탓하기에 바쁘지 않았던가. 정작 거기에 자기가 사전 동의를 해준 것도 다 까먹은 채로. 교사가 그나마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선 이렇게라도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게 최선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 알아주면 그걸로 족하다는 마인드 말이다.
“오늘 보니 교실에서 참 어려운 순간들이 많으실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 젊은 20대의 교사로서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나진 않으셨길 바랍니다만, 그러면서도 또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요.”
기준은 어두운색의 질문을 하나 더 묻기로 마음먹었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탓이다.
“선생님께서 겪으셨던 지금까지의 고충들, 특히 학교폭력과 관련한 어려움이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선생님. 사실 제가 지금까지는 학교폭력 문제가 학교와 교사가 게을러서 해결을 안 한다고 믿고 있던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아, 예. 죄송하고 부끄럽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 중 가장 젊으신 선생님께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여쭈어보면, 그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의견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기준의 질문에 W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전의 사건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표정으로 볼 때 사건이 한두 가지인 것은 아닌 듯했다. 많은 사건 중에 고르고 고르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폭력 문제는요. 학교폭력이 아닌 걸 학교폭력으로 말하거나, 또는 사실상 학교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악용해서 생기는 문제가 많단 생각이 들어요.”
“젊은 선생님의 눈에도요. 그러니까 경력 많으신 선생님들의 매너리즘이나 그런 경직된 생각에서 나오는 의견이 아니란 말씀이지요.”
“그럼요. 절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아픈 기억 하나를 끄집어서 말씀드릴게요. 한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내로남불’이 심하고 예민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부모는 더 심했죠. 아이는 매일 다른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교사에게 일렀어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정작 그 친구가 더 줄도 잘 서지 않고, 수업 시간에 더 자주 떠들며,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의 편견일까 싶어서 기록을 체크했더니, 정말 압도적으로 그 친구의 문제행동 빈도수가 높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울면서 다른 친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했어요. ‘네가 여기에 가방을 걸어둬서 내가 넘어졌잖아.’”
하긴 세상을 살면서도 그랬다. 블랙 컨슈머는 실존했고, 그들의 불만은 정상적인 상업 행위를 방해한다. 악성 민원인은 어떤 영역에서든 존재했고, 그들의 불만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자를 위협한다. 그게 어린이의 세계에선 없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오랜 기간 성장하기에.
“하지만 그 가방은 원래 모든 학생이 걸어두는 책상 옆에 있었고, 넘어진 것은 본인의 부주의 때문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긴 했지만요. 문제는 이제 그 사건이 부모의 심기를 건든 거죠. 아이의 어머니는 더했어요. 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곧장 제게 전하며, 매일 전화를 걸어왔어요.
‘누구 때문에 시끄럽다는데, 자리 바꾸세요.’
‘누구 때문에 힘들다는데, 걔를 다른 반으로 보내주세요.’
‘그 아이가 우리 아들 괴롭히는 것 같아요. 학폭을 당장 여세요.’
그러고는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심지어 친구들과의 대화까지 교사가 보고하기를 바랐어요. 점점 그 정도가 강해졌어요.
‘오늘 애가 무슨 말 했다던데 들으셨어요?’
‘주변 친구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던데 보셨어요?’
‘짝꿍이 괴롭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발 떼어놓아 주세요. 자리뿐 아니라 어딜 가든 마주치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같은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두 아이를 어떻게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을까요. 급식을 먹을 때도, 이동수업을 할 때도 저는 그 아이 곁을 지켜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교사의 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제게 끊임없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반 친구들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지 않도록, 또 불필요한 학폭으로 번지지 않도록 매일 애쓰고 또 애썼어요. 그러나 그건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학폭 신고 접수가 들어오면 바로 학폭 신고를 해야 했고,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도 학폭 가해자로 신고당할 수 있었어요. 그걸 이용해서 그 어머니는 협박을 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공개 사과를 하면 학폭 신고를 안 하겠다.’
‘다른 아이들이 우리 아이가 속상하지 않도록 행동 조심하겠다는 평생의 각서를 쓰라. 그러면 학폭 신고를 안 하겠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요구였죠. 그게 불가능하니, 차라리 학폭으로 정식 접수를 하도록 안내를 드리면 또 이렇게 제게 분노를 쏟아냈고요.
‘학교는 왜 그렇게 학폭 가해자들을 감싸는 것이냐.’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교사의 자질이 대체 있긴 한 거냐.’
그녀는 늘 자기 아들만을 생각하며, 아들이 워낙 똑똑하고 뛰어나서 피해를 입는 것이라 주장했어요. 다른 아이들의 잘못으로만 상황을 해석했고, 만약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교사인 나의 자질을 문제 삼았어요. 교사의 설명,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는 수용하지 않으려 했죠. 그래요, 차라리 매일 사소한 일로 울던 아이는 익숙해질 만도 했고, 아이들 사이에서의 관계 회복은 제가 어떻게든 이끌어갈 수 있었어요. 실제로 조금씩 변화하는 양상도 보였고요.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가정에서의 협력 없이는 어떤 것도 불가능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어머니의 전화벨 소리는 제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새벽에도, 주말에도, 그녀가 원하는 시간에는 제게 연락해야만 했죠.”
이따금 교사 직종의 힘든 일들을 건너 들을 때면, 편한 직장에 종사하는 주제에 징징거리기 바쁘다고 비난하는 마음을 가졌던 기준으로서는 착잡함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갔다. 도리어 자신이 써 왔던 글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커졌고, 눈앞의 교사 W에 대한 미안함도 커졌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했던 꼴이야.’
어릴 때의 기억으로 마냥 쉽게만 보였는데, 사실 쉬운 건 아니었다. 사실에 기반해서 보니 더욱 그러했다. 진상 민원인이 실존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학교에서의 악성 민원의 존재 가능성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른 직종과 달리 그 악성 민원인은 일 년 내내 담임 교사를 향해 스코프를 쪼이고 있는 저격수가 될 수도 있음이 사실이었다.
사실 또 까놓고 말해 그렇지 않은가. 학교에 들어오는 데엔 어떤 자격도 필요 없고, 부모가 되는 데에도 ‘적령기의 아동’을 낳았다는 것 외엔 어떤 자격도 필요 없다. 어느 누구든, 악인이든 의인이든, 부모가 될 수 있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교사와 아이는 옳다는 가치관을 가진 그였지만, 만에 하나라도 악인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악인이 교사를 적대시할 때의 상황이 조성된다면, 그때의 교사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제 명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서 자신이 써온 글, 모든 학교의 문제는 교사 때문이라는 논조는 파기되어야만 했다.
기준은 차분하게, 사실은 자책감으로 힘이 빠진 상태로, W에게 질문을 전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사로서 가장 노력하고 살았던 부분을 혹시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1년간 저는 어린이들에게 ‘눈치’를 가르친다고 말해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배워가고요. 주변 친구들이 좋아하는 행동을 생각해 보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배려하여 친구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피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지요! 특히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많이 봐요. 아직은 교사의 영향이 크게 다가갈 수 있는 시기라서 그렇겠지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행동을 더 자주 하려고 하고, 선생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려고 하죠. 그리고 라포가 쌓인 이후에는 저의 행동을 따라 하려고 하고, 저의 말버릇을 배우는 아이들이 관찰되어요. 그렇기에 저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어린이들이 본받을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요.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 내 기준점 하나가 어린이들의 말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늘 고민해요. 그래서 개인적인 호불호로 싫어하는 것이 있더라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최대한 어린이들이 많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교사 W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밝은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아까의 무거운 이야기가 주는 묵직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늘 생각했어요. 이 말버릇이 어린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까? 내가 단순히 이걸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게 어린이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버릇은 긍정형으로 고치고, 급식에 나온 싫어하는 음식도 한 번쯤은 먹는 모습도 보입니다. 싫어하는 것이더라도 한 번쯤 해보고요. 제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도 노력하며 해보는 모습을 일부러라도 보여줍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거울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 가능성을 믿으니까요.”
기준은 교실을 나서며 교사 W가 적어준 에세이 엽서를 들여다봤다. 아직 20대 중반, 교사로서 한참 자라나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벌써 그렇게 묵직한 사건을 겪었던 그녀가, 그럼에도 아직도 교사로서의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런 그녀가 가진 생각을 깊게 되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T에게 양해를 구해, 클로징 장면을 위한 사진만 따고, 원본을 챙겼다.
‘미안하군. 많이 미안해. 지금의 환경은….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으니 말이야.’
“만나자마자 사랑한다고 뻥치고, 이별 즈음에야 정말로 사랑해 버리는 선생님의 연애.”
인터넷에서 본 이 글이 참 공감되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3월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마음이 그만큼 뜨겁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하루의 끝은 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로 마무리합니다.
그렇게 매일 사랑한다고 외치다 보면, 어느새 정말 사랑에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되지요.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1년은 너무 즐겁고, 또 때로는 너무 괴롭습니다. 마음을 줄수록 더 깊이 상처받기도 하고, 동시에 그 마음 덕분에 더 큰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귀여워 보이고, 마음이 맞아 가는 순간 ‘우리는 한 팀이구나’라는 감각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팀이 된 아이들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가슴 아픕니다. 결국 그때가 되면 정말로 사랑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진짜 사랑의 맛을 잊지 못해, 다음 해에도 또다시 ‘사랑한다’는 작은 뻥으로 1년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마음을 주며 다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마음을 받고 치유받으며 행복해집니다.
결국 교실은 저에게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해마다 주저 없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