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실_A의 교실
오늘의 교실 3화
#. 오늘의 세 번째 교실
[오늘의 교실]
ㄷ초등학교 5학년 1반
남학생 12명, 여학생 12명
담임 교사 A(20대 후반, 교직 경력 6년 차, 여성.)
학급 목표: 함께 성장하는 우리
‘이곳이군.’
복도 끝, 햇살이 기울어 드는 창가 앞에서 기준은 잠시 멈춰 섰다. 문틈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깔깔거리는 소리 속에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속엔 다정함이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고, 함께 노는 문화가 엿보인다랄까….
‘아이들이 서로 사이가 어지간히 좋나 보네.’
그는 문 앞에 걸린 학급 현황판을 흘끗 보았다. ‘함께 성장하는 우리.’ 손으로 직접 적은 글씨였고, 어딘가 삐뚤었지만, 확실히 따뜻했다.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유튜버 T가 먼저 밝게 인사하자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사랑합니다!”
그 말이 교실 전체를 덮었다.
‘이건 뭐지?’
기준은 당혹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민망하고 낯부끄러운 문장을 낯선 사람 여럿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듣는 건, 그로선 확실히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우리 반은 인사 대신 사랑으로 시작해요.”
교사 A가 웃으며 말했다.
“5학년 1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아아—!”
교실은 확실히 이전의 교실들과는 달랐다. 붕 떠 있었다. 그 감각은 수업을 참관하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크큭, 정말 다르네요. 작가님 눈에도 귀엽죠? 5학년이라 덩치도 이미 크고, 사실 지난번에 본 6학년 아이들과 외양상 큰 차이는 없는데도요.”
“그, 그… 정말 그렇네요. 뭔가 정신이 없기도 한데.”
“곧 적응하실걸요. 저도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이게 그냥 막 질서 없이 무너져 있는 그런 교실이 아니에요. 괜찮은 소란스러움, 딱 그렇게 표현하면 괜찮은 느낌?”
그 말마따나 수업을 지켜보니, 확실히 그 안에는 분명한 규칙이나 규율이 서 있었다.
1교시, 국어 시간. 도입 자료를 보여준 후, 교사 A는 아이들의 시선을 천천히 훑었다.
“여러분, 오늘은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까요?”
아이들은 발표 기회를 얻기 위해 손을 들었다 내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방법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한 다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공부할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듯,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A는 발문을 이어갔다.
“맞아요, 여러분이 찾아낸 것처럼 ‘상대를 배려하며 조언하기’를 주제로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교사가 공부할 문제를 적는 동안,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호, 그렇게 떠들다가도, 이렇게 할 수 있다니.’
“우리는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단순히 그냥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생각하기’가 필요해요.”
“함께 생각하기요?”
“응. 상대의 말에 서로의 생각을 더해 주는 거죠.”
그러면서 A는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던졌을 때, 그 아이디어를 다듬기 위해 모둠원이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대화법을 소개했다.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라는 단위에서 더 나은 의견을 찾아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이었다.
‘학급 목표에 알맞은 수업 방법이군. 급훈이 함께 성장하는 우리였지, 아마.’
특정한 상황에 어떻게 말해야 건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지 A는 발문을 통해 물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아이들 저마다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A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해 주었다. 교과서를 활용한 기본적인 학습이 끝난 후, 모둠끼리 실제로 올바른 대화법을 사용해 보는 활동까지 전개되었다.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게 바로 ‘공동체 활동’이죠.”
기준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 단어 속엔, 교실을 바라보는 그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 비고츠키인가. 확실히 그 관점에서 칭찬할 만하군.’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이 일어난다,
그 문장의 의미를, 이 교사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교실의 문화와 생태계를 구축하며 온몸으로 가르치고 있던 셈이다.
오늘 배우는 공부할 문제가 그저 개념적 지식에만 해결이 되면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고, 상처를 주지 않게 조언을 건네는 것은 결코 피상적인 지식에서 해결되는 과업이 아니다. 다 큰 어른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지금 기준으로선, 이 프로그램을 찍는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한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부족한 언행 때문에 교사 L과 불필요한 마찰이 있던 탓이 아닌지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이는 분명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인 셈이다.
그렇기에 본 차시 주제의 배움은 더욱 삶의 영역에서 전개되어야만 한다. 삶에서 만나고, 삶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로가 상처를 주지 않는 학급 공동체의 문화를 구축하고 있어야만 하는데, 그 어려운 일을 교사 A는 능히 해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인간은 직접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기호, 사회적 관계라는 매개를 통해 배우는 것이니까. 비고츠키의 말이 직접 와닿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 이 교실에서는 그 의미를 다소나마 해득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기준은 교실 안쪽 벽을 보았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건 여러 장의 그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것으로 보였다.
“선생님 사랑해요”
“우리 선생님은 마법사예요”
“화이팅 A 선생님!”
기준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뭐랄까, 거의 팬클럽 수준인데.”
기준의 말을 들었는지, 곧장 T가 귀엣말로 말했다.
“그러게요. 이런 교실은 처음 봤어요. 전시 작품에서마저 에너지가 넘치네요.”
쉬는 시간. 수업 시간 내내 하나로 뭉쳐있던 교실은 이내 제각각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보드게임을 펴는 아이들, 노래를 흥얼대는 아이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한 학생도 관찰되었다. A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그리는 건 뭐야?”
“선생님이에요.”
“나?”
“네. 북극곰이랑 같이 있는 선생님.”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아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네.”
“응. 북극곰은 선생님만 보면 ‘킁캬’거리잖아요.”
그 말에 교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북극곰이 또 선생님 바라본다!”
“저 눈 좀 봐요, 완전 별처럼 반짝거려요, 꺄!”
A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다.
“얘들아, 북극곰 놀리지 말자.”
“저는 괜찮아요!”
북극곰이 말했다. 그 아이의 얼굴엔 장난기와 진심이 뒤섞여 있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웃으면 좋아요. 헤헤, 킁캬킁캬 댄스!”
기준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이 하나의 별명, 교사의 웃음, 친구들의 호응… 이 교실에선 모든 것이 상호작용으로 움직였다. 누군가의 말이 누군가의 웃음을 낳고, 그 웃음이 또 다른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서로 놀리고 비하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부름이 서로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그런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교육을 넘어선, 뭐라 하면 좋지. 그래, 관계의 조율, 일종의 지휘에 가까워.’
그는 수첩에 핵심적인 단어들을 적으며, 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양상을 그렇게 정의했다.
점심시간. 교사 A는 아이들이 서 있는 줄의 맨 끝에 섰다. 그녀는 아이들이 밥을 다 받을 때까지 줄 끝을 지켰다. 급식을 먹고 난 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알림장 검사를 했다.
6교시까지의 수업이 모두 끝난 후,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래도 당장의 인터뷰는 어려웠다. 아이들이 하나둘 하교한 후에는 그녀가 책임져야 할 업무를 처리해야 했던 탓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복도 끝까지 이어지는 웃음의 잔향을 느낄 수 있었다. 교실에는 학생들과 교사가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문화를 공유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식물들이 여럿 보였다. 업무를 마무리한 A의 얼굴엔 시원한 표정이 가득했다. A는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말했다.
“매일매일이요, 사실 근무자로서 따지면 전쟁 같아요.”
그녀의 눈가엔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근데 또 아이들이 나를 웃게 만들어요. 하루에 몇 번이나 ‘선생님 사랑해요’ 하니까, 이 자리가 그냥 그런 자리이겠거니, 그러려니 하며 지낼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교직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순간도 그런 장면들이거든요. 하루는 급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복도 저 멀리서 두 아이가 제가 오는 걸 확인하고 있었어요. 왜 교실에 안 들어가냐니깐, 저랑 같이 가려 그랬다고 크게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런데 교실에 도착하니 불도 다 꺼져있고 조용한 거예요. 대체 뭐지 싶었는데, 저랑 같이 교실로 온 아이가 나지막이 문을 열어주라고 말했어요. 문을 열자, 폭죽이 팡! 앞문에는 형형색색의 파티커튼이 장식되어 있더군요. 그러더니 온 교실이 떠나가라 ‘스승의 은혜’ 노래가 울려 퍼졌어요. 스승의 날도 아닌, 그저 평범한 겨울 어느 날 있던 일이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준 편지들과 롤링페이퍼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 추억 조각들이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아이들과의 추억 조각…. 그리고 역시 오늘 수업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교실이 정말 살아 있더군요.”
“맞아요, 살아있어요. 작가님도 느끼셨죠? 신기해요. 교실 자체가 하루하루 성장하며 변하는 느낌이에요. 아이들의 표정, 몸짓, 말 하나가 수업의 온도를 바꾸어 가고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다 다시 말을 이었다.
“비고츠키가 그런 말 했잖아요. ‘배움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저는 그걸 믿어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서, 또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공동체의 영역을 인식할 때, 그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려요.”
그녀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순간 교실 뒤편에서는 청소 도구함에서 빗자루나 쓰레받기가 떨어진 건지, 우당탕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모두가 뒤로 시선을 던질 때, 기준은 창밖도 함께 바라봤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해가 조금은 길어져 있었음에도,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던 지금이었다.
“가끔은 지치지 않나요?”
“지치죠.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걸 보면, 조금 덜 힘들어요. 그리고 요즘은 제가 아이들한테 더 배우는 것 같아요. 교직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동시에 저희 반이 자라나는 모습 속에서 ‘뭔가 되긴 되는구나.’ 이 생각으로 버틸 힘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기준은 노트를 덮었다.
“적은 경력의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아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고 놀라웠습니다. 오케스트라단을 이끄는 지휘자 같은 느낌이 들었고요. 확실히 젊음에서 나오는 특유의 친화력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만, 단순히 그 때문은 아니었어요. 뭐라 표현하면 좋죠, 그….”
“진심 어린 애정? 맞죠? 호호.”
기준이 적절한 표현을 찾는 사이, 유튜버 T가 끼어들어 말했다. 적확한 표현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어울리는 말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정을 넘어선, 하나의 끈끈한 덩어리를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하핫.”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넘치는 교사라면, 어떤 아이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도록 잘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사회 탓이나 하며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교사 L과는 색깔이 확연히 달라, 기준은 교사 A가 더욱 멋지게 보였다.
“이런 밝은 선생님이시라면 괜히 학부모와 충돌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도 없겠군요. 전에 만난 어떤 선생님들은 너무 공격적이어서 피곤하던데요. 이젠 학부모 핑계를 대면서 책임감을 덜기 위해 개인 연락처도 공개하지 않고 그러더라고요.”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뱉은 진심에, 교사 A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에? 제가 긍정적이든 그렇지 않든, 방금 작가님이 말씀하신 ‘충돌’의 단어가 의미하는 종류의 사건들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말씀하신 개인 연락처 공개를 안 하는 변화는 정말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요.”
“아…. 그렇습니까.”
기준은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어도 역시 젊은 교사는 젊은 교사인가, 괜히 실언을….’ 싶어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과 이 정도로 사이가 좋은 교사라면 교직에 대한 불만이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당연히 학부모와도 사이가 좋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그의 편견을 완전히 깨트렸다.
“첫 담임을 맡았던 시절이에요. 저희 반 아이의 아버지가 제 개인 연락처로 갑자기 전화를 걸더라고요. 학교에 찾아와서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기준은 다시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학교를 찾아온다니, 대체 무슨 일일지 궁금함도 컸습니다. 걱정도 됐고요. 당일 오후 바로 아버지를 만났어요. 교실엔 저 혼자이다 보니, 무서운 마음도 솔직히 있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보니, 그건 다 쓸데없는 걱정이라 생각하고 아버님과의 상담에 다시 집중했어요.”
T와 기준도 A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이는 반에서 얌전한 남학생이었거든요. 어떤 일 때문에 찾아온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일로 왔는지 물었죠.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어요. ‘제 와이프 되는 사람이 종교에 빠져서 이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더군요.’ 의외의 이야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의 상황이 걱정되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어요. 아버지는 자녀의 이야기를 잠시 하더니,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제가 듣기에 민망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니다. 아이가 걱정이 되어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했지만, 그 아버지는 어느새 제게 다 큰 두 성인의 관계에 기반한 ‘이혼 상담’, 거기에 ‘부부 관계 상담’을 제게 요청하고 있더라고요.”
듣고 보니 묘했다. 교사가 학부모와의 상담을 피하지 말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런 부류의 내용이라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직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기준은 아이와 관련이 있는 일이니 마땅히 담임 교사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당위성까지는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학부모로서는 교사에게 의지하고 싶을 수도 있는 거고, 아이의 삶과 연결된 부분이니까요.”
기준의 말에 A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쉽게 생각하면 그렇죠. 막연한 말로는 그게 맞는 것처럼 들려요. 하지만 저녁에 전화를 하고, 주말에도 연락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가정 내 문제를 끊임없이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매년 있더라고요. 그건 교사의 역할이 아닌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교사가 아닌 어떤 직업 종사자도 그렇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 의무는 없어요. 의무는커녕 오히려 거기에서 보호받아야 하죠. 어떤 사람들은 젊은 교사들이 뭣도 모르고 이런 식으로 상담을 안 하려 한다고 비판하지만, 전 그 말은 옳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최대한 대화하고 소통하려 노력했지만, 반대급부로 찾아온 어려움이 너무나 컸어요. 물론 지금은 개인 연락처를 저도 공개하지 않아요. 이 부분은 진심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그러지 않으려 한 게 아니라,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했던 사람도 이렇게 생각이 달라질 정도로 과도한 요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A의 긴 설명을 듣고, T는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하긴, 생각해 보면 한 명의 선생님이 수십 명의 학생들, 그리고 그 학생들의 보호자를 위해 개인 상담을 해주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겠네요. 굳이 선생님한테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제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그런 건가….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그…. 선생님이 너무 고생이 많으시단 건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상담에 대한 의미를 다시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준이 할 수 있는 말은 딱 그 정도였다. 사실 많은 걸 느꼈지만, 차마 지금은 입 밖으로 표현할 순 없었다. 불과 몇 달 전에 학부모와의 소통을 피하는 요즘 교사들의 실태에 대한 비판을 글로 썼던 본인인지라, 지금 마주한 상황에서 떳떳하지는 않은 탓이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현상은… 결국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 마음으로 다시 질문을 떠올렸다.
“혹시… 그 밖에도 교직에서 힘든 일이 또 있었나요?”
“헤헤, 물론 있죠. 제 교직 인생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어느 한 해 고학년 학생들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고학년 담임 교사를 경력에 비해 여러 번 맡았던지라, ‘다들 어렵다고 말하는 고학년이랑 상당히 잘 맞는데!’라는 자부심도 있었었는데요. 그때의 경험은 ‘내가 앞으로 고학년 담임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무거운 고민이 생겼을 정도로 힘든 한 해였습니다. 사건은 1학기 중반, 몇몇 남학생들이 무리 지어 놀기 시작하며 시작되었어요. 고학년 학생들이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거야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저의 할 일은 그 아이들이 바람직한 또래문화를 만드는지를 지켜보고 필요할 때는 개입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예방 차원으로 수시로 학교폭력예방교육과 고학년에 맞는 인성교육을 진행하는 건 물론이었지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방과후 모여서 몰래 형성한 또래문화는 ‘공부 못 하는 친구 무시하기’, ‘시험점수 비교하기’, ‘무리 내에서 서로 돌아가며 왕따 시키기’와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들은 반 분위기를 크게 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담임 교사로서 온갖 것들을 해 본 것 같아요. 쉬는 시간, 급식 시간 등등 모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개인 상담, 집단 상담, 인성교육, 모든 교육 활동을 다 적용했죠. 하지만 저의 노력에도 그 아이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기준은 또다시 뜨끔했다. 학생들의 문화를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힘쓰고 노력해야 하며,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교사들은 퇴출이 되어야 한다는 글을 쓴 게 세 달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반 아이들은 그 남학생들 무리와 그 아닌 무리, 두 그룹으로 크게 나뉘었습니다. 그 아이들과 섞이지 않는 무리들은 그 남학생들의 말과 행동이 싫어 피해서 놀기 시작했더라고요. 또래문화의 무서운 점은 무리에 한 사람이라도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도 쉽게 휩쓸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육하고 상담해도 무리 안에서 자정작용이 안 되어 같은 행동들이 되풀이되었습니다. 한 학생 한 학생을 상담해 보면 바로 잡힐 것 같기도 하고,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도 않아요. 괜찮은 면이 분명 있기에, 조금만 힘쓰면 다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어요. 하지만 결국 아이는 자신의 문화를 공유하는 무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 나쁜 시너지를 내는 건 막을 수가 없어요. 이미 아이들에게 우선 순위는 또래이기 때문이에요. 작가님도 교육학에 대해 연구하시니, 아마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그 나이대의 우선순위는 이제 부모나 교사가 아니라 또래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니까요. 자신이 선망하는 무리에 속해있기 위해서,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나쁜 행동도 서슴 없이 할 수 있게 되지요. 저는 매일매일 스트레스가 쌓였고, 급기야는 주말에도 업무용 가방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을 흘리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너무 망가져 있구나. 그걸 자각한 순간 가족들과 동료 교사들에게도 나의 힘듦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저는 치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학교에서의 삶과 개인적인 저의 삶을 분리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 자신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그해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해 저를 자책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졸업식 날까지 마음이 크게 다친 친구들이 없고, 별다른 사고가 안 일어났음을 칭찬하고 싶어요. 고맙게도 저를 제일 힘들게 한 그 무리의 아이들을 빼곤, 다른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 덕분에 6학년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 ‘공부를 꾸준히 재밌게 할 수 있던 건 선생님 덕이다.’, ‘우리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와 같이 마음을 담은 편지를 빼곡히 써서 보내줬거든요. 졸업식 땐 심지어 서프라이즈 파티까지 열어주더군요. 그 덕에 그 해 졸업식은 정말 후련했습니다. 적어도 제 노력을 알아주는 아이들에겐 그 시간이 헛되지 않고 무언가가 남을 수 있던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A의 얼굴엔 조금은 슬픈 빛이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통해 곧장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건, 그 무리의 아이들은 절 나쁜 교사로 기억한다는 거죠. 학기 중에도 계속 뒷담화를 하고, 방과후에 저에 대한 욕을 하고 그랬거든요. 그걸 다 알면서도 교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명확한 해결책이 없었어요. 웃긴 건 절 욕하는 그 아이들이 정작 제가 제일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노력을 기울인 아이들이라는 점이죠. 제 노력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 게 참 아이러니했어요. 교사로서 교실 공동체를 지키며 아이들 모두를 사랑으로 대해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누군가에겐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아픈 경험도 하나 배워간 셈이죠. 그래도 다시 그해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아요. 충분히 아프고 힘들었어요.”
고작 몇 년 사이에 많은 경험을 했지 싶었다. 어쭙잖은 말로 더 이상 그 상처를 건들고 싶진 않았다. 그간 교실 밖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들에 대해 담담히 배우고 기록할 뿐이었다. 교사가 말하면 바로 듣고, 교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거의 교실이 아니라는 걸 한 어린 교사의 고백을 통해 직접 확인한 오늘이었다.
그래, 뉴스로 간혹 접하긴 했다.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런데 그런 건 능력없고 무능한 교사들이 당하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오죽 능력이 없으면 그러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교육의 현장으로 교실 속 학생들을 진두지휘하는 능력 있고 명랑한 교사도 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실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을 대면하게 된 셈이다.
‘교사 L이 괴상하고 건방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오해였으려나. 조만간 그와 연락을 주고받아야겠어.’
자신의 생각에 오해가 있었다면, L에게 쌓인 오해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도 괜스레 미안해졌다.
몇 가지 질문을더 주고 받으며 촬영을 마쳤다.
교사 A는 학교를 나서며 지도서와 교과서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건 왜 챙겨가십니까?”
기준의 물음에 A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업무 처리하느라 시간이 다 갔으니, 집에서 수업 준비해야죠.”
“어머, 그럼 잔무(殘務)를 집까지 가져가시는 거예요?”
T의 호들갑이 이어졌다. 교사 A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다들 그러세요. 어차피 수업 준비를 이유로는 보통 초과근무 신청을 받아주지도 않는 데다, 초과근무 자체도 사전에 미리 결재를 받아놔야만 인정이 되는 근무 환경이라서요. 그런데 뭐, 다 됐고. 제 성격상 집에서 준비하는 게 편하기도 해서 괜찮아요.”
A의 설명에도 T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아휴! 저희 촬영 때문에 그런 거죠. 어떡해요. 어서 쉬셔야 하는데.”
“아뇨, 아뇨! 정말 정말 괜찮아요, T님. 원래 종종 집에서 수업 준비를 합니다. 걱정은 마세요, 하하.”
그래,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겨우 끝낸 업무 이후에는 다시 그들의 본업이 남아있다. 수업 준비. 다음 날 진행해야 하는 여러 과목의 수업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기준은 교문에 서서 오후 7시 30분을 넘긴 시각을 가리키는 대형 시계를 멍하니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교사들은 매일 적어도 두세 개, 많으면 대여섯 개의 과목과 그만큼의 차시에 해당하는 수업을 준비해야 함을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만난 A뿐 아니라, 그간 만난 교사들은 소위 계기 교육이라 불리는 범교과 교육을 제외하곤, 모두 교육과정에 있는 내용 요소와 성취 기준을 충족시키는 수업을 잘 이행했었다. 그렇다면 그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분명 확보되어 있어야 할 텐데, 오후 6시에 수업 외의 업무를 끝낸 교사 A는 초과근무 신청도 못 한 채 저녁에서야 간신히 수업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좋은 수준의 수업을 요구하면서, 정작 좋은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건데. 이게 맞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직업 종사자에게 이 상황을 비유적으로 적용해도, 이해되지 않는 모순이 중첩된 상황임이 분명했다.
촬영이 끝난 후, 방송 클로징 장면을 위해 A는 엽서에 짧은 글을 써주었다. 짧은 시였다.
눈맞춤 — 교사 A
우리의 학교는 눈맞춤으로 시작한다.
너의 아침은 어땠니.
우리의 수업은 눈맞춤으로 이어간다.
우리는 마주보기도 하고,
같은 곳을 보기도 하며,
그렇게 함께 세상을 알아간다.
우리의 학교는 눈맞춤으로 끝난다.
나를 빼곡히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들이
밤하늘 속 별들이다.
엽서를 건네줄 때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쌓아온 날들의 무게였다. 기준은 말없이 엽서를 받아 들었다. 교실 문틈 사이로 십자수 실 마냥, 조그맣게 남은 햇살 몇 가닥이 탁자 위 엽서에 닿았다. 그 빛 위로, 그녀의 마지막 말이 겹쳐 들려왔다.
“저희 교실은 그렇게 다 같이 배우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도, 저도요.”
기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오늘의 교실은… 정말 살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