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2
2-2. 기간제 교사로서의 하루
2-2. 기간제 교사로서의 하루
호들갑을 떨거나 과장해서가 아니라, 진짜 무너진 학급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던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진짜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고 1교시가 되어도 안 들어오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교사용 의자를 가져가서 보건실에 가져다놓기도 했고요.
교사가 보관한 물건을 훔치기도 했지요.
첫 번째 주말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닉에 빠졌었습니다.
울음만 나오더라고요.
다 큰 남자가 무슨 아이들 장난친 걸로 울음이냐 싶을 수 있겠습니다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교실을 대면했을 때의 충격이 얼마나 크던지요.
학교나 교실을 '어린이 vs 성인'의 관점으로 보시면 그 실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네 교실을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원 vs 수업을 망가트리는 구성원'으로 보시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관점에서 수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학생들이 필요했어요.
첫날부터 살펴봤을 때 그 학급에서 교사와 함께 수업을 만들 수 있는 아이는 단 6명이었습니다.
[2015년 11월 3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오늘도 너무 힘들었다.
이건 나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담임 교사가 병가로 쓰러져 교체되었어도 변함 없는 학급.
이미 썩을 대로 썩은 끔찍한 교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 것이다.
다시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그 아이들 중 교실을 다시 올바로 세울 수 있는 친구들은 몇 명이나 있을까.
제일 앞 줄에 앉아있던 6명의 여자 아이들.
그 아이들이 우선은 전부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눈빛은 죽어있었다.
뒤에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영향력이 너무 셌고,
다른 반에서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잘 해나갔을 그 아이들은 한껏 기죽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살리는 게 먼저다.
그 때의 기억으로 두 번째 주 첫날부터 전 자리를 전면 교체했습니다.
자리가 붙어있든 떨어져있든 이미 질서가 무너진 아이들은 자기들 멋대로 행동할 것이기에,
그 친구들도 마음대로 붙어 앉게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선은 수업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그 아이들을 뭉쳐놓았습니다.
한 줄로 퍼져있던 아이들이 각 모둠에서 다른 아이들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그 아이들끼리의 안식처를 모둠 자리를 통해서라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학교나 교실에서라면 충분히 멋지게 꿈을 펼쳤을 아이들이 죽은 눈빛으로 있는 것을 보고만 있긴 힘들었거든요.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날씨: 비]
비가 온다.
그리고 교실의 분위기도 더욱 흐렸다.
중간놀이 시간 동학년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한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구석에 몰아넣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나쁜 장난을 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자마자 아이들이 우루루 흩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장난이라면 나를 봤어도 지난 몇 년간 그래왔듯 보는 척도 안 하고 자기들 의지대로 행동했겠지.
뭔가 숨겨야 할 일이 있던 것이었으리라.
아이들에게 물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내 생각엔 누군가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있던 것 같은데?"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서열 2위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어떻게 대답해요."
더욱 느낌이 확실하게 왔다.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말해야만 한다. 오늘 이 일은 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자기 스스로 말해서 이 일을 바로잡든지, 끝까지 말 안 하고 나와 오늘 결판을 보든지 하자."
10초를 셌다.
3, 2, 1.
시간이 끝나기 직전 학급 내 서열 1위 은빛이가 손을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범인이 자수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전교 싸움 1위인 아이가 손을 들었고, 전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참 민망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언변이 타고났습니다. 하핫.
진심을 다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진심을 다해 말하면 어떨까요.
한 번 해보았습니다.
이럴 때 써봐야죠, 그런 능력.
전교 서열 1위 은빛이를 교원연구실로 데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은빛아. 네가 싸움도 잘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것도 잘 알아. 그래, 그건 너의 장점이야. 하지만 지난 일 년을 돌이켜봐. 너의 장점을 넌 어떻게 썼니? 너가 만든 우리 반의 분위기는 어떠니? 지금 우리 반은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무너져있어. 나 이런 반 처음이야. 순회교사하면서 지금까지 열 곳이 넘는 학교를 가봤지만, 이렇게까지 끔찍하게 서로가 상처받은 반은 처음이야. 너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우리 반에 좋은 영향력을 주길 바란다. 담임 선생님도 바뀐 김에, 나와 같이 좋은 반을 만들기 위해 힘썼으면 좋겠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의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남은 그 시간을 넌 어떻게 쓰고 싶냐."
믿기지 않을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은빛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미안해요, 선생님."을 몇 번이나 거듭해서 외쳤습니다.
앞으로 잘해보겠다고 외쳤습니다.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습니다만, 놀랍게도 그 이후 남자 아이들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제가 말하면 듣기 시작했고, 제 발문에 응답하여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수업이 가능해지더군요.
그리고 남자 아이들이 수업을 만드는 편에 서기 시작하자, 원래 그 의지가 있었던 그 여자 아이들 6명의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그 6명의 아이들과도 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다른 여자 아이들, 정확히 표현해보자면 그 6명의 아이들을 무시하고 깔보던 여자 아이들과만 놀았던 남자 아이들이었거든요.
일종의 계급화 현상이었겠지요.
그렇게 학급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살았다 싶었습니다.
1학기 담임 선생님이 쓰셨던 수백 페이지의 내용에 있던 '대놓고 무시하고 괴롭히는 행위들'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학교폭력 처리 과정으로 진행을 해도 결코 끝날 수 없던 갈등의 연속도 서서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런 단계에 접어들자 여러 아이들이 제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처음 자기 잘못을 인정한 은빛이의 사과와 변화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겠죠.
전학을 간 은빛이는 자기가 선생님 덕분에 달라졌고, 전학 간 곳에서 공부 1등도 하고 있다며 문자를 보내줬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 파견을 마무리하고 교육청으로 돌아갈 때 현정이는 제게 고맙다며 이별 선물로 행운의 팔찌를 선물해주었습니다.
기간제 교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담임 선생님은 상처를 받고 병가를 내신 이후였고,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갔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임시로 봉합했지만 교실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아프고 다쳤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아 학생 한 명의 변화로 여러 변화가 연달아 일어난 것이었지만, 그 행운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일어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 학급의 담임 선생님은 수백 페이지의 상담 자료를 만들었을 정도로 아이들을 꾸준히 사랑과 애정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상담 기록을 보고는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전 그렇게까지 꼼꼼하거나 세심하진 못해요.
그런데 그런 선생님의 헌신에도 반 년의 시간동안 아이들은 안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그렇게 여러 학교를 다니며 배웠습니다.
교사의 역량, 노력과 교실의 상처는 반비례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
훌륭한 교사가 자리에 있어도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원이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좋은 교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짧은 기간, 지금 돌이켜봐도 생각보다 참 많이 성장한 기간제 교사로서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