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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구멍 Dec 30. 2022

2022 좋았거나 나빴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뽑은 <내맘대로 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 X

  섹스와 욕망 그리고 살인과 공포, 거기에 훔쳐보기의 쾌감까지. 무료한 일상을 일깨워줄 자극적인 쾌감을 종류별로 담아놓은 종합 선물세트. 취향에 따라 영화에서 바라는 바는 모두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암울했던 2022년, 뭔가 강력한 자극이 필요했던 나로서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최우수 드라마 : 렛 미 인 시즌1

  라면 1인분을 끓이는 것과 10인분을 끓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드라마로, 그것도 시즌을 거듭하는 길고 긴 호흡으로 늘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 여러분이 맛 본 10인분짜리 라면이 맛이 없던 이유는 1인분 레시피에 단순하게 물과 스프만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럼 뭘 더 넣어야 되느냐고? 이 드라마를 보면 안다.     


최악의 리메이크 : 굿나잇 마미 / 헬레이저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아마존 스튜디오와 훌루의 활약에 보내던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모조리 돌려받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마존과 훌루가 OTT 시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약진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최고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최우수 여우주연상 : 프레이 / 파이어하트   

  좋은 영화는 관객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법이다. 언제까지 여성은 무기력한 먹잇감이나 희생양으로 묘사되어야만 하는가. 왜 소방관을 가리키는 영어단어는 fireman 만 있고 firewoman 은 없는 것인가. 행여 이 질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봐 <프레이>의 앰버 미드썬더는 관객의 정수리를 향해 손도끼를 날리고 <파이어하트>의 조지아는 하품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향해 소방호스로 물을 뿜는다. 이래도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거냐고.

     

최우수 블랙코미디 : 슬픔의 삼각형 

  무덤에 잠든 마르크스도 이 영화를 보면 벌떡 일어나 배꼽을 잡을 지도 모른다. 오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 계급들이 흔들리는 초호화 크루즈 안에서 추풍낙엽처럼 뒹굴며 구토를 쏟아내고 똥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설국열차>와 <기생충>이 보여준 풍자와 파국은 애교수준으로 느껴진다.   

  

최고의 OST : <아이 원트 유 백> Suddenly Seymour 

  영화를 보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배우들의 노래솜씨에 깜짝 놀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니 슬레이트는 <어메이징 메리>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사랑스러운 여배우 중 한 명이었는데 심지어 노래까지 잘 할 줄이야! 워낙 유명한 곡이라 유튜브에서 온갖 커버 버전을 다 찾아 들어봤는데 가창력은 차지하고 사랑에 상처받은 절절한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제니 슬레이트 버전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PPL : 카발란 / 팹스트 블루 리본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이후 카발란 위스키는 매출이 전년대비 400% 이상 뛰었고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에서는 주인공인 잭 에프론 보다 팹스트 블루 리본 맥주가 더 많이 등장한다. 영화도 역대급, PPL도 역대급.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상 : 크라임스 오브 더 퓨쳐

  내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게 열광했던 건 80년대까지였던 것 같다. B급 감성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창의적인 그로테스크함으로 무장한 크로넨버그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부터 그의 영화는 너무 난해하거나 너무 기괴하거나 혹은 그답지 않게 얌전하거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크로넨버그 특유의 신체변형 쾌감과 대중적인 재미를 동시에 잡았던 <엑시스텐즈> 이후 자그마치 23년 만에 본격 바디호러로 귀환하는 작품이라 잔뜩 기대를 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내년이면 80세에 접어드는 이 거장은 대중과의 소통 따위는 비고 모르텐슨의 배를 갈라 꺼낸 내장과 함께 믹서기에 갈아 드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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