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 랑과 나의 사막>
1. 짐을 쌀 것.
천선란 작가는 알고 있다. 사막을 건너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안 된다는 걸.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막은 횡단은 커녕 사막에 관한 글을 쓸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자격이 생존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2. 부딪치고 망가질 것.
사막에는 길이 없으므로 내가 직접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폭풍을 막아줄 집도, 갈증을 채워줄 우물도 사막에는 없다.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롯이 나 혼자 부딪치고 망가져야 한다. 부딪칠 때마다 느껴진 충격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몸속의 한 곳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질 테지만 결코 뒤 돌아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길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3. 울지 말 것.
홀로 사막을 건너다보면 주먹만 한 알갱이가 당신의 가슴속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천선란 작가가 율음 덩어리라고 이름 붙인 이 알갱이는 당신의 몸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머지 당신 속을 할퀴고 물어뜯어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겠지만 끝까지 참고 버티기 바란다. 천선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4. 그리워할 것.
한때 당신을 뜨겁게 달구던 감정들 – 사랑! 질투! 원망! – 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데간데없이 증발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졌다고 좌절하거나 사막을 건너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겐 적어도 그리움이란 감정은 남아있을 테니까. 다른 감정들과 달리 그리움이란 못된 감정은 시효가 너무 길어서 종종 인간을 하염없이 가라앉게 만들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면 당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계속 생각하고 그리워하면 된다. 과거든 마래든 사후세계이든 당신이 원하는 지점이 어디든 간에 그리움이 결국 당신을 데려다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