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BETWEEN DAY AND NIGHT
* 이 글의 모티브는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에서 빌어왔음을 밝힙니다.
WHY?
불빛은 크기에 상관없이 왜 언제나 짐작보다 따뜻한 걸까. - 편혜영 <선의 법칙> 중에서
빛 이전에 어둠을 먼저 생각한다. 이 정 작가가 한때 바다건너 영국 땅에서 홀로 견뎌야했을 어둠의 무게와 추위에 대하여. 나는 잘 알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대한민국의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그녀와 MSN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대화창에 불빛을 깜빡이고 있던 사람이 오직 나뿐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유학 시절 언어가 갖는 한계성을 고민하”고 “언어 이면에 깃든 공허함을 마주한 그녀”가 “텍스트를 이미지화하기 위한 도구로 네온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화창에 반짝이는 불빛조차 간절할 만큼 그곳은 많이 춥고 어두웠을 테니까.
LOST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자들에게 불빛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 정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 아포리아(Aporia) 시리즈를 ‘사랑’이라는 난관에 부딪힌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볼 때마다 막다른 곳에 다다른 절망 대신에 깊은 밤 망망대해에서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나침반 삼아 방향키를 움켜잡았을 누군가의 심정을 떠올린다. 그 별은 너무 멀리 있어서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남긴 한 줄기 불빛이 이제야 지구에 닿아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사라질 수만 있다면.
YOU
불빛과 달리 목소리는 공허하다. 생각만큼 멀리 가지 못할뿐더러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불빛은 아주 멀리 그리고 오래 간다. 만약 우리가 빛이 될 수만 있다면, 그 빛으로 당신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만 있다면 당신은 그 한 마디를 평생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이 몇 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래전에 소멸해버린 행성의 잔재인 것처럼.
그러므로 이 정 작가의 모든 작품은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닌 아주 멀리 떨어진 관객들에게 유효하다. 목소리가 아니라 불빛으로만 대화가 가능할 만큼의 거리. 만약 그녀의 작품에 유효거리가 있다면, 나는 일만 광년쯤으로 하고 싶다. 당신이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그녀가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는 늘 짐작보다 더 따뜻할 테니까.
AWAY
그리하여 그대 마음은 오늘도
아주 먼 곳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