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음악다방] From heart, to keys, to ears
미치도록 이비사IBIZA 섬에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민 반 뷰렌 Armin van Buuren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번 돈을 긁어모아 그가 이비사 클럽에 출연하는 스케줄에 맞춰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끊고, 스테이지 위에서 그가 직접 디제잉해주는 138bpm을 넘나드는 트랜스 비트에 맞춰 밤새 몸을 들썩거리다가 해가 뜨면 음악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모르는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죽음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명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젊은 날의 한순간을 가장 뜨거운 방법으로 불사르는 길이라 믿었다. 어리석게도.
물론 내가 이런 꿈에 빠져 살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아침에 출근하면 CF BGM으로 써달라고 음반사에서 보내주는 다양한 장르의 신보 CD가 비매품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채 내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이던 시절의 일이다. 트랜스라는 장르는커녕 EDM이나 일렉트로니카라는 단어조차도 테크노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던 시절이었기에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아민 반 뷰렌을 보기 위해 이비사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남들 앞에서 떠벌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 이제야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 오만함은 CF 프로듀서라는 명함을 달고 살았던 젊은 날의 치기어린 우월감의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던 내 젊은 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처럼 아민 반 뷰렌도 어느덧 트랜스씬의 최고참, 아니 한물이 가도 한참 지나버린 노땅 중에 노땅이 되어버렸다. 오직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그의 신보나 싱글들도 이제는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에서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가 팬들을 향해 직접 남긴 편지까지도.
ARMIN VAN BUUREN – PIANO
Released: October 31st, 2025 on Armada Music
I happily bring you ‘Piano’, my most personal album to date: a 15-track self-composed piano album. Each song was recorded in one-take in Dolby Atmos. The album releases October 31 exclusively on Apple Music.
여러분께 제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 ‘피아노’를 예정대로 들려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피아노’에는 제가 직접 작곡한 15곡의 피아노 연주곡이 들어있으며 모든 곡은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사용해 원테이크로 녹음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2025년 10월 31일부터 오직 애플뮤직을 통해서만 들으실 수 있습니다.
This project is something I’m sure many of you didn’t see coming, and to be honest, I wasn’t sure if I wanted to share it at first. It wasn’t dance music. No beats, no drops, only raw emotion. So I kept these songs for myself. But after recording the album with the strings section at ConcertLab in Utrecht, I knew this was something special to release.
많은 분들이 실현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여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여러분과 공유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했으니까요. 이건 댄스 음악이 아닙니다. 비트나 하이라이트 구간도 없고 오직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만 존재하는 노래들이죠. 그게 저 혼자만 이 노래들을 간직하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있는 콘서트랩에서 현악기 세션들과 앨범을 녹음하고 나서 이 엘범에는 여러분과 함께 나눠야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It’s not a step away from dance music, but it’s a different side of me.
그렇다고 제가 댄스음악을 아예 손절하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런 노래들도 저의 또다른 일부분이라는 걸 알아달라는 거죠.
‘Piano’ is the most honest music I have ever made, stripping away all the beats and focusing on the strength of each note. Together with my piano teacher, Geronimo Snijtsheuvel, we shaped my vision into 14 original compositions and 1 interpolation.
‘피아노’는 지금껏 제가 만들었던 음악들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앨범입니다. 제 피아노 선생님이신 Geronimo Snijtsheuvel와 함께 지금껏 제가 즐겨 사용했던 비트들은 모조리 덜어내고 오직 음표 하나하나가 가진 본연의 힘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14곡의 자작곡과 1곡의 변주곡에 담겨있습니다.
From heart, to keys, to ears,
그런 제 진심이 피아노 건반으로, 당신의 귀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며
Armin
아민 올림
맙소사, 아민 반 뷰렌의 피아노 연주앨범이라니! 앨범의 플레이버튼을 누른 채 악보 속 음표를 읽어내려가듯 한 글자 한 글자 그의 편지를 번역하며 읽어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독한 술 냄새와 비릿한 땀 냄새, 화려한 조명 사이로 밤새 팔을 들어올리고 춤을 추는 이방인들의 겨드랑이 냄새로 가득 찬 이비사의 어느 클럽 안에서 가장 빛나고 높은 스테이지에 올라가 쉴 새 없이 두 손을 움직이며 현란한 비트의 트랜스 음악을 디제잉해야 할 아민 반 뷰렌이 클래식 피아노 앞에 다소곳이 앉아 피아노 선생님의 조언과 악보 속 음표 하나하나가 그에게 전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주 느린 속도로 흑백의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누가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아민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 들어갔다. 모든 곡을 원테이크로 녹음했다는 그의 말처럼 원테이크로 촬영된 동영상 속에서 얼굴에 부쩍 주름이 많이 늘어난 아민이 현악기 세션 연주자들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때로는 꿈처럼 믿기지 않는 일도 종종 현실이 되곤 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