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처음 접한 이야기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

by 한신자

나는 이야기에 '중독되는' 성향이 있다.

중독된다는 말은 말 그대로 한 번 이야기에 빠지면 그것만 봐야 한다. 더불어 금단현상도 있다. 소설을 다 보고 나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성향을 가진 내가 동네 만화방을 좋아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엄마의 심부름이었다. 엄마도 이야기를 엄청 좋아한다. 엄마의 심부름은 '명탐정 코난'을 빌려오는 것이었고, 나도 그 만화책을 같이 읽었다.

당시 집에는 tv가 없었다. 엄마의 강력한 정책으로, tv를 버렸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나였기에 집 안에서 놀거리가 책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화책이란 얼마나 가뭄의 단비 같은 재미겠는가. 엄마는 주말만 보자고 약속을 했지만, 나는 평일날에도 엄마 몰래 만화책을 빌렸다.

어느덧 나는 그때까지 발행된 코난을 다 읽어버렸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내 가슴에도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함께 덮였다. 나는 그 길로 만화방을 찾았다.

반납을 하고 코난의 다음 이야기가 신권란에 있는지 찾았다. 역시나 내가 보던 책이 발행된 마지막 코난 만화책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 순간, 내 눈 앞에는 만화책이라고 하기엔 부피가 큰 책들이 들어왔다. 그 책의 이름은 '연금술사'였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책을 집어 들어 대출을 했다. 만화 책보다 더 비쌌지만, 충분한 돈이 주머니에 있었다. 그렇게 책을 들고 집에 와서 몰래 책을 읽었다.

신세계였다. 콜럼버스에 비유될 만한 그런 발견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빌리자마자 다 읽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판타지를 하나 둘 섭렵해갔다. 책의 선별기준은 내 맘대로였다. 굳이 기준이라고 한다면....... 책의 맨 뒷면 표지에 적힌 글이 내 맘에 들면 나는 그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 시리즈를 하나 다 읽으면 마음이 너무 공허했다. 이야기의 가뭄이 든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나는 시리즈가 끝나면 미친 듯이 다른 시리즈의 책을 찾았다.

그렇게 탐독을 하다 보니 무협도 접하게 되었다. 무협은 나에게 또 다른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쳤는데 학교에서 배운 한자를 무협에서 써먹는 식이랄까. 그리고 무협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중국의 사상이 학습되었다. 중학교 2학년, 한창 중2병 가득한 시절에 그런 사상을 접한다는 것은, 나에게 사상적 중2병 행동을 불러왔다. 학교 도서관에서 허세 가득히 '사회계약론' 같은 책을 빌렸다. 진짜 뭔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도서관에 있던 도서부원 여자애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아. 이 이야기는 접어두어야겠다. 아직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라서......

여하튼, 그런 책을 빌리며, 또 여자애들을 보러 도서관을 다니던 와중에 도서관 한편에 있던 이상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은 '작안의 샤나.' 그 밖의 많은 라이트 노밸들이 도서관에 있었다. 그 책을 빌릴 때 사서 여자애들한테 많이 부끄러워 남자 사서 선생님이 있을 때만 빌렸다. 학교 안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이중적인 중학교 생활을 했다. 겉으로는 아주 고상한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가방 안에는 라이트 노밸을 넣어 다니는.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강압적인 교육열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살아야 했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다.-에 대한 저항으로 나는 그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부모님과의 마찰은 대부분 학원 때문이었고, 가기 싫었던 나는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이야기의 중독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