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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Sep 16. 2019

가난합니다

기도 요청

하늘이 다 빠진 어둠에서

눈을 가리고 앞을 더듬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손을, 의지할 것을


바람이 사라진 허공에서

코를 막고 향기를 맡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향기를, 그리운 냄새를


꽃이 사라진 들판에서

마음 안에 저를 그립니다

갈라진 땅, 모래의 땅 위에

제가 서 있습니다


눈물로 땅을 적셔보려 하지만

가리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보려 하지만

어떠한 따스함도 코에 닿지 않고

마음에 꽃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누렇게 뿌리 드러난 풀만 솟아나고

그렇게 나는 썩어갑니다


딱딱한 눈꺼풀이 들리고

꽉 막힌 코가 뚫리고

마음에 꽃이 피어나기를


나의 하늘과

나의 바람과

나의 꽃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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