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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Nov 22. 2023

감사에 찬 말

에베소서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에베소서 5장 4절》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사를 전합니다. 통화의 끝은 항상 감사합니다로 끝나고, 문자나 메일의 끝은 거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로, 식당에서 나올 때 사장님께 잘 먹었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합니다.

기도는 또 어떻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항상 시작합니다. 무엇을, 왜 감사하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오늘 하루의 감사 표현에 과연 내 진정성이 담겨있는가 묻는다면 저는 하나도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답을 하는 제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에 과연 어떤 진정성 있는 감사를 하는가. 이 또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만을 더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때때로 저의 감사에 소름이 돋습니다. 출근길, 사고 난 지점을 차로 지나가면서 사고 당사자의 고통보다는 지금 저의 무사함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엄청나게 많은 업무를 감당하는 타 부서 동료를 바라보며 지금 저의 업무량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보니 때때로의 감사가 아닙니다. 대부분 저의 진심 어린 감사는 타인의 불행을 저와 비교했을 때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죄책감과 불편함들 때문에 오늘 말씀의 권면이 냉소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따지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 감사에 찬 말이 때로는 그 어떤 어리석고 더러운 말보다 끔찍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 모습을 보십시오. 제가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을 보십시오. 제 죄악 된 감사를 들으십시오.'

이 따지는 말에 하나님이 간단한 말씀으로 꾸짖으십니다.

'그러니 내가 범사에 감사하라지 않았냐.'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처음 감사할 것들을 찾을 때는 주변과 비교해서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감사한 것을 찾으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감사로 다가옵니다. 부모님이 제 부모님이란 사실이 감사하고, 동생이 동생이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친구의 존재 자체가, 직장 자체가, 동역자들 자체가,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그 자체가, 하나님 그 자체가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묵상을 마무리하며 저의 부족함을 나눌 수 있는 여러분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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